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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n 20. 2024

고작 이 정도의 행복

행복이 멀리 있다고 느낄 때  

행복과 애프터눈 티  

       

 대학 동기 ‘쏘’는 귀여운 친구다. 성이 소 씨라 ‘쏘’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스무 살 때 처음 만났으니 우리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알고 지낸 셈인데, 20년 전처럼 여전히 귀엽다. 


 내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쏘는 지역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준다.  심지어 본인 가족 명의까지 빌려 여러 도서관에 여러 권 신청해 줄 때도 있다. 전화 공포증과 귀차니즘으로 가까운 이에게도 소심한 메시지만 날리는 내게 전화도 먼저 걸어준다. 한참 수다 떨 기회도 제공해 주는 친구다.    


 2020년 코로나의 해 중반쯤, 그날도 우리는 통화를 했다. 중동에서 해외 살이 중이던 나와 한국에 있던 쏘. 둘 다 기나긴 가정보육과 집콕의 시간을 건너던 중이었다. 여기에 더해 당시 나는 중동에서 한 달의 락다운 기간을 지나고 있었다.  바깥 외출이 전면 금지된 시기였다. 하루에 단 한 시간만 외출 가능했다.

 

 집 앞 슈퍼에 걸어가는 일상조차 어마어마한 자유이자 혜택이었음을 처음 깨달은 시기였다. 집에서 창밖을 바라봐도 자연의 초록빛 대신 휘몰아치는 모래바람과 갈색 빛 건물, 건조한 바람에 쓰레기가 뒹구는 흙빛 거리만 보였다. 당시 최대 위안은 불멍이나 물멍이 아닌 ‘건조기 멍’이었다. 나무나 꽃  대신 건조기 속 빨래가 돌아가는 걸 보며 멍을 때리는 때가 힐링 시간이었다.

 

그때 쏘와 나는 통화하며 무슨 얘길 나눴던가. 아마도 전염병의 시대가 끝난 후 뭘 하고픈지 이야기하는, 시시콜콜한 대화였을 것이다. 문득 머릿속에 ‘애프터눈 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국에 살 때에도 거의 경험해 본 적 없으니, 참으로 뜬금없는 희망사항이었다. 실은 TV 속 간접 경험 덕에 떠오른 단어였다. 우연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 커플이 애프터눈 티를 먹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화려한 무늬가 박힌 앙증맞은 찻잔에 따뜻한 차를 담아 먹고, 3단 선반에 겹겹이 쌓인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작은 사치(사실 저렴하지는 않으니 큰 사치일 수도 있다). 친구와 그런 사치를 누리고 싶었다.

 

조심스레 내 희망사항을 전달했는데, 쏘는 냉큼 동의했다.


이 모든 시간이 끝나고, 우리 언젠가 근사한 카페에 가서 애프터눈 티를 먹게 될 거야. 그땐 진짜 만나서 수다도 실컷 떨어야지!”


   쏘의 다정한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던 것도 같다. ( 울지 않기로 소문난 나였지만 당시에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1일 1 눈물을 실천 중이었다.)



  무력하고 울적한 시간을 보내는 그 시간 동안 날 버티게 해 준 건 상상 속 애프터 눈 티였다. 앙증맞은 찻잔을 놓고 수다를 떠는 상상은 때때로 친구나 지인들과 소주나 치킨을 나눠 먹는 장면으로 변신했다. 다정한 이와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장면. 그게 간절히 바라는 전부였다.



먹고 마시고 대화하라, ‘Hip Hip Hurrah’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Peder Severin Kroyer. 1851~1909)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활동한 화가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자화상(좌)과 화가가 아내와 찍은 사진(우). 사실 이 부부도 사연이 많음...


 화가는 9살부터 그림 공부를 하며 예술적 재능을 보여 코펜하겐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해 술 공부를 이어갔다. 이후 20대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예술 흐름을 접했다. 화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인상주의의 흐름이었다. 덕분에 크뢰위에르는 복잡한 빛의 효과, 특히 밝은 햇빛과 램프의 불빛을 포착해 캔버스에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덴마크에는 스카겐(Skagen)이라는 어촌 마을에 모여 작품 활동을 벌이는 화가들이 많았다. 이곳은 북해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리적 특성으로 ‘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장소다. 바다의 밀도가 달라 선을 그어놓은 듯 바다는 뚜렷한 경계를 보였다. 넘실대는 바다의 독특한 빛깔도 예술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한 풍경을 화폭에 담으려 화가들이 모여들었고 작은 어촌 지역은 예술가 마을로 이름을 드높이게 된다. 크뢰위에르 역시 결혼 후 이 어촌 마을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벌인 이였다.

