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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y 11. 2021

열정과 혹사

번아웃이 올 때

열정이 번아웃으로 변할 때     


 작년 12월, 드디어 마지막 마감을 끝냈다. 앞서 브런치 1주년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나는 작년 9월부터 3~4개월 동안 미친 사람처럼 매일 글을 썼다. 가만, 생각해보니 '미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너무 과격한 거 아닌가 싶다. 글 쓰는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즐기며 여유롭게 타이핑을 하는 우아한 사람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나는 산발을 한 채 식탁에 앉아 애 밥을 한 입씩 먹이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광경을 연출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사람처럼 글을 썼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그래도 나는 내심 스스로를 열정적이라 생각했다. 무언가에 미쳐 있다는 건 열정의 상징 같은 거 아닌가.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매일 정해놓은 글쓰기 분량이 있었기에 그만큼을 써내려면 육아, 요리, 글쓰기 외에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건 허용할 수 없었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30분 이상 하면 그날의 글쓰기 분량을 다 해결하지 못할게 뻔했다. 누군가와 수다 떨고 싶은 욕구도 꾹 눌렀다. 내가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놓지 않던 가계부 쓰기도 6개월 이상 미뤄둔 채였다. 가끔 숨이 안 쉬어질 때면 계속 생각했다. 12월이 언젠가 온다. 12월에 모든 마감이 끝나면 나는 쉴 수 있어.


 지옥 같던 시간이 지나갔고 마감이 어찌어찌 끝났다. 12월 중순이었다. 처음에는 새해가 올 때까지 2주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쉬려고 했다. 브런치의 글 발행도 2주 쉬기로 공지했고 다음에 글 쓸 계획도 1월까지 모두 미뤄두었다. 

 그런데 제대로 쉬려고 마음먹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불안했다. 쉬는 게 불안했다. 뭘 하면서 쉬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의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놓은 듯 머릿속 상념도 폭주했다.  


이렇게 쉬어도 괜찮을까?”

“이럴 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는 것 아닐까?”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닌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닌데’를 몇 번씩 되뇌었다. 쉬는 건데 죄책감이 들었다. 이유 없이 스마트폰으로 메일함이나 브런치를 들여다보았다. 일하지 않기로 결심한 시간에도 글 쓰는 생각을 하거나 브런치 글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토록 일에 열정적인 인간이었나 생각하다 점차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드라마든 만화책이든 재미있는 걸 몰입해서 보면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것에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붙잡고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제대로 쉬지도 놀지도 못한 채 12월 말이 흘러갔다. 


 문제는 다시 글 쓰는 일을 시작한 1월 이후에 몰려왔다. 갑작스럽게 만성 두통이 밀려왔고 눈도 급작스럽게 나빠졌다. 느닷없이 모든 게 공허하게 느껴졌다. 허무함과 무기력, 외로움이 밀려왔는데 이걸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답이 없었다. 그동안 뭘 위해 열심히 지낸 거였나. 일이 아무리 좋아도 몸이 안 좋아지고 외로움에 떠는 인간이 된다면 모든 게 허무한 짓 아닌가. 내 열정은 무얼 위한 것이었나, 이게 열정이 맞긴 했던 건가. 의문이 밀려왔다.     

  


삶이 무기력해지는 순간, <지쳐 있는 사람들>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는 1853년 스위스 베른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살에 아버지와 동생을 결핵으로 잃었다. 몇 년 후 어머니까지 여의어 고아가 되었다. 양아버지가 장식화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풍경화를 그리던 화가 페르디낭 좀머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자연을 그리는 방법을 배운다. 1871년 제네바로 가서 회화를 배우며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접했다. 1890년에는 파리 여행에서 고갱이나 쿠르베, 쇠라의 풍경화를 접하며 그 영향을 받는다.


 호들러 역시 처음에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물이나 풍경을 있는 캔버스에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당대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쌓아나간다. 자연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생각과 관념을 담아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호들러의 자화상(1916)과 그가 그린 풍경화인 <Lake thun symmetric reflection>(1905) @wikiart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인물을 그린 그림에서도 두드러진다. 특히 대상을 병렬적으로 구성하여 상징과 관념을 드러낸 것이 대표적 특징이다. 삶과 죽음, 사랑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1890년 파리에서 발표한 <밤>을 보면 잠들어 있는 남녀, 놀란 듯 깨고 있는 남성, 그를 깨운 검은 물체(죽음으로 해석된다) 등은 비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릴 때부터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해 온 호들러였기에 삶과 죽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거라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밤(1890, 페르디난트 호들러) @wikiart


  병렬 구성으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환상 속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종교의식을 치르는 사람들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 세계를 통해 호들러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화가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삶에 지친 자들>(1892)이다. 호들러의 작품답게 다섯 명의 인물이 병렬로 구성되어 있다.

<삶에 지친 자들>(1892, 페르디난트 호들러)  @wikiart


 가운데에 자리한 남자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는 고개를 꺾고 지친 자세로 앉아 있다. 얼굴과 몸이 비쩍 말라 있고 옷차림 역시 몹시 남루하다. 그의 양쪽에 앉은 네 명의 남자들은 수도사 같은 옷차림새를 하고 있다. 엄숙한 표정의 남성들은 손깍지를 끼고 기도를 하는 듯 보인다.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 다섯 명의 사내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눈이나 표정에 공허감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네 명의 사내는 목적을 잃어버린 듯 앞을 쳐다보는 중이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말없이 지친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가운데 위치한 남자의 경우 공허와 쓸쓸함, 지친 기색이 더해져 어딘가 아파 보이기까지 한다. 그림 속 사내들은 자신의 삶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는 가운데, 죽음을 향해 달려가다 지친 것인지도 모른다.      



