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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Nov 14. 2023

안녕(安寧)했던 어제

소박한 일상의 반복

 잠결에 아이들 입가에 코를 갖다 댄다. 달큼한 젖 냄새를 풍기던 아이들의 입에서 이제는 어른과 같은 큼큼한 냄새가 난다. 달큼한 아이들의 입 냄새가 그립지만 큼큼한 냄새도 좋다.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남편의 새벽 공기는 반갑지 않다. 차별한다며 남편은 서운해 하지만 같은 냄새인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냄새는 유혹적이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다시 잠을 청한다. 고요한 밤, 아이들의 숨소리는 백색 소음처럼 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온다. 언젠간 내 침대를 떠날 아이들이 아직도 서로 엄마 옆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에서 넘치는 사랑을 느낀다.


 오늘도 새벽 기상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좋다만 하루의 노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저녁을 먹다가 종종 잠드는 2호가 걱정이다. 하원과 동시에 엄마의 등에서 잠드는 3호도 신경 쓰인다. 재우려고 해도 아이들은 부지런히 일어나니 하루가 길다. 어제 못다 한 집안 정리를 하고 사과를 깎았다. 아삭아삭 베어 먹는 아이들의 입안 소리에 비타민을 충전받은 기분이다. 고양이 화장실에서 덥수룩 감자를 캐고, 라떼 배변 패드를 정리한다. 남편과 가벼운 포옹으로 어제의 짧은 안부를 묻고 헤어진다. 평일에는 아침 15분이 남편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야근이 잦은 IT 직업군을 원망했다. 흔히 독박 육아라고 하는 아이의 양육과 집안일이 온전한 내 일거리니 고단하고 서글펐다. 아이들이 젖과 기저귀를 떼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간사하게도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좋아졌다. 남편의 저녁 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최저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내려가는 일상에 아이들은 감기 기운이 없어도 코를 훌쩍인다. 살성이 약한 아이들은 코를 몇 번 훌쩍이더니 이내 코 끝이 헐어버렸다. 지난 주말 한의학 체험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자운고 크림을 붉어진 코 끝에 펴 바른다. 괜스레 피부가 재생되는 느낌에 기분까지 한결 편안해진다.


 싸늘해진 공기에 가장 따뜻한 겨울 외투들을 꺼내 입었다. 포근하게 거닐던 일상에 문득 '더 추워지면 뭐 입지'라는 생각에 다시 얇은 겨울 외투로 갈아입는다. 그래도 춥지 않으니 한동안은 경량 패딩을 입어야겠다 싶었다. 드레스룸에 몇 가지 겨울 외투들을 꺼내 놓고 보니 분명한 취향이 보인다. 네다섯 벌의 겨울 외투들이 하나 같이 하얀색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혼자 샤워를 한다. 어젯밤에도 그중 하루였다. 내가 씻을 동안 욕조에서 놀 던 아이들이 어제는 후다닥 씻고 나가서 얻은 기회였다. 혼자 샤워를 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우나라도 다녀온 듯 개운하고 상쾌했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혼자 샤워하는 행위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더 자주 누리고 싶은 시간이다. 내가 씻을 동안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역할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제법 컸다고 엄마 없이도 잘 놀다니, 그런 아이들이 신기해서 바라보고 기특해서 한 번 쓰다듬는다.


 오늘도 책을 읽다가 동생들은 스르륵 잠이 들었다. 홀로 남겨진 1호는 아기가 되어 버린다. 의젓하게 동생들에게 엄마 옆자리를 양보하던 1호가 오늘은 어리광이다. 한 번을 안아달라고 안 하더니 동생들이 단 잠이 빠져있을 땐 혀 짧은 말투로 안아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순수하고 맑은 모습의 1호가 너무 예뻐서 따뜻한 품을 내어준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 미소로 보답을 한다. 아이의 미소에서 큰 기쁨을 얻는다.


 또다시 아이들의 입가에 코를 갖다 댄다. 큼큼한 냄새와 백색 소음으로 평안해진다. 오늘도 무탈하고 소박한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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