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윤리 대논쟁> 서평
동물을 음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동물에게 끼치는 손해에 비해 인간이 얻는 이익은 아주 사소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육식은 윤리적으로 옹호되기 어렵다. 예컨대 동물을 먹기 위해 사육하고 도살하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상당한 양의 고통을 주지만 인간이 거기서 얻는 이익인 입맛은 그 고통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또 육식에서 생기는 영양섭취는 채식으로도 보충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판단은 육식 이외에 동물원, 서커스, 사냥, 모피 등의 영역에서 동물을 이용하는 관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_<동물 윤리 대논쟁> 중
동물윤리학을 주제로 하는 <동물 윤리 대논쟁>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연구에 있지만, 응용 윤리의 성격상 현실의 관행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개고기 철폐 운동”이나 “반려 동물의 윤리”에 대하여 민간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동물의 윤리는 비단 ”강아지“뿐 아니라 평등의 원칙에 의하여 살아있는 모든 동물에 대한 학대를 비판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고기”같은 소수 문화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공장식 축산업, 실험동물, 애완동물 등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종이나 성별 그리고 타종에 상관없이 자연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능력과 습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물 윤리에 관한 저서들을 읽으며, 때에 따라서 육식을 하는 그리고 거리낌 없이 모피(동물의 털이나 가죽으로 만든 생산품)를 구매하는 지금의 나를 다시 한번 반성한다. 동물에서 얻은 고기, 털, 가죽, 동물원, 그리고 동물 실험으로 얻어진 의약품이나 화장품을 전부 베타 할 순 없겠지만 의식적으로 출처를 느끼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 우리가 쉽게 얻어지는 생산물들은 소중한 생명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고기를 사기 전 공장식 농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평생을 고통에 살았던 동물과 내 눈앞의 붉은 고기는 끝내 도살된 그들의 살조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약 15년 전 동물권행동단체 “카라” 캠페인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중 “동물쇼와 동물 관람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도 한 적이 있었으나, 세 명의 자라나는 자녀들과 도심에서 동물원에 가지 않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름 타협점을 찾은 것은 동물 쇼는 관람하지 않았으며 국립 동물원에 비하여 사육 시설이 협소한 민간 동물원과 수족관 관람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이었다. 연 중 1,2회 방문하는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에서도 홍학의 날개를 인위적으로 자르는 학대 혐의가 있는 줄은 몰랐다. 안 가리라 다짐은 못하겠으나, 동물원에 간다면 동물원은 교육적인 곳이 아닌 상업 시설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 줄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불행하게 사육되며 비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이다.
의식하며 동물을 소비하는 것과 의식하지 않고 동물을 소비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며, 그들은 인간을 위해 삶을 사는 매개체는 더더욱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공리주의자이자 의무론자로서 일 년에 하루, “비건데이”를 지정하여 육고기를 먹지 않으며 그들의 삶을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어떨까. 현실 가능한 앞 날을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