열정이 혹사로 변하지 않으려면


       

 호들러의 작품 속 지쳐버린 이들의 눈은 끝없는 공허함을 담고 있다. 공허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아무래도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목적을 위해 열심히 걸어가거나 달려가는 건 좋다. 그러나 앞을 향해 달리는 동안 우리는 가끔 실수를 저지른다. 양 눈 옆을 가린 채 달리는 말처럼 시야를 좁히는 것이다. 이런 걸 바로 맹목이라 할 수 있다. 


 가령 나는 작년 하반기 내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일을 많이 벌였다. 프리랜서 일을 간접체험해본 결과, 어떤 일을 거절하면 그 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했기에 날 찾는 일은 전부 받아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과도한 책임감에 마감도 늦추지 않고 그냥 달렸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브런치나 메일함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야 덜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 열정은 목적 없는 달리기가 되었다. ‘왜 달리는지’ 잊어버린 채 그냥 불안하니까 달렸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열심’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일 수습을 위한 열심’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은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열심히 살며 나를 하얗게 불태워버린 후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가 유독 열정적으로 살아서 이런 증상이 온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몇 번 번아웃이 왔었다. 출퇴근을 하며 일과 관련된 피곤한 일이 이어질 때 무리하던 것이 원인이었다. 내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달리기를 계속하거나, 끊임없이 달리지 않냐고 자신을 탓하다 갑자기 모든 끈을 놓게 될 때 번아웃이 오는 일이 많았다.  


가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상세히 따져보면 늘 뭔가 하고 있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을 보던 집안일을 하던 사실 머리와 손이 분주히 움직인다. tv를 보더라도 머릿속에는 생각이 가득 차 있거나 불안해한다. 몸이 쉬고 있으니 휴식을 취한다 생각하지만 머리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24시간 달리고 모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알차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부지런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번아웃이 온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보았다. '열심히 살지 않은 내가 과연 쉴 자격이 있나' 자신을 탓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휴식에는 아무런 자격이 필요 없다. 제대로 다 내려놓고 못 쉬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이런 '탓하기'가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일의 효능도 오르지 않고, 제대로 쉬기도 어려워지는 결과가 온다. 


 번아웃이 오던 순간, 내 열정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작년 내내 ‘나’를 위해 달렸다. 나답게 잘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잘 살기 위해 한 행동이 방향을 잃고 과도해져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지점부터 내가 한 행동은 열정의 징표가 아니라 혹사였던 셈이다. 


 삶의 우선순위와 행동부터 바꾸어야 했다.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일을 우선순위로 하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날 잘 챙겨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살펴보는 걸 우선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제시간에 먹지 않고, 잠을 제대로 자지 않던 습관을 바꾸었다. 아침과 점심 먹는 시간에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들여다보는 걸 놓았다. 원래 월요일 꼬박 글을 쓰고 브런치에 새벽 2시마다 글을 올리고 있었다. 글 발행하는 시간을 바꿨다. 글쓰기도 근본적으로 나를 위한 글쓰기지, 건강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글을 쓰는 건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계부도 다시 써보기로 마음먹었고, 아이와 놀아줄 때는 일 생각을 그만하고 놀아주는데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몰두했던 ‘글 쓰는 자아’ 외에 다른 자아의 스위치를 켜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는 시간도 늘렸다. 눈이 나빠졌다 느낀 후, 일부러 음악만 튼 채로 아무 생각 없이 10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 보았다. 원래 자연을 바라보며 산책을 해야 제대로 쉬는 거라는데, 이 나라는 곧 낮에 30도~40도가 되어 산책이 불가능하니(여름에는 50도가 넘기도 한다) 집에서라도 걸으면서 음악을 들어 보았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 헤매는 것도, 브런치 글을 들여다보는 것도 관두고 눈을 감았다. 눈과 머리를 쉬게 하고 귀만 열어두니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다. 


 나에게 그동안 어떤 말을 해주었는지도 생각해보았다. ‘왜 더 열심히 달리지 않아.’'너 이렇게 쉴 때가 아니야.‘  ’ 정신 차리고 다시 움직여야지.’ 되돌아보니 나에게 이런 말을 날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SNS에서 우연히 읽은 글귀 중 인상적인 말이 생각났다. 낯간지러워서 차마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하는 말이 사실 꼭 해주어야 할 말이라는 이야기였다. 완벽주의를 약간 내려놓고 마음속 말을 바꾸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수고했어.’ ‘너는 진짜 고생 많았다.’ 어쩐지 쑥스러웠지만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지금까지 왜 노력하고 안달 내며 지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져 좋아하는 사람조차 만나고 싶지 않은 시기도 온다. 무기력과 회의감이 동시에 오기 때문에 번아웃은 부정적인 의미로 통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번아웃은 ‘네가 달리고 있던 목적이 무엇이며, 균형을 맞추어 잘 살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라’며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이유 없이 쳐다보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쉬는 나를 게으르다 탓하는 걸 멈춘 채, 달리기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게 낫다. 열정이 혹사로 변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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