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샘 Dec 25. 2020

눈물의 결혼식

천천히 주례 선생님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팔짱을 낀 그의 팔뚝을 타고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뭐지? 살짝 고개를 돌리고 곁눈질을 하는 순간, 그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이전에 뛰던 심장의 박동과는 다른 심장의 박동이 턱 밑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주례사를 들으면서도 결혼식장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무슨 꽃들이 피었었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저 따스한 봄날이었다.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난 데이트 같았다. 그가 준비했다는 작은 신혼집은 오래된 빌라 지하였다. 작아서 더 좋았다고 하면 제대로 미친 거겠지? 집이 작아 들여놓을 혼수도 많지 않았지만 소꿉장난 같은 신혼생활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는 참 찬찬한 사람이었다. 결혼식 일정에 따라 해야 할 일, 점검할 것 등을 공책에 쭉 나열해서 적어두고,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나보다 더 꼼꼼히 결혼식 준비를 했다. 철없는 나는 그저 좋아서 방긋방긋 웃고만 다녔고 모든 준비는 그가 챙긴 것이나 같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날마다 일기를 쓰듯 달콤한 말들을 손편지에 적어 건네주었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도 저렇게 웃는 신부는 처음 보았다는 고향 어르신들의 수근거림도 있었다니까.


그 결혼식장에서 그는 울고 있었다. 결혼식 사진마다 찍힌 모습은 눈이 빨갰다. 고향에서 전세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온 순박했던 나의 친인척들과 마을 분들은 신랑의 눈물을 보며 함께 눈물을 훔쳤다고 하니, 눈물의 결혼식이 되고 만 것이다.        


그에게 결혼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내가 철없이 푼수 같은 웃음을 헤헤거릴 때, 남편은 힘이 들었나 보다. 결혼을 앞둔 아들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착하기만 했던 아들이 함께 살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분가를 선언했을 때 어머님은 화가 났던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어머님과의 갈등이 많았나 보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 손에 자랐다. 몇 년간을 혼자서 남매를 거두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정도쯤 재혼을 하셨다. 아버님은 참 다정한 분이셨던 것 같다. 전처의 자식이 둘이나 있는 홀아비에게 와서 알뜰살뜰 열심히 살림을 살아 준 어머님께 참 잘했던 것 같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님이지만 꼭 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살아계시는 동안 아버님은 모든 관계의 완충 역할을 하셨고, 그래서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어머님은 후에 아들을 하나 낳으셨는데, 그 핏줄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을까? 아님, 원래 그런 분이셨을까? 아버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얼마 되지 않는 재산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셨다. 그런 갈등이 몇 년 지속되는 동안에 그는 구원과도 같이 나를 만난 것이고, 남편은 독립 선언하듯 어머님에게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가정을 만든 것이다.      


그가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세상적인 계산 없이 그저 본인만 바라봐주고 행복해하는 나에게 고맙다 늘 말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결혼식장에서 신부인 나도 방긋방긋 웃고 있는데, 참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통 니 얼굴이 찍혔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