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여자의 꿈
주말, 남편이 하는 일이라곤 누워 있는 것. 마지못해 일어나 아이들과 놀아주는가 싶더니 이내 돌아 눕는 것. 그 이상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평일에는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요즘말로 '독박'으로 나 혼자 아이 세 명을 키웠다. 신혼시절 유명 여자 연예인이 이혼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혼 사유는 '개발자 남편의 잦은 야근'. 그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결혼 10년 차, 평일 집에서 그와 밥 한 끼 먹은 기억조차 없다. 그는 직업 특성상 야근은 일상이고 그렇다 할 휴일 없이 주말에도 수시로 업무를 확인한다. 출근하는 아빠에게 아이들이 건네는 인사는 "아빠 내일 만나"다.
두 살 터울로 아이 세 명을 낳았다. 남편은 주말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느지막이 기관에 보냈던 터라 육아와 가사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남편이 자주 미웠다. 부모는 분명 둘인데 육아 참여자는 한 명이었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익숙한 내가 하고 말지'라고 생각했으니 그는 소변 기저귀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그런 남자였다. 아이가 둘셋으로 늘어나자 이건 아니지 싶었다.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던 남편에게 대화를 가장한 압박과 요구를 하며 나는 기어코 '승리'를 거두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남편은 이따금 아이들을 씻기고 종종 아이들과 외출하여 시간을 보냈다.
육아에 심신이 고단할 때는 야근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아기는 꼭 내가 밥을 먹으려고 하면 울었고 엄마가 화장실에 가는 시간조차 노여워했다. 아이 세 명을 씻기고 나면 지쳐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나 기저귀를 떼고 스스로 화장실에 다녀온다.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제 알아서 놀기도 하면서 육아의 난이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밥을 제시간에 '여유 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매일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생리적인 신호가 왔을 때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기쁨, 점차 육아는 '살 맛' 났다.
은퇴 후 삼시 세끼 꼬박 먹는 남편을 아내는 '삼식이'라고 칭하며 그녀들만의 고통을 호소한다. 평생 제삼자의 끼니를 챙겨주는 것이 얼마나 부담되는 일인지 주부가 되니 실감 난다. '주부'이지만 평일 남편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지금의 나는 얼마나 축복받았는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남편이 미웠는데 아이들이 조금 컸다고 그런 남편을 둔 내 팔자가 좋아 보였다. 그 기쁨도 잠시, 남편의 안위가 걱정됐다. 집에서 잠만 자고 밖에서 모든 먹거리를 해결하는 남편의 건강이 괜찮을 리 없었다. 지금이야 젊어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몸 여기저기 망가질게 뻔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냐고 사실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남편을 질타하고 가사에 무심한 그가 싫었다. '독박육아'. 요즘 세상에 나처럼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집은 없으리라 여겼던 것. 그러나 결코 나 혼자 키운 게 아니었다. 남편은 자정이 넘은 밤 집에 돌아와서 우리의 흔적들을 치우고 때론 주방으로 출근했다. 매주 수요일 분리수거를 하고 일요일이면 집안을 쓸고 닦는다. 격일로 음식물쓰레기와 20리터 종량제 봉투를 버리며 출근한다.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던 워킹맘처럼 남편도 그러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새벽에 들어오는 그는 주말에도 수시로 모니터링하며 업무를 한다. 때론 밤을 지새우며 '작업'을 한다. 그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을 터인데 회사와 가정에 헌신하느라 제 몫을 챙기지 못한다. 그런 그가 요새 들어 부쩍 처연하다.
'여자가 무슨 일이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하면 그만이지.' 하는 시대는 갔다. 그러나 나는 더 갔다. 부수입이 아닌 주수익을 창출하여 남편에게 자유를 주는 것. 허황된 목표일지라도 남편의 퇴사를 바라는 아내라니 철없어 보여도 멋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