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sta Seo May 31. 2018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아시나요...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니기   #경북 문경, 예천

 포항지진의 여파로 일주일 연기된 2017년 수능 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늘 이때쯤 생기는 궁금증 중 하나가 ‘왜, 수능 시험 보는 날은 날씨가 더 추워질까?’였다. 올해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침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쪼그린 상태에서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쌍용계곡에 갔다.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쌍용계곡

    

 쌍용계곡은 “택리지”에 ‘경치 좋고 사람살기 그만인 복 받은 땅’으로 소개될 정도의 숨은 명산 도장산(827.9m)을 오르기 위한 들머리 중 하나다. 나는 등산로를 들어선 후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그만 쌍용계곡의 겨울에 몰입되어 버렸다.   

 

산 공기의 차가움을 반영하는 푸른빛 하늘,  

지쳐 말라버린 나뭇잎과 앙상한 가지들,  

산 길 바닥 돌 틈 사이에 쌓여있는 갈색 나뭇잎,  

조각조각 하얗게 부숴져 살얼음으로 깔려있는 바윗돌 사이 계곡물    

겨울 산 길의 풍색과 수능 시험일 이라는 기분이 내 귀에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울리게 하였다.  


쌍용계곡 등산로 초입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모짜르트의 27개 피아노 협주곡 중 “24번”과 더불어 두 개밖에 없는 단조 작품이다.   

우리네 인생의 상실, 슬픔을 깊고 진솔하게 표현한 느낌 때문에 평소에도 즐겨 듣는 음악이다.   

 1악장에서 쌍용계곡의 겨울이 담고 있는 상실의 아픔과 슬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주제와 조화하고 경쟁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2악장에서는 쌍용계곡의 아름다운 지난 계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3악장의 우수, 상실, 슬픔을 오히려 강하고 힘있게 표현한 화려한 음을 들으며 산길을 걸으니 리듬에 따라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겨울에는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들으며 문경의 쌍용계곡을 걸어보자. 주어진 인생에 감사할 뿐 아니라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의 쌍용계곡

 



 쌍용계곡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 경북 예천에는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회룡포”가 자리잡고 있다. 회룡포라는 이름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천이 350도 되돌아 흘러나가는 “육지 속 섬마을”로 맑은 물과 은빛 모래사장을 자랑하는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오죽 그 경관이 아름다웠으면 드라마 외에 “1박2일”등 예능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촬영을 했을까.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 회룡포

  

 이곳을 둘러보기 위하여는 3개의 등산길과 강변길, 올레길 등 여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날은 그 중 천년고찰 장안사에서 출발하여 용주시비, 회룡대, 봉수대를 지나 삼강주막에 도착하는 코스를 걸었다. 삼강주막은 낙동강 물길과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으로 삼강리라 붙여진 곳에 있다.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장사하던 배들이 삼강 나루터를 거쳐 갔는데 이때 들른 주막이 라고 한다. 현재 관광지로 개발 공사가 한창 중 이었다.    


막바지 공사 중 인 '삼강주막'


 비룡산을 올라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의 풍경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낮게 떠있는 하얀 구름,   

산 능선에 걸쳐 누워있는 구름 그림자,  

감싸 안듯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곡선의 물길,  

자락을 펼치고 있는 천변의 모래사장과 아담한 마을,    

이 한국적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때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5번”이 생각났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듯한 교향곡 같은 웅장함,   

서정적이고 애수 넘치는 멜로디 속 건반의 황홀함,  

자연미를 보여주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기품,     

회룡포의 풍광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목가적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행복에다 리듬, 멜로디, 화성에 취해버리는 호사까지 누린 겨울날의 오후였다.    


회룡대에서 바라 본 회룡포


 삼강주막까지 1시간이 넘는 겨울 산 길을 “피아노 협주곡 25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걸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이렇게 계절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는 자연 속을 멋진 음악과 함께 건강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면 낙동강 비룡교를 중심으로 양쪽 강변에는 황금색 갈대 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 소리를 듣기 위하여 석양의 햇빛을 받는 갈대 밭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노란 갈대와 강변의 바람이 겨울의 스산함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그 스산함에 빠져들었다.


낙동강변 갈대 밭

   

 오늘 하루는 세상에 완전히 취한 하루였다.  

쌍용계곡의 겨울 산에, 회룡포의 아름다움에, 황금색 갈대의 춤들에 그리고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겨울이라는 계절에 딱 맞는 경상북도 문경, 예천 지역 트레킹 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색빛 도시에서 선물이 된 도시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