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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경외심으로 아이를 맞이하라

<발도르프 아동교육> 서평

by 아리스

1891년 로스토크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슈타이너는 20세기 초반 폭넓은 저술활동과 유럽 전역에서 6000회 이상의 강연에서 정신세계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며 최초로 인지학을 창시하고 발전시켰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은 단순한 지식체계가 아닌 "살아있는 자극제"로 현재 스위스 바젤 괴테아눔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며 현대인의 삶 속에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그중 발도르프 교육은 1994년 유네스코에서 창의 교육과 인성 교육으로 인정한 세계적인 '혁신교육'이다. 처음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학문을 접했을 당시에는 혼에 대한 세계관 때문에 마치 종교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슈타이너의 인지학은 인간이 고차원적인 세계, 우주의 영적 요소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아이들을 경외심으로 맞이하고 사랑으로 가르치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게 하라"는 경구는 발도르프 교육의 본질을 잘 함축하여 보여준다. 사람의 삶은 식물과 같아서 식물의 뿌리처럼 자신의 미래 상태를 자기 안에 깊이 감추고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식물은 이미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소질을 품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보이지 않는 성장이 곧 나타날 것이다.


슈타이너는 인간 발달을 육체 발달과 정신적 발달을 통합시킨 7년 주기로 설명하면서 네 가지 구조로 성립된 구성체로 본다. 모태라는 보호막 안에서는 출생 시까지 물질 체로 분류하며 이후 생후 7년 동안은 생명체 또는 에테르체로 본다. 슈타이너는 출생 후 7년을 가장 중요한 중요한 시기로 간주한다. 에테르체에는 기질과 성격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탄생 전에 자연이 사람의 물질적 몸을 위해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준 것처럼, 출생 이후에는 양육자가 아이에게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올바른 환경만이 아이의 신체기관들이 정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때 양육자의 잘못된 태도와 가르침은 이후 어떤 시기에서도 다시 바로잡을 수 없다. 생명체 시기의 아이는 젖니 갈이 시기로도 불리며 모방과 본보기로 바른길로 성장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상상과 습관, 그리고 기억이 저절로 이루어져야 하며, 양육자는 강요된 사랑이 아닌 참된 사랑을 주어야 한다. 동요는 좋은 교육 수단으로 소리의 아름다운 울림을 전신을 이용해 하나의 감각 기관으로 느낀다. 의지의 근본을 만들어가는 기간으로 오히려 가르치면 발달에 방해가 된다. 책이 아닌 양육자의 음성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추상적인 설명이 아닌 정신적으로 명료한 생생한 그림들을 그려보는 이야기 시간은 책 읽기로 대체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는 어른의 표정과 억양 그리고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절반쯤 밝혀내고 말하기 전에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이야기할 때는 아이의 수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어른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발도르프 학문을 접했을 때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기성품은 교육 수단으로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물질주의 시대의 공장에서 나온 장난감은 광택이 반지르르하고 근사하다. 그렇게 완벽한 장난감은 아이가 창조적으로 상상해 낼 여지를 주지 않으니 아이의 판타지를 죽인다. 완성품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뇌는 더 이상 활동할 이유가 없다. 그 뇌는 개발되는 대신 위축되고 바싹 말라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발도르프에서는 자연물을 가지고 놀고 직접 놀잇감을 만들며 뇌를 활성화시킨다.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성취감까지 기를 수 있는 최적의 활동이 아닐 수 없다.


