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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Aug 23. 2024

전업 주부의 오전 일과

때 빼고 광내는 아줌마

 육아가 고단해도 나를 가꾸는 일에는 바지런을 떨었다. 말 못 하는 작은 아기 앞에서도 무릎 나온 바지와 늘어난 티셔츠 대신 뱃살과 처진 엉덩이를 가려주는 면드레스를 입었다. 어깨가 넓어서 몸집이 커 보이는 5부 상의보다 몸에 밀착되는 민소매를 '겨울에도' 즐겼다. 가슴 밑선까지 내려오는 긴 기장의 머리카락을 하루도 빠짐없이 씻어대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향 좋은 바디 미스트를 뿌렸다. 남편은 언제라도 흐트러짐 없는 내 모습을 좋아했다. 결혼 10년 차에 온다던 권태기는커녕 아직도 남편은 나에 대한 환상이 가득하다. 그 내면에는 나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으리라.


 집에서도 때 빼고 광내던 나였으니 아이들이 모두 기관에 다니게 되자 블로그로 나를 치장하는 데에 더욱 심혈을 가했다. 자그마치 독박 육아 9년 만에 찾아온 내 시간이었다. 태생적으로 짧은 속눈썹에 가모를 붙여 깊은 눈매를 연출하고 노화를 늦춰준다는 피부 관리를 주기적으로 받는다. 결혼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던 네일 아트를 정기적으로 받게 될 줄이야. 사람 일은 알아가도 모를 일이다. 뭉툭하고 수수한 손톱을 좋아하던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손톱부터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30대 중반.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실감 나는 매일이다. 40대가 이 글을 읽는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거울을 볼 때면 세월이 여기저기 묻어나 서글프다. 손등까지 넓게 퍼진 기미, 좁은 이마에도 한 획을 남긴 한일자, 푹 꺼진 미간, 듬성듬성 보이는 흰머리, 탄력 없이 처진 뱃살과 엉덩이 등이 그렇다.


 새벽 4시 30분 스마트폰이 분주히 울린다. 세 아이와 뒹굴던 침대에서 체위만 바꿔 작은 조명을 켜고 책을 읽는다. 5시 45분,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고 집 앞 피트니스 센터로 향한다. 땀에 절은 채 집에 도착하면 일어난 지 한참 된 아이들이 남편과 함께 반겨준다. 아침을 먹이고 등교와 등원을 하고 나면 진정 내 시간이 찾아온다. 3시간. 운동을 하고 협찬으로 나를 가꾼다. 스마트스토어 주문 관리를 하고 블로그 포스팅을 발행한다. 분초를 다투며 시간을 사용한 탓에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열정적으로 나에게 쏟아부은 시간들은 오후 육아와 가사에 윤활유가 되어준다. 즐겁게 기관에 다녀온 아이들과 반갑게 재회하고 사랑을 나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때는 나도 건조된 옷가지를 개키고 저녁 준비를 한다. 이제는 전업 주부가 아닌, 몇 푼이라도 소득이 있는 '워킹맘'이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하루라는 시간은 부자든 빈자든, 약자든 강자든 공평하게 주어진다. 24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분초를 쪼개어 시간을 사용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온다. 탄탄한 몸매, 쇼핑몰 소득, 협찬, 마음의 양식 그리고 행복. 만일 오전에도 나만의 시간이 아닌 전업 주부로서 삶을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지금보다 깨끗한 집안, 정갈하고 푸짐한 집밥 그리고 여유. 그 외의 소득은 없으리라.


  "엄마가 너무 예쁘네, 아가씨 같아.", "아이는 누가 봐주는 거죠? 애를 셋이나 낳는데 날씬하네." 아이들과 외출할 때면 꼭 듣는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1호의 친구들은 종종 '00 엄마가 보고 싶다'며 1호를 찾기도 한다. 제삼자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서 하는 노력은 아니었다.


 건강해지기 위해 했던 운동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치장이 그럴싸한 겉모습을 만들어줬고 그 자태가 협찬으로 이어져 더욱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 선순환이 아닐 수 없다. 소속된 직장은 없지만 엄마의 분주한 오전 시간은 아이들 나름대로 해석한다. 여전히 역할 놀이 속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지만 업태가 확장된 것이다. 엄마는 운동도 가고, 컴퓨터로 일도 한다는 것.


 "나도 엄마 되고 싶다. 엄마가 되면 집에서 놀 수 있잖아" 불과 1년 전에 들었던 말이다. 전업 주부는 집에서 아이들 '뒷' 정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가족들 식사를 준비하고 매일 집을 때 빼고 광낸다. 그러나 정작 '소득'은 없으니 아이의 말은 틀린 말이기도 했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의 시선처럼 남은 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의 일 년 전 시각은 없어졌으나 나를 형용하는 보다 또렷한 수식어구를 위해 오늘도 분주히 오전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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