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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l 14. 2020

39세에는 빛나는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다

정작 39세의 자화상은 너무 달랐다

39세, 초라한 나의 자화상 


며칠 전은 내 생일이었다. 올해로 39살이다. 문득 30대 초반에 꿈꾸던 '39세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가정과 직장에서 능숙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39살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당시에 직장에서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운 선배를 보았다. 옷도 예쁘게 입고 다니고 업무에도 연륜이 쌓여 있었다. 나도 어렴풋이 40대 가까이 되면 그 비슷한 모습이 되고 싶었다. 연륜이 쌓여 업무에도 능숙하며, 단정한 옷과 머리를 장착하고 출근하는 세련된 이미지. 후배들에게 직장생활 조언도 줄 수 있을 만큼 믿음 가는 존재.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희망사항이었다.

 39세가 된 지금, 거울에 나를 비추어본다. 지금 나의 현실은 대략 이렇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며 아이가 흘린 것을 종일 치우러 다닌다 (이 나라는 코로나로 학교를 열지 않은지 5개월이 넘었다. 9월에도 온라인 개학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휴직 중이라 직업은 유지하고 있으나, 업무 능력이 떨어져 있다.

머리가 산발이다(작년 한국 갔을 때 이후로 미용실에 가지 않은지 1년 되었다).

옷 쇼핑을 한지도 어언 1년이 넘어 매일 같은 티셔츠를 입는다.


객관적 상황은 이러하다. 어떤 때는 지쳐 보이는 여자가 거울에 보여서 깜짝 놀라는 일도 있다. 예전에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자신감 있게 30대 후반의 삶을 꾸려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39세의 빛나는 커리어우먼을 꿈꾸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화가의 자서전, 렘브란트의 자화상 


1606년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1606~1669)은 젊은 나이에 화가로 성공을 거두었다. 1624년부터 독립화가로 활동했고 집단 초상화를 그리며 암스테르담의 인기 화가가 되었다 (당시에는 현대의 단체사진처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모임에서 집단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흔했다). 더불어 1634년에는 많은 재산을 지닌 여성 사스 키어 반 윌렌부르호와 결혼하여 부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인생이었다.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 자화상을 꾸준히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가 남긴 자화상이 약 80여 점이 넘을 정도다.  자화상 속 렘브란트의 모습 변화를 통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자화상은  '화가의 자서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렘브란트가 34세에 그린 자화상(1640)     @출처: 위키미디어


위의 그림이 렘브란트가 1640년에 그린 34세의 자화상이다. 화가는 팔을 난간 위에 올려두고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그림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다. 값비싸고 품위 있어 보이는 옷, 굳게 다문 입술과 또렷한 얼굴선은 그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당시 렘브란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돈도 명성도 모두 그의 것인 시대였다. 위엄 있는 표정과 자신감 있는 포즈가 그의 전성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영광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이 그림이 그려진 지 2년 후 아내인 사스키아는 한 살 된 막내아들만을 남기고 하늘로 갔다. 렘브란트와 사스키아는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대부분 어린 나이에 죽고 오직 막내아들인 티투스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티투스마저 렘브란트보다 먼저 사망한다.

 렘브란트에게는 어려움이 계속 닥쳐왔다. 그는 경제적 감각 없어 돈을 낭비하며 생활하다 1656년 결국 파산하였다. 가지고 있던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겼다. 죽은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길러주던 유모와 함께 살기도 했으나 아내의 유언 때문에 결혼을 하지는 못했다. 그를 둘러싼 스캔들은 명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경제적 어려움은 갈수록 더해져 1662년에는 아내 사스키아의 묘지터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극빈한 생활이 이어졌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1668)   @ 출처 : 위키미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화상도 매년 그렸다. 위 그림은 그가 말년에 그린 1668년의 자화상이다. 어둠 속에 있는 화가는 갑자기 뒤를 돌아본 듯한 자세로 기괴하게 웃고 있다.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을 제욱시스(Zeuxis)와 동일시하고 있다. 제욱시스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파를 그리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숨이 막혀 죽었다는 그리스의 화가다. 자화상 속 주름진 얼굴과 무너진 얼굴선, 기묘하게 웃는 표정이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 자신만만한 자화상에서의 인물과 같은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러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젊은 시절과 다르게 어딘가 달관한 듯한 표정이 눈에 띈다. 34세의 자신만만하던 화가는 거친 붓질의 그림 속에서도 눈빛이 번득이는 노인이 되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그가 자신의 인생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한물 간 화가'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자신의 자화상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았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포토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34세의 자신만만한 때에 비해 늙어서는 나이들수록 초라해졌지만, 그림을 놓지 않았기에 그 나름으로 의미를 찾은 화가로 역사에 남았다. 



자화상을 미워하지 않고 사는 법 


 인생의 자서전을 쓰고 있다면 나는 중간쯤 왔다 보아야 할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으로 치자면 40장째 정도에 왔다고 치는 게 맞겠다. 렘브란트는 34세의 자화상을 그릴 즈음에는 자신이 말년에 어떤 모습의 자화상을 그리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화상은 나이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사실이다. 49세나 59세에는 어떤 모습의 내가 될지 모르겠다. 다만 구태의연하고 뻔하디 뻔한 모습의 장년이 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내 삶을 억지로 미화해가며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성장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사는 내가 되고 싶다. 누가 그려주는 나의 초상화를 받아들지 않고, 내 자화상을 스스로 그리고 싶다.  

요즘에도 밤에 아이가 잠들면 어김없이 2시간씩은 글을 쓰며 지낸다. 글을 쓰기 위해 책도 들여다보고 틈틈이 공부한다. 10년, 20년 후의 내 자화상이 마음에 안 들어, 내 노력이 부족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이, 주변 환경 때문에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탓하며 지내고 싶지도 않다.  


 결국 어떤 모습을 그리든 자화상은 내가 그리는 것이다. 현재의 내 모습을 미워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은 내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39세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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