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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06. 2024

Epilogue

 가정과 커리어 두 마리 토끼 잡기


 오전 8시 45분이면 진정 내 시간이 찾아온다. 남편은 회사에서, 아이들은 각자 유치원과 학교에 소속되어 자신의 역량을 채워간다. 나는 너저분한 거실을 부러 치우지 않고 나만의 일터로 출근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카페에 앉아 분위기를 내지만 아이들의 진한 흔적이 베여있는 빈 거실이 주 무대다. 이른 아침 일독한 책을 블로그에 정리하고 어제 제공받은 카페 리뷰를 작성한다. 스마트 스토어 주문과 CS 응대를 하고 브런치 스토리에 연재글을 작성한다. 반짝이는 시간이지만 운동과 독서는 빠질 수 없다.


 지난주에는 늦은 여름휴가에 다녀왔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간식으로 먹을 소금빵을 사고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었다. 제공받은 펜션, 리조트, 호텔을 모두 숙박하기 위해 좁은 제주에서 매일 숙소를 이동해야 했다. 번거로울 여정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매일 바뀌는 숙소조차 아이들에게는 설렘과 즐거움이었다. 제주의 서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서귀포의 푸른 초원에서 승마 체험을 했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질 때는 애월의 새로 생긴 실내 시설에서 시간을 보냈다. 뿐만 아니다. 제주에서 먹고 마시는 것 전부 ‘제공'받은 것이었으니 '협찬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긴 생머리지만 곱슬기가 심해 일 년에 두어 차례 미용실에 가야 한다. 한번 갈 때마다 세 시간은 족히 앉아있어야 하는 것도 곤욕인데 별것 아닌 머리털에 수십 만 원을 지출하다니, 전업맘으로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과 2년 전부터 미용실에 가는 횟수가 소폭 늘었고 들어가는 지출은 0원이었다. 결혼 전 받았던 고가의 피부 관리 등을 꾸준히 받지만 역시 지출되는 비용은 없다. 협찬으로 여행도 다니고 외면을 가꾸게 된 것이다.


 돈에 굴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생태계라지만 내가 하는 것은 굴복이 아닌 협업이다.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고 했던가. 그러나 협찬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내가 받은 서비스와 물질에 상응하는 무형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홀케이크를 제공받았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상점부터 홀케이크의 다양한 구도, 먹는 모습 등을 50장 가까이 사진으로 남긴다. 홀케이크를 먹고 경험한 것을 나만의 감성과 색채로 표현하는 작업에는 1시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난 2월 '국내 여행' 콘텐츠로 시작한 블로그에 '협찬' 콘텐츠가 더 많은 것은 퍽 아쉽지만 그것은 향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위탁판매는 매일 오전 십 분 전후의 시간이 소모된다. 때문에 여행 필수품 중 ‘맥북’이라는 큰 짐이 하나 추가된 것은 유일한 단점이다. 그러나 하루 십 분으로 매달 300만 원 이상의 매출이 나오니 위탁업은 전업맘의 쏠쏠한 부업거리 중 하나다.


 현재 나의 소득을 돈으로 환산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면 워킹맘 대열에 합류해도 괜찮지 않은가. 이전과 달라진 점은 국내 주식이 아닌 미국 주식을 매수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커피 한 잔에 손을 바들바들 떨지 않게 된 것이다. 커피 한 잔에는 공간을 사용하며 나의 능률을 높이는 '능률 값'이 들어있다. 그 언제라도 카페를 방문하여 선뜻 값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 국내 주식도 좋지만 미국 주식은 주기적으로 배당금이 나오고 안정감이 있다. (개인의 의견이기도 하지만 주식 전문가들의 조언을 '책으로' 접하기도 했다. 우량주 기준으로 미국 주식은 국내 주식보다 최소 세배 이상의 자본이 필요하다.)


 목가적 풍경이 드리운 곳에 시설이 잘 갖춰진 시골집. 시골에 있지만 도심과 접근성도 좋고 주택 시설이 호화로워 아파트 부럽지 않은 곳.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고 마당에서 그 언제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남편은 비로소 퇴사를 하고 그간 하고 싶었던 비즈니스를 한다. 부쩍 생긴 여가 시간에 그는 자상한 아빠로 탈바꿈한다. 그가 내내 피곤에 절었던 것,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았던 것은 그의 진실된 모습이 아닌 회사의 노예로서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철없고 허황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꿈꾸며 한 발씩 내딛는 것에서 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 아직 뾰족한 수단은 없다. 그저 마음이 흐르는 책을 읽듯 손에 잡히는 일을 서두르지 않되 진취적으로 해나간다. 나는 분명 성장 중이고 그 끝은 성공이라 짐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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