사람에게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은 의지에 속하는 기본 기질이다. 가장 들여다보기 어려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의지는 생후 7년 동안에 물질체로 하여금 기본적인 의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생후 7년 간만 가능하다는 것을 교육자는 늘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비교적 사람의 생각과 개념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기본적인 기질인 의지는 영유아 시기 때 형성되어 그대로 자라나게 된다. 이 시기의 교육자는 방대한 지식의 양보다 교육자의 도덕적 자세와 좋은 생각, 그리고 마음가짐이다. 아이들이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릴 까봐 겁낼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학습 시기에 정신이 형태를 만든다. 감정으로 느끼고 받아들인 것만 남는다. 보편적인 것은 남아서 자라나니 사람을 위한 교육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 프로그램의 중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조기 교육이 만연한 시대에 일찍 쓸 수 있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읽고 쓰는 것은 만 11세나 12세에 배우는 것이 적합하다. 또한 쓰기 다음으로 읽기를 배워야 한다. 쓰기는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고 몸의 자세도 관여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아이 전체가 동원되는 작업이다. 읽을 때는 머리만 활동한다. 신체기관이 더 많이 쓰이는 작업을 먼저 배운 후 머리만 활동하는 과제는 가장 나중에 가르쳐야 한다.


사춘기 시기인 아스트랄체는 감정체, 감정혼 또는 동물계로 부른다. 아스트랄체는 배움과 관계가 있다. 인생을 시계로 비유하면 아스트랄체의 변화는 분침이고 에테르체는 시침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첫 7년의 시기가 모방과 본보기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면, 이후 7년은 계승(본받음)과 권위가 중요하다. 권위란 강요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직접적인 권위를 일컫는다. 도덕적 감정은 귀감이 되는 인물을 통해 계발되므로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존경심과 경외감을 품을 수 있는 어른이 한 명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권위와 계승 그리고 본받음을 배울 수 있다. 감정이 성장하는 시기로 욕구, 충돌, 열정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옛날이야기를 통해 깊은 내적 힘을 일깨워 줄 수 있다. 위대한 인물 이야기는 도덕적 규칙보다 더 큰 영향을 준다. 미적 감각을 통해 선함은 아름답게 악함은 추하게 느끼며 안정감을 갖게 된다. 또한 셈을 배워서 기억력 형성을 이끌어야 한다.


자아체는 세 번째 7년의 주기로 의식혼으로 불리기도 하며 사고가 발달한다. 고상한 인물과 아름다운 시, 위대한 거장의 작품들을 접하며 고유의 자아를 탄생시킨다. 배움을 통해 고차적인 관념과 직관으로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위 세 가지의 구성 요소의 변형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아가 눈을 번쩍 뜨는 순간 세 가지 '체' 모두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교육자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의 지혜 앞에서 자신의 지혜를 뒤로 접어 두어야 한다. 이 시기에는 사람과의 독립과 관계가 있다.


아이에게 학교는 삶이어야 한다. 학교는 고유의 삶을 자아내야 하며, 외부의 삶이 그 안으로 흘러들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훗날 얻지 못할 것들을 학교에서 얻어야 한다. 교육자의 자질은 사범대학의 교육학 시험이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를 보아야 한다. 교육자의 영혼의 힘은 아이의 영혼 안으로 흘러들어 간다. 씨앗은 식물 자체뿐 아니라 태양의 힘과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상으로, 풍부한 이미지로 옷을 입혀야만 한다. 아이가 자연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비유의 힘을 자극하여 일깨워 주어야 한다.


현대의 교육 현실은 대단히 세부적이고 방대한 양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책을 읽을 정도로 한글을 배우고 익히며 그렇게 지적인 아이는 이상적인 아이로 비친다. 그러나 발도르프 학문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실상은 아무 쓸모가 없다. 오히려 현대의 빠르고 많은 교육 때문에 아이의 몸과 영혼 모두 허약한 사람으로 커간다. 삶이란 한순간 한순간이 흥미롭고 아주 사소한 것들도 흥미롭다. 교육예술의 첫 번째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생활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 능력"이다. 흙을 밟고, 마음껏 뒹굴고 지칠 때까지 뛰어놀 수 있는 시기는 유년기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아이가 흥미를 가지고 하는 활동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는 인내와 지혜는 교육자와 양육자 모두가 가져야 할 품성이다. "이건 위험해", "더러워져서 안돼"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아이의 호기심과 재미를 북돋아 주는 것은 아주 좋은 교육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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