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윤리적 최소주의자, 지구에 삽니다> 서평
바야흐로 10여 년 전, 나는 락토 오보(Lacto-Ovo) 채식주의자였다. 채식주의자라고 풀만 먹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채식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동물의 알과 젖까지는 허용하는 단계적 채식주의자도 있다. 쉽게 말해서 달걀과 우유는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였다. 우연히 접한 동물 윤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며칠을 죄책감에 시달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고, 그동안 먹었던 동물의 살점들을 모조리 게워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상 하나로 내면에서 뜨거운 반향이 시작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육식을 즐기지도 않았다. 고기를 끊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나물과 김치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었던 나는 원래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육식을 끊고 보니, 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에 나는 더 예민해졌다. 육수를 생각 못 했다. 사골로 우려낸 짬뽕에서 면만 건져먹을 수도 없었고, 두부를 좋아하지만, 돼지고기가 갈린 비지찌개는 먹을 수 없었다. 외식이 힘들었다. 3년 정도 락토 오보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다. 문득, 나의 식습관이 아이에게 검증되지 않는 위험한 모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고기를 먹었다. 아이 세 명을 출산하고 나서는 상황에 따라서 육식을 하는 '선택형' 채식주의자인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유연한 채식주의자)이 되었다.
<윤리적 최소 주의자, 지구에 삽니다> 저자는 지금의 나와 같은 플렉시테리언이다. 저자가 채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환경적인 요인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마이클 폴란도 주장하였던 바다. 지구에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의 50퍼센트가 농업에 이용되는데, 그중 77퍼센트가 가축이 사용하고 있다. 인간의 음식이 되기 위한 동물 사육장이 농경지의 77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재배하는 곡물 중 3분의 1은 공장식 축산 농가의 사료로 사용한다. 뿐만 아니다. 축산 농가 근처에 가면 암모니아 냄새로 방독면 없이는 진입하기 힘들며 농경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축의 분변으로 공기와 땅은 썩어가고 있다. 우리는 고작 15분의 식사를 위해서, 혀끝의 가벼운 즐거움을 위해서 우리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완전한 채식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끼, 한 달에 한 끼, 더 적게는 하루에 한 끼는 채식을 위한 식단을 차려먹으며 지구가 현재 처한 위기에 모면한다면 보다 건강한 행성으로 지구는 거듭나지 않을까.
제로 웨이스트의 채식은 선택이다. 그들은 환경을 윤리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집단이다. 내가 버리지 않은 길바닥의 쓰레기를 줍는다. 바다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프리다이빙까지 배운 저자는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벌인 선두주자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공물이라는 쓰레기 섬 GPGP는 바다 위의 거대한 영토가 되어 버렸다. 소각하거나 매립하거나 재활용하지 않은 쓰레기는 결국 하천이나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든다. 쓰레기 섬의 영토가 더 넓어지지 않도록 저자는 바다나 산과 같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레기를 줍는다. 언제는 1988년도 올림픽 마크가 인쇄된 90원짜리 라면 봉지가 땅속에 썩지 않고 그대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라면 봉지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쓰레기'가 시사하는 점은 크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빈 용기를 들고 다닌다. 환경 캠페인이었던 '용기내 챌린지'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물건을 사러 마트나 시장에 가면 진열대 식품들은 보기 좋은 플라스틱 포장지와 번지르르한 광택이 나는 비닐 랩 안에 들어있다. 이미 일회 용기 안에 들어있는 식품을 내가 가져온 용기에 가져다 사용하는 것은 친환경적인 요인이 아니다. 때문에 제로 웨이스트들은 마트 직원에게 애써 포장되지 않은 식품을 용기에 담아달라는 용기 있는 말을 해야 한다. 부러 전통 시장을 찾기도 하며 최근에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 용기를 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어들었다.
제로 웨이스트는 소비를 최소화하며 쓰레기를 줄인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다. 소비하기 전,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신중한 소비를 하며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사려고 한다. 저자의 집에는 에어컨도 없고 화장대도 없다. 화장품 소비를 중단하고 필요에 따라 '바셀린'만 유일하게 사용한다는 저자는 우리가 생필품이라고 생각하는 샴푸도 사용하지 않는다.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노푸(No Shampoo)'를 하고 나니, 모발이 굵어지고 윤기가 난다는 주변의 생생한 증언들은 솔깃하지만 아직 나에겐 용기가 부족하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피부 트러블도 거의 없으며 자연스러운 보드라움과 광택까지 난다니 화장품은 더 이상 생필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직은 용기도 부족하고 편리한 삶에 익숙해진 나는 591ml짜리 텀블러만 가지고 다닌다. 카페에 잘 가진 않지만, 가게 되면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물을 사 먹지 않기 위해 텀블러에 물을 가지고 다닌다. 아이들은 교육 과정 안에서 배운 대로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 줍기를 즐겨한다. 아이들이 주워 온 쓰레기를 웃으며 받아주지만 내면은 그렇지 못했다. '더러운 쓰레기를 어쩌자고', '쓰레기까지 가지고 다닐 여력이 안되는데...' 쓰레기를 나서서 줍진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주워 온 쓰레기를 진실된 마음으로 받으며 집으로 가져와 분리수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