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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n 05. 2024

장애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

<꿈꾸는 구둣방>을 읽고

 문재인 전 대통령 구두, 유시민 구두, 이효리 구두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은 사회적 기업이 있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그 브랜드조차 몰랐으나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을 만드는 구두 브랜드 '아지오'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 한 명의 움직임으로 청각 장애인들의 어엿한 일터를 만들고 그들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 떳떳한 생산 활동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기적이 있다면 구두 만드는 풍경의 작업실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꿈꾸는 구둣방>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장애를 극복한 그들의 여정이 저서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거동이 불편하면 휠체어를 타면 되고 손이 불편하면 발이 그것을 대체하면 될 것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수어를 배우면 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래마저 칠흑 같은 어둠이리라. 발을 딛고 서있는 바닥의 깊이마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평범한 나는 감히 가늠조차 해볼 수 없었다.


 유석영은 유년 시절 갑자기 눈이 멀었다. 어디선가 들었다.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던 사람보다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사람의 고통과 풍파가 더 거세다고. 시각 장애를 판정하던 의사도 그의 주변 사람을 비롯하여 그의 부모마저 시각 장애인이 된 유석영을 이제는 틀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눈만 보이지 않을 뿐 멀쩡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은 구두를 만들 수 없을지언정 구두를 만드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그것도 구두를 만드는 생산자조차도 장애인으로 말이다. 청각 장애인은 겉으로 봐서는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기에 그에 따르는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귀가 안 들리는 대신 집중력이 좋아서 손재주가 뛰어나다. 구두를 만드는 작업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대표와 귀가 들리지 않는 직원들의 하모니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리라. 청각 장애인 직원들은 조직 생활의 메커니즘에서 으레 벗어났다. 무단이탈을 서슴지 않는 그들을 보며 유석영은 생각했다.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테두리에 가둘 때는 언제고 일반인과 똑같은 노동력과 사고를 강요하는 것 또한 하나의 폭력이라고. 천천히 그리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아지오가 만드는 느린 구두처럼, 그들의 연주는 매일이 무모함을 뛰어넘는 도전이었다.


 싸고 예쁜 구두는 많다. 아지오도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가며 구두를 생산했다면 더 다양한 구두를 더 많은 소비자에게 공급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지오의 설립 이유는 유석영의 성공이 아니었다. 수어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언어이지만 수어로 인해 청각장애인들은 고립되고 만다. 수어를 사용할 줄 아는 청각장애인하고만 소통하다 보니 세상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은 이전보다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도 돈도 아니다. 비장애인처럼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아지오는 매일의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그 힘들고 기나긴 여정을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선한 마음으로 일궈낸 것이다. '장애인이 만드는 구두'에서 '장인이 만드는 수제화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는 그들의 남성화 드레스 가죽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동물 복지 계란을 사면 친환경 육계 사육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유기농 식품을 사면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로 그것을 현명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제품과 착한 기업에 소비를 한다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소비의 개념이 재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지오는 품고 있다.






남이 나를 규정하는 대로 나 자신을 규정하지 말자. 따지고 보면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 외에는 다 멀쩡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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