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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Nov 17. 2020

‘잘 될 거야' 대신 ‘망하면 어때’란 말에 힘이 난다

비관주의자가 긍정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감정일기를 쓰다 기분이 묘해졌다    

   

 중동에서 맞은 코로나 시기가 반년이 넘은 무렵이었다. 집 밖으로 외출은 고사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한 지 6개월이 넘어가니 내게도 코로나 블루의 기미가 보였다. 우울감이 몰려든다고 하자 누군가 감정일기를 써보라고 권해주었다. 감정을 어디든 털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진다는 것이었다.   

    

 그 날로 노트북을 펼치고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솔직한 마음을 풀어내려 가듯 쓰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진 나인데, 감정일기는 글을 쓰며 오히려 기분이 묘해졌다. 가만히 살펴보니 몇 편 쓴 일기의 패턴이 비슷했다. 처음에는 가라앉은 기분을 적다가 꼭 비슷한 결론이 등장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상황에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은 날이 올 거야.”

“얼마 후면 다 괜찮아진다. 잘 될 거야. 그때까지 힘내자!”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글의 결론을 ‘착하게’ 맺기 위해 애쓴 흔적이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운 좋은 사람이다. 힘을 내야 한다. 다 잘 될 거야. 틀린 말이 아니었고, 바람직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후련하지는 않았다. ‘힘내’라는 말을 일기에 써댔으나 힘은 전혀 나지 않았다. 일기를 채워갔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답답하고 별로인 환경’을 억지로 좋게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라는 것을. “긍정적이고 착한 결론을 내야지. 아무리 일기라지만 힘을 내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란 말이야” 마음 속 긍정의 강요 아래 ‘잘 될 거야’라는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본디 타고난 비관주의자에 염세주의자다. 아픈 곳이 있으면 중병이 아닌가 먼저 걱정하고, 가벼운 사고에도 가장 나쁜 결과를 먼저 상상한다. 우울감은 평생 달고 다닌 친구와 같다. 

 그런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보면 안 되냐는 긍정주의에의 강요였다. 상황을 좀 좋게 보란 말이야.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란 말이야. 긍정적인 시각은 분명 좋은 것이겠으나 부당하거나 화나는 상황도 긍정적으로 보라는 강요가 때때로 있었다. 대체로 긍정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노력’과 ‘인내’도 강조했다. 별로인 상황도 좋게 보고 이겨내고 명랑하게 살아보라 이야기했다. 


 긍정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스스로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라는 지침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그 내면화된 목소리 때문에 어느새 일기에조차 거짓말로 긍정과 희망의 결론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모습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는 그리스 신화와 전설, 문학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다. 


워터하우스가 그린 <오필리어>(1894)와 <클레오파트라>(1887) @wikiart


특히 워터하우스는 문학이나 신화의 이야기 속 여성들을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새롭고 매혹적으로 구현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은 팜므파탈의 모습을 띄고 있거나 에로틱하게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맨체스터 미술관에 소장된 <힐라스와 님프들>이라는 작품이 여성의 신체를 '수동적인 장식의 형태' 혹은 '팜므파탈'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잠시 떼어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미술관의 결정을 비판하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판도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8)  @ wikiart


 위 작품은 워터하우스가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 속 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신화 속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흙으로 여자 인간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여성 판도라가 탄생했다 여러 신들은 가장 고귀한 것을 판도라에게 선물했다. 덕분에 판도라는 아름다움과 교태, 거부할 수 없는 욕망, 방직 기술, 말솜씨 등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인지 판도라는 그리스어로 '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를 뜻한다.        


 마지막으로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를 선물로 준다. 이를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판도라는 어느 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보게 된다. 상자 안에는 질병, 욕심, 시기, 질투 등의 부정적 감정과 가난과 전쟁, 질병 등 인간을 괴롭게 하는 재앙이 숨어 있었다. 그녀가 상자를 여는 순간 그 모든 재앙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인류는 수많은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워터하우스의 작품은 상자를 연 직후의 판도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판도라가 재앙의 근원이 된 상자를 연 직후의 모습으로 보인다. 상자의 가장자리에서 희뿌옇게 흘러 나가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인류에게 고통을 안길 부정적인 감정과 각종 재앙들이다. 그녀는 갑자기 상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재앙에 놀라 두 눈을 꼭 감고 있다. 상자의 뚜껑을 살짝 열어본 그녀는 이제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문을 닫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흘러내리는 옷자락과 상자를 부여잡은 손짓이 그녀의 당황한 마음을 대변한다. 