   

크뢰위에르의 <크로겐 북쪽 해변에서 그물을 끌어당기는 어부들>(1883)과 <스카겐의 여름 저녁>(1899)

     


화가는 스카겐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생활, 밤의 해변가를 산책하는 인물들의 모습, 어부들의 활기찬 생활 풍경을 담으며 그림 활동을 이어간다. 이미 인정받던 화가였기에 스카겐 예술가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역할을 해나갔다.


  1896년작 <Hip Hip Hurrah>는 크뢰위에르의 대표작 중 하나다. 크뢰위에르의 동료 화가의 집에서 열린 가든파티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으로, ‘스카겐 예술가의 파티’라는 부제를 가진 그림이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Hip Hip, Hurrah>, 1896, 1896


 그림 저편에서는 한 무리의 남성들이 어울려 건배를 하는 중이다. 화면 속 인물들의 유쾌한 동작과 표정을 보면 감상자의 머릿속에도 ‘Hip Hip Hurrah’라는 구호가 떠오른다. 그림 전면의 비워진 술잔과 빈 병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파티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테이블 앞에는 남성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여성들이 있다. 지루한지 엄마에게 칭얼거리는 아이가 있지만, 이 역시 파티의 정다운 풍경 중 일부가 되었다.


  예술가들의 연대감과 동지 의식이 화면 가득 느껴지는 작품이다. 환한 빛과 편안한 분위기는 감상자의 마음도 들뜨게 다. 밝은 기운 속에 술잔이나 식사를 주고받으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 정다운 이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순간. 그 단순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한 시절을 그림은 전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단순한 행복 누리기      


가까운 이들과의 웃음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행위. 역설적이게도 행복이라는 목표점을 위해 달리는 동안 많은 이들이 잊기 쉬운 소중함이다.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읽은 적 있다. 흥미로운 메시지를 건네는 책이었다. 호모사피엔스의 행복을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고차원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의 행복론은 대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뿌리를 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행복한 삶’이라 말한다. 그러나 『행복의 기원』 이  전통적인 관념에 반기를 든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이 아닌,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설계된 ‘동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복은 복잡다단하거나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쾌락의 감정을 자주 느끼는 만큼 찾아온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쾌락을 느끼는 방법도 단순하다. 소중한 사람과 소통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인간은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이 쾌락의 빈도를 늘리는 것이 삶을 즐기는 방법이란 얘기다.  


 단순 명쾌한 행복의 정의를 읽으며 내 머릿속을 떠다니던 행복의 정체를 되짚어봤다.  근사한 성적표, 커다란 업적, 날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멋진 단상. 빈틈없는 행복은 그런 것들 위에 자리 잡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행복을 인생의 목표점으로 삼을수록 갈증이 났다. 닿기 어려운 것, 이루어야 할 것, 거대한 무언가로 느껴졌으니까.  붙잡고 규정하고 고민할수록 행복도, 삶의 의미도 붙잡기 어려웠다. 그토록 어려울 듯 느껴지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소중한 이들과 나누어 먹는 애프터 눈 티나 치킨 정도로 치환 가능하단 것.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절실한 시간을 지나며 진리를 깨달았음에도 ‘삶의 의미’나 ‘행복’과 ‘불행’, '성공' '실패'와 같은 단어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을 때가 있다.


순간 간단한 진리를 떠올린다. 별 것처럼 느껴지는 인생도,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놓아두고, 다정한 이들과 마주한 채 삶에 건배를 외쳐볼까. Hip Hip Hurrah!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글 쓸 시간이 너무 없어가지고 (학교의 시험문제 출제기간이고,  교정할 원고도 있어서 )) 명화에세이 <그림의 말들>에 추가분량 원고로 넣으려다가 결국 담지 않았던 글을 발행합니다. (편집자님께 약간의 빠꾸를 먹었던 기억이 ㅎㅎ 그래서 아예 새로운 글을 추가로 썼던 기억이 있네요)


이 글을 쓴 게 2022년 여름쯤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아직도 친구랑 애프터눈 티를 못 먹으러 갔네요. (언젠가는 먹을 수 있겠죠?) 한국에 돌아오고 복직을 하니 예전보다 해야 할 일도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생각이 많아지고 할 일에 치이고 뭔가 숨이 찰수록 '인생 별 거 아니다. 결국 오늘만 존재한다'란 말을 되새겨봅니다.


다음 글은 6월 27일(목)에 발행하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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