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만찬> 서평
인류가 처음 등장한 구석기시대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어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야생의 매머드를 잡아야 했다. 혹독한 추위와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지방 조직을 합성하는 능력은 인류에게 생존을 보장해 주는 기회였다. 인류의 체내는 구석기시대에 지방을 비축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습성은 현대 인류의 유전자 속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더 이상 매머드를 잡지 않으며 곰을 피할 일도 없다. 혹한기에 식량이 없어서 지방을 비축해야 할 일도 없는데,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군것질을 하며 지방을 비축해 둔다. 누구나 알고 있다. '적게 먹고, 운동하라!' 그러나 <빈곤한 만찬>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섭생의 문제를 지적한다.
강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피마족(Pima)은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주 사이에서 이웃 지역과는 고립되어 원시 인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았다. 수렵 채집인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 피마족은 백인 커니 대령에 의해 발견되면서 식민지가 되었다. 애리조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생활하게 된 피마족은 더 이상 먹거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의 문명병에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성인의 75퍼센트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며 둘 중 하나는 당뇨병 환자가 나타난 피마족은 전 세계 영양 학자들의 관심을 받는 종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전자는 유지되지만 주변 환경이 급작스럽게 변하고 그에 따라 생활 방식 또한 갑자기 변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크레타 섬의 주민들은 식민화된 피마족과는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크레타 섬 주민들은 다른 지중해 인근 지역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올리브유와 치즈를 대량으로 소비하며, 돼지고기 가공식품과 버터는 거의 먹지 않는다. 놀랍게도 크레타 섬 주민들은 그들과 거의 일치하는 섭생을 가진 그리스,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사람들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안셀 키스의 연구에 따르면 심장 질환으로 가장 많이 사망한 핀란드 사람들과 크레타 섬 주민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린란드 이뉴잇은 대부분을 육식을 섭생하지만 정상 콜레스테롤 수치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콜레스테롤은 심장 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원흉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현대인들은 각종 약물을 투여받는다. 혈액 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올라가면 빨리 사망할 위험성이 높다는 논문을 일반인들은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면 질병에 걸릴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고 쉽게 해석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프레이밍 헴은 1960년에서 1990년 사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 다양한 조사를 했다. 그의 실험들은 늘 같은 결과에 이르렀다. 식생활 조절을 통해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얼마든지 낮추는 일은 가능했지만, 그것이 심장 혈관 계통 질환 사망자의 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었다.
마가린이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춘다'라는 그럴듯한 말로 미국과 유럽 가정에 오메가6을 제공하면서부터 제약회사들도 반콜레스테롤 연대에 합류했다. 불과 몇 년 만에 개발한 약들은 그 효능이 뛰어났으며 약품은 식품보다 효과 면에서 월등했다. 과학자들과 거대 제약회사들은 유능하고 부유했다. 잘못된 섭생 문제에서 발현된 질환인 문명병(비만, 당뇨 등)은 그 원인인 섭생을 치료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증상에만 작용하는 '약'을 원인이 사라질 때까지 복용하도록 권고한다. '약'을 처방하는 것은 제약회사와 병원 그리고 의사, 약사, 과학자 등 수많은 이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조부모 세대에 비해 현대의 우리들의 식사 준비는 크게 간소화되었다. 2시간이 걸리던 식사 준비는 전 성분과 열량이 표기된 완제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 2분 남짓이면 된다. 거창하게 차리더라도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 온 먹거리들의 손질과 먹기 위한 준비는 20분 남짓이면 끝난다. 이전 세대의 식사 준비는 음식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텃밭이나 안뜰 가금 사육장에서 직접 기른 것들이었는데 우리의 식사 준비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식품가공 업체에서 우리에게는 식사 준비를 대신해 주며 우리에게는 엄청난 시간적 자유가 생겨났다. 진보화된 문명에서 우리는 경이로운 식탁을 위해 조금 더 섭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습득한 새로운 섭생 방식, 다시 말해서 '현대의' 생활습관(특히 군것질의 보편화)과 '현대의' 식단 덕분에 과잉 열량 비축은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당분과 기름(구성 성분도 새로운 종류), 그 당분과 기름이 식품에서 차지하는 비율, 그것이 포함된 음식을 먹는 횟수, 이 모든 것이 과거와 달라진 요즘 모습이다. 과잉 열량의 비축은 겉으로 보기에도 흉할뿐더러 건강에도 아주 나쁘다.
군것질뿐만이 아니다. 야생에서 채집하던 인류들은 공장식 축산 농가에서 가축을 기르고 먹는다. 풀을 뜯어먹던 반추위 동물들은 옥수수와 콩으로 대체된 사료를 먹으려 자란다. 풀을 먹어서 우리에게 맛 좋은 지방을 공급하던 소는 옥수수와 콩을 먹으며 그 지방의 영양도 달라졌다. 지방은 소염제 역할을 하는 오메가3과 비율이 높으면 살이 찌는 오메가6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메가의 비율을 우리의 먹이사슬 토대를 이루는데 가축의 주 원재료인 옥수수와 콩은 오메가6의 비율이 매우 높다. 오메가3의 비율이 높았던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는 우리에게 분명 다른 영양이 담겨있는 우유와 고기를 줄 것이다. 우유는 성서에도 나오는 음료이며, 그 구성 성분이 안정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소가 무얼 먹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반추 동물만이 아니다. 어류는 스스로 오메가3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먹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양식장의 어류는 오메가6 비율이 높은 곡물 사료를 먹기 때문에 흰 살 생선은 더 이상 오메가3의 비율이 높은 풍부한 식단이 아닌 것이다. 닭은 부리로 알을 만든다는 속담처럼 가축은 먹는 것으로 알과 고기를 우리에게 공급해 준다. 단조로워진 가축 사료는 농장에서 값싸게 가축을 키울 수 있게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그만큼 우리가 얻는 우유와 달걀 그리고 고기의 영양가는 떨어졌다.
식품의 양극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슈퍼마켓을 한 바퀴만 둘러보면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진열대의 한쪽에서는 '최저가 상품'을 팔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유기농 상품'을 최고가에 팔고 있다. 값비싼 상품은 으레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창궐해 있다. 최고가에 팔리는 유기농 식품 또한 그렇다. 실제로 유기농 제품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린 상술이라는 견해가 비친다. 소비자의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하며 구매한 유기농 상품은 '생태계에 좋은' 방식은 맞지만 건강에 '더' 좋은 식품은 아니다. 항생제 옥수수와 콩을 먹은 닭과 유기농 옥수수와 콩을 먹은 닭의 살코기에는 오메가 3보다 오메가 6의 함량이 높으며 그 수치는 같다.
문제는 진실이란 언제나 인식하기도 어렵고, 한번 인식한 다음 밖으로 내놓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란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식품만이 아니라 먹이사슬의 근원이 되는 곳부터 챙겨야 이 같은 불균형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들판에서, 또는 가축의 여물통에서 그리고 슈퍼마켓의 상품 진열대에서부터 챙겨야 가정의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는 식품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오메가 6과 오메가 3의 불균형은 그대로 우리 먹이사슬이 안고 있는 생물학의 불균형을 의미한다.
우리 몸속에서 오메가6과 오메가3이 제대로 균형을 잡게 해주는 빠른 해결책은 없다. 유채유를 숟가락으로 떠먹거나 식사 때마다 생선 기름을 먹는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식생활을 '뿌리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토양과 전통 그리고 먹는 즐거움과 몸에 필요한 영양을 단단하게 이어주는 왜곡되지 않은 먹이사슬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