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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Oct 01. 2023

추석에 하는 여행

며느리 노릇은 뒷전, 친정 식구들과 안온한 여행

 이번에도 여행이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친정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결혼하고 추석마다 여행을 제안하셨고, 우리는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숙소에 머무르며 연휴를 보냈다. 올해는 내가 철이 들었는지 시댁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마음이 문득 짙어진다.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에 연휴의 시작 날에 먼저 시댁에 들러서 어머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나는 미래에서 온 며느리인가. 전 한번 부쳐본 적 없이 그저 어머님이 해주시는 밥상을 해치우는 일만 해왔는데도 어머님은 쓴소리 한 번을 하지 않으신다. 이번에도 해본 적 없는 전이라도 부치며 "며느리 노릇"을 해보려 시동을 걸었으나 어머님께서 극구 사양하셨다. 정오즈음 도착한 시댁에서 나는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올렸다. 추석 연휴에 시댁 부모님을 뵙고 나니 여행을 떠나는 길이 한결 가벼웠다.


 여행지는 막내 고모네 별장이 있는 영흥도다. 생각보다 도로는 한산했고, 선선한 바람에 햇살은 따뜻하여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논과 산으로 뒤덮인 영흥도 별장은 해풍의 영향을 받아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드나든다. 별장은 시골 마을에 있어서 목가적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도와 도로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일 차선의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논두렁의 금빛 곡식들과 우거진 숲 그리고 반짝이는 하늘을 한 폭에 담아본다. 비가 온 직후라 땅과 풀들은 젖어 있어서 맺힌 물방울들이 자연의 풍광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영흥도의 방아깨비는 아이들의 손바닥만큼 크다. 풀 속에서 뛰어다니는 방아깨비를 잡아서 다리가 몇 개인지 세어보고 유심히 관찰해 본다. 미끄러운 흙 길에서 그만 넘어져 옷은 흙탕물 범벅이 되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애써 너그러운 웃음을 지어본다. 나라면 해맑지 못했을 일화를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도 배운다. 작은 부정의 감정은 화를 내려다가 아이들의 미소에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주변에 사람이라곤 우리 밖에 없으니 라떼도 리드줄을 하지 않았다. 혼자 냄새 맡기에 열중하다 멀어진 나를 보고 금세 달려와 좋다고 미소 짓는다. 도심에서는 뛰어 본 적 없는 라떼가 마음껏 뛰어노는 노견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일상의 산책은 시간에 쫓겨서 노즈워크(Nose Walk)에 한창인 라떼를 매번 재촉한다. 리드줄 없이 오로지 냄새 맡는 것에만 열중하는 라떼를 보니, 여행지에서 최고의 일탈은 단연 라떼 산책이다. 더러워진 라떼를 개 샴푸가 없어서 별장에 있는 사람 샴푸로 목욕을 시켰다. 케라시스의 진한 향이 오래도록 라떼 몸에 머금어서 라떼를 자꾸만 안아본다.


 별장 옆으로는 작은 밭과 과수원이 있다. 사과, 포도, 배, 복숭아, 마, 대파, 당근, 상추, 방울토마토, 블루베리, 고구마 등 많은 과일과 야채들은 갓 따먹으니 맛과 재미가 더욱 좋았다. 아이들과 한 줄의 이랑에서 고구마를 캤다. 알이 굵고 붉은빛이 나는 고구마가 흙 속에서 지렁이와 땅강아지 사이로 고개를 쑥 내민다. 방울토마토와 사과는 똑 따서 먹는다. 시장에서 파는 그 맛과 같다. 가지 몇 개를 따서 푹 찐 다음 갖은양념 버무린 가지나물은 저녁 상에 찬으로 내민다. 가지나물은 첫 작품 치고는 맛이 좋았다. 블루베리는 지난여름 여행 때 다 따먹어서 먹을 열매가 없었다. 2호와 3호는 수확하러 나간 밭에서 만난 거미와 방아깨비를 잡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늘 그랬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곳에서도 삼천포로 빠져 그들만의 놀이에 몰입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너희만 좋다면 그 무엇이든 어떠하랴.


 영흥도에 머무를 때면 귀촌의 로망이 실현된 듯 착각에 빠진다. 영흥도는 시골이면서 시골이 아닌 곳이다. 사실은 그렇다. 터전은 시골임이 분명한데, 고모가 별장을 위대하게 지어놓으신 터라 최신식 가전이 즐비하다. 우리 집에도 없는 식기 세척기부터, 드럼형 세탁기, 의류 건조기, 80인치 이상은 되어 보이는 TV, 고급 식기류, 당구장, 찜질방, 스크린 골프 등 도심의 것을 그대로 시골에 구현해 놓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곳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소박하고 평화로웠던 추석 여행은 이번에도 성공적이었다. 가족 모두가 아프지 않음에, 가족의 화목함에, 무탈함에 여전히 감사하다.


2023 한가위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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