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샘 Dec 31. 2020

선택하시지요?

평소에는 그 언덕길이 그렇게 길었는지 몰랐다.     


친정 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지내고, 가까이 사는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봐줄 수 없다고 애초부터 딱 잘라 말했다.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아직 어린 작은 아이는 동네 아가 놀이방에 맡기고 늘 종종거리며 바삐 살았다.      


그 날은 무슨 일 때문인지 작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아가 놀이방이 쉬게 되었던 것 같다. 학교를 갑작스레 쉰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사정이라 마음만 쩔쩔매고 있는데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가 다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기저귀 가방에 젖병, 기저귀, 물티슈, 공갈젖꼭지 등 필요한 물품을 기저귀 가방에 담는다. 아기 띠를 앞으로 올려 매고는 덜렁덜렁 작은 딸아이를 안는다. 그날은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아기를 안고 한 손에는 기저귀 가방을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언덕길을 뒤뚱뒤뚱 내려가는 그를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는 그날, 그 언덕길을 그는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음소거된 그 장면만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서글퍼서 눈물도 잠깐 났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었다. 나도 얼른 출근 준비를 하고, 큰 아이 손목을 잡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두고 출근을 해야 했으니까.     


출근을 하고 나면 일단 그 속에 파묻혀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수업을 마치고 한 숨 돌릴 시간이 되자 딸아이 걱정에 밀어닥친다. 하루 종일 울며 지낸 것은 아닐까? 그는 또 어떻게 된 것일까?      


조퇴를 얻어 서둘러 내가 집에 도착해서 얼마 안 되어서 

“다 왔다. 집에 들어가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밝다. 내 마음도 따라서 환해진다. 

“고생 많았어요. 너무 힘들었지요?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요? 안 울었어요?”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나의 질문은 계속된다.

“흐흐흐, 내가 잘 해결한다고 걱정하지 말랬잖아. 아주 잘 있다 왔어. 걱정 많이 했구나?”

“안 울었어요?” 내 질문은 반복된다.


“그럼, 들어 봐. 내가 수진이를 안고 교무실에 딱 들어갔지. 선생님들이 다들 난리가 났어. 우선 아이 맡길 데가 없어서 내가 안고 왔다고 했어. 그리고는 교장실로 턱 들어갔어. 교장선생님도 깜짝 놀라셨지. 내가 한마디 했어. 자, 교장선생님, 선택하셔요. 우리 딸아이를 봐주실래요? 아니시면 우리 교실에 들어가셔서 수업을 해 주실래요?”

“정말요? 세상에나. 그때 교장 선생님 표정 보고 싶다. 엄청 놀라셨겠네요?”

“푸하하하. 완전 깜짝 놀라셨지. 애 맡길 데가 없어서 기저귀 가방 챙겨서 출근했다니까 잠시 후 막 웃으시더니, 교장실에 내려놓고 가라고 하시더라고. 우리 교장선생님, 손주 손녀 많이 보셔서 애들 잘 보시는 분이거든.”     


그 날 교장선생님은 딸아이를 보느라 땀께나 흘리셨을 테고, 쉬는 시간마다 교장실에 내려와서 아이랑 눈 맞춤하다가 올라가서 수업하느라 왔다 갔다 했을 테고,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무슨 전설처럼 이야기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들어봐, 몽돌 해수욕장 파도 소리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