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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Dec 08. 2020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약간의 자유를 얻는 방법

자기중심적 사고 벗어나기 

모두를 만족시키며 지낼 수 있을까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 지인 H를 떠올리면 누구나 하는 말이었다. H와 한창 가까이 지낼 때, 그녀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과 겪은 일에 대해 털어놓고는 했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직장 동료인 XX는 나를 좀 만족스럽지 않게 보는 것 같았어.”

“이번 모임 때 ○○랑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그때 했던 말이 거슬렸나 봐.”

“너 ◊◊ 알지? 그 사람은 어떤 음식 좋아해? 지난번에 그 사람이랑 이탈리안 레스토랑 갔었는데 마음에 안 들어하는 눈치더라고. 다음에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야겠어.”


 그녀는 누군가와 만나거나 대화한 뒤로 늘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켰는지 궁금해했다. ‘타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자신의 욕구나 기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았다고 느끼면 깊은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끔은 이타적인 그녀의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며 지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로 느껴졌다. 여러 명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항상 즐겁게 대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수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려고 노력했다. H는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었지만, 착하고 이타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썼다. 그만큼 쉽게 지쳤다. 스스로의 기대치만큼 다른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면 허탈해하고는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H의 행동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의 모습 한편에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분야는 조금 달랐지만 나 역시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왔다. 남들의 눈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모범생의 길을 따라오며 지내 왔다. 튀는 행동은 되도록 자제했다. 주변인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참고 해냈다. 가끔은 남들에게 멀쩡하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H와 나의 차이가 있다면 단 한 가지였다. 타인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심정을 밖으로 꺼내놓는 H와 달리 나는 그것을 교묘하게 숨겼다는 점뿐이었다.    


 우리는 왜 남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타인의 기대치에 부합하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는 걸까.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없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에 둘러싸인 나, <찰스 1세의 삼중 초상화

  

 안톤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초상화가 중 한 명이다. 


 

안톤 반 다이크의 자화상(1623) @wikiart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직물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작업실을 열었으며 거장 루벤스의 일도 돕게 된다. 반 다이크는 특히 루벤스의 그림 작업 중에서 인물의 얼굴 부분을 도맡아 그렸다. 그는 인물의 얼굴 속에 모델의 감정, 지적인 특성과 교양 등 긍정적인 매력을 불어넣는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곧 그의 명성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반 다이크가 그린 초상화 중 걸작으로 불리는 <필립 르 로이의 초상>(1630) @wikiart


 반 다이크가 런던에 들렀던 시기, 당시 잉글랜드의 왕 찰스 1세가 궁정화가의 자리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미술의 수준이 뒤쳐져 있는 상태였다. 찰스 1세는 최고의 화가를 궁정에 두기 위해 루벤스에게도 궁정 화가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반 다이크를 궁에 초빙하는 데는 성공한다. 반 다이크는 기사 작위와 집, 연금 등을 보장받고 영국의 궁정화가로 자리 잡았다. 그는 어색하고 경직된 모습이던 영국 왕실의 초상화 시대를 끝냈다. 찰스 1세의 자연스럽고 우아한 초상화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사냥하는 찰스 1세>(1635)

 




아래 작품은 반 다이크가 그렸던 찰스 1세의 초상 중 하나다. 

