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아리니 Oct 25. 2022

모두 포기하고 싶었던 인간이 보내는 인사



더는 버틸 수 없어 연장전을 그만두자 생각했을 때, 영웅이라는 이름의 야구팀이 나타났다. 아무렇게나 돌린 채널 위에서 육대영 오지게도 지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다시 한번 살고 싶게 만들었다. 나도 저들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야구를 했을 뿐인데, 나에겐 참 이상한 영웅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며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집순이에 소심하고 말없는 인간들도 충분히 직관을 즐길 수 있다는 거였다. 어느 순간부턴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었지만, 내 원래 의도는 그랬다. 처음 내가 야구장에 갈 때 느꼈던 그 두려움과 무서움을 당신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소심한 내가 지금껏 야구팬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은 다수의 야구팬들과 다르게, 내 방식대로 그들을 응원한 것에 있다. 나는 적당히 나를 지키며 조금씩 세상을 넓혔다. 미리 말하자면 요즘의 나는 응원도 한다. 응원석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4층에서 홀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지만, 재미를 찾았다. 강제하지 않으니 재미가 있었다. 내 재미를 내가 찾는 것, 그게 나는 좋았다. 남들이 봤을 때 단조롭다 해도 상관없다. 내가 행복하니까.


소심한 사람도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달라진다. 인간의 본능대로 호기심이 샘솟는다. 좋아하는 이가 궁금해지고 보고 싶어 진다. 그를 위해 용기를 내고 싶지만, 그게 어렵고, 또 제대로 되지 않을까 두렵다. 기껏 용기를 냈는데 그를 볼 수 조차 없을까 무섭다. 소심한 인간의 세상은 이렇다. 금방 부서지고 또 상처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굉장히 좋은 스포츠다. 일주일에 여섯 번, 그러니까 내가 맘만 먹으면 일주일에 여섯 번을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그저 내가 가기만 해도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친절하게 야구팬을 맞이해준다. 예전엔 팬을 보고 도망가는 선수들도 있었다지만 SNS가 발달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떤 선수는 볼 하트까지 해주더라. 나는 아이돌인 줄 알았다.


아무튼 소심한 인간도 이렇게 조금씩 시야를 넓히다 보면 자신이 몰랐던 취향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조용히만 보는 게 좋았던 사람이 갑자기 응원을 해보고 싶어질 수도 있고, 그저 숨어만 있고 싶었던 사람이 스케치북을 들 수도 있고, 혹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아름답게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수해도 좋다. 앞에서 말했지만 야구장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실수한다 해도,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고 증오하는 선수에게만 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선수를 찍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내 유튜브를 많은 사람이 봐줄지도 몰랐다. 다만 그들을 계속 보다 보니 다른 호기심과 욕망이 생겼고, 나를 즐겁게 하는 취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야구를 보며 내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꾼 것이었으며, 내가 두려워한 사람들이 사실은 내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내 야구 직관 기록은 21년도부터 시작해 이 글을 쓰고 있는 22년도 10월까지 쭉 이어졌다. 모두가 감탄할 만큼 꾸준히 성실하게 이어져온 기록이다.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다 보니 이제 글까지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즐겁다. 야구를 좋아하고, 그들을 직접 보러 가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맛보지 못했을 행복이다.


내가 소심한 모든 이들의 방어막이 될 순 없다. 하지만 '그 사람도 혼자 갔으니 나도 한 번 가볼까?'에서 '그 사람'이 될 순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은 언제나 두렵고 막막하다. 나는 이 글로 인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조금의 용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소심한 나는 아직도 친구가 열 명 안팎이고, 거기에 5년을 다니며 사귄 야구장 친구 둘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여전히 밖보다 집을 좋아한다. 그러나 때론 밖에 나가는 것도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간 야구장에서 좋아하는 선수가 나를 향해 걸어와 미소 지어주는 행운을 거머쥘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은 용기와 맞바꾼 평생의 행복이었다.


그러니 소심한 당신이라도 가끔은 당신이 애정을 쏟는 무언가를 위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게 당신의 세계를 아주 조금, 넓혀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아주 작게 넓혀진 또 다른 세계에서 당신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작고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심하고, 조용하고, 내향적인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 찾아오길 빌며 이 글을 마친다.

이전 13화 소심해도 사인은 받고 싶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