 실제 신화에 따르면 판도라는 무차별적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에 당황한 나머지 상자를 급히 닫아버린다. 그러나 상자 안의 나쁜 것들이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그러나 그 안에 있던 희망만은 상자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 이 신화의 주요 내용이다.      

 신화를 해석하는 많은 이들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은 희망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분노, 증오, 질투와 질병과 가난 등의 어려움이 우리의 인생에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희망이 아직 상자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희망은 우리 생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재앙과 고통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가. 아니다. 희망은 세상 밖으로 빠져나간 고통과 재앙을 다시 상자 속으로 끌어와 가두어놓을 힘은 없다. 그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재앙이나 불행이라는 상황을 희망이라는 심리 상태 만으로 막을 수는 없다. 앞으로 좋은 상황이 올 것이라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헛된 망상에 가깝다. 헛된 희망을 가진 후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더 큰 절망이 오기 쉽다.      

 

 판도라의 상자가 이미 열렸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지 않았으며 재앙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현실 부정을 해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상자 속에 갇힌 있는 희망을 살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망하면 어때’를 쓰고 나자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잘 될 거야’ ‘괜찮아질 거야’ 말을 머릿속에서 버리고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가짜 긍정에 대한 정신과 의사분의 유튜브 강의를 본 직후였다. 그에 따르면 좋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좋게 해석하거나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 기대를 갖는 것은 ‘짝퉁 긍정’에 해당한다고 한다. 진짜 긍정은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인정과 수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강의의 요지였다.    

  

짝퉁 긍정을 머리에 담지 않고 손가락이 가는 대로 타자를 쳐댔다. 별로인 상황에 대해 적다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어느새 흰 화면에 분노에 찬 욕을 써대기 시작했다(특정 대상에 대한 욕이 아니라 그저 상황에 대한 욕이었음은 밝혀둔다). 끝까지 욕을 쓰고 분노를 터트리다 보니 가슴이 후련해졌다. 언젠가 SNS에서 본 ‘망하면 어때’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일기 끄트머리에 이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말은 이제 버린다. 그런데 망하면 어때, 망할 수도 있지 XX 


 분노를 터트리고 별로인 상황에 대해 모두 털어놓으니 묘한 쾌감이 솟아올랐다. ‘망하면 어때’라는 말을 타이핑하자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내려놓도록 도와주는 용기. 상황이 좋게 흘러가지 않아도,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지금 당신에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나 슬픔, 별로인 상황을 '가짜 긍정에의 강요'로 마음속에 덮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믿고 있는 긍정은 진짜 긍정인가, 현실 부정인가. 별로인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라고, 긍정적이 되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 너는 왜 긍정적인 해석법을 모르냐고 스스로를 탓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눌러두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눌러두고, 그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 내 경험상 대부분 우울감이 이어졌다.       

 

가끔은 혼자서라도 분노를 터트리고, 욕을 좀 내뱉어도 된다. 혼자 있을 때 욕 좀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의 일기를 쓴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속에 담아두지 말고 글로 적거나 말로 뱉거나 꼭 밖으로 꼭 표출해야 한다. 마음속에 분노가 차 있는 것보다 밖으로 꺼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별로인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고 억지 긍정과 희망을 덕지덕지 붙여놓지 않아도 된다. 별로인 상황은 별로라고 인정하고 화낼 것은 화내고 슬퍼할 일은 슬퍼해도 된다. 지나칠 정도로 '남 탓'과 '내 탓'만 하지 않으면 된다.      


 감정을 다 터트린 후 마음을 비워내고 나면 보인다. 판도라의 상자 바닥에 가라앉은 희망이. 현재 상황이 좋다는 억지 왜곡도 아니고,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헛된 망상도 아니다. 상황이 좋아진다는 기대를 걸지 않아도 그저 뚜벅뚜벅 내 길을 걸을 수 있는, 괴상하지만 작은 희망. 역설적이게도 ‘망하면 어때’에 담긴 희망과 용기가 우리의 하루하루를 버티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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