<찰스 1세의 삼중 초상> (1636, 안톤 반 다이크) @ wikiart


 한 화면 안에 세 명의 인물이 꽉 차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세 명의 인물 모두 찰스 1세다. 삼중 초상이라 불리는 유형에 속하는 그림이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찰스 1세는 자신의 대리석 흉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반 다이크에게 삼중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이탈리아에 있던 조각가 베르니니에게 흉상을 제작하기 위한 자료로 보낸 것이다. 당시 서양에서는 흉상을 제작하기 위한 자료로 삼중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위 작품에서 왕의 얼굴은 정면, 옆면, 3/4 정면으로 그려져 있다. 원래 흉상을 제작하는 데에는 손 부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 다이크는 작품에 찰스 1세의 손을 그려 넣어 이전의 삼중 초상과는 차별화되는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왕은 품위 있는 표정으로 자신만만한 눈빛을 띠고 있다. 마치 한 명이 여러 자아로 분열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외부에는 관심 없이 셋으로 나뉜 내가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삼중 초상 속 찰스 1세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 둘러싸여 있다. 가끔 이 작품을 볼 때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의 나를 떠올린다. 내가 또 다른 나에 둘러싸여 있는 순간. 상대를 바라보며 그 시선을 의식한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의식하고 있던 것은 ‘타인의 눈에 비친 나’였다. 삼중 초상화 속 인물처럼 나도 ‘남들이 생각하는 나’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타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어질지 걱정되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볼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다. 

   

 알고 보면 크나큰 착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남들이 항상 내 행동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 남들이 나의 실수를 탓할 것 같고 내 실패나 잘못을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 같다는 생각.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상대를 크게 실망시킬 것 같다는 두려움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종의 자기중심적 사고였다.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부러 촌스러운 옷을 입게 한 후 다섯 명의 평범한 학생들 사이에 잠시 동안 앉아 있게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학생들 중 50% 이상이 자신의 촌스러운 옷차림을 눈치챌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10~20%만이 참가자의 촌스러운 옷차림을 알아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타인이 관심 가질 것이라 여긴다. 극 속에서 조명이 주연 배우를 환하게 비추듯 남들에게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가 크게 비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 내 말이나 행동이 남들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인 모두에게 깊은 관심을 보내고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나만 해도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고민으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을 가장 많이 한다. 사람들이 딱히 이기적이고 정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관심을 먼저 쏟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다. 학창 시절 나는 내 성적이 떨어지거나 발표 시간에 실수를 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실망시킬까 걱정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깊은 관심은 없었다. 우리 엄마조차 생활에 바빠 나를 깊이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 혼자 ‘주변인들을 실망시킬까 봐’ ‘남들의 눈에 비친 내 이미지가 망가질까 봐’ 걱정하고 신경 썼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냉정한 현실을 곱씹다 보면 마음 속에 약간의 자유가 자리잡는다.          


 더 냉정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명절에 나의 연애와 결혼 등 각종 인생사를 걱정해주는 친척들, 걱정을 빙자하며 내 뒷얘기를 하는 사람들 중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깊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잠시 나의 실수나 잘못된 선택, 인생사를 걱정하다 곧 자신에 대한 생각과 고민으로 빠져들 것이다.

 

 김두식 교수는 자신의 저서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한 귀퉁이에 약간의 여유 공간을 마련할 수는 있습니다. 모방 욕망과 무한경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게 우리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잠깐 산소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꼽아봐야 열 손가락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그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욕망해도 괜찮아> 중 (김두식, 창비)- 


 물론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주변에 있다. 우리는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자주 걱정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내가 아니다. 그들의 기대를 일일이 채우거나 실망시키지 않으려 살아가다 보면 내 의지와는 동떨어진 행동을 많이 하게 된다.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들을 간호해 왔던 작가 브로니 웨어는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터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이들이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는 것으로 꼽았다. 주변의 요구대로 사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쓰다 보면 소중한 내 시간이 날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나에 대해 가장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나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생각할 사람은 나다. 내 실수나 잘못, 실패, 인생사가 남들의 머릿속에 거대하게 자리 잡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약간은 뻔뻔하게, 약간은 바보같이 실수하며 살아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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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예전에 썼던 글 중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비결'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의 성격에 맞추어 많이 바꾸어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에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쓰는 중인 청소년 교양서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다음 주와 다다음주 화요일은 글을 발행하지 못할 듯합니다. 3주 후 12월 29일(화) 오전에 글을 발행하려 합니다. 글을 찾아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12월 보내시기를 빕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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