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전쟁> 독후 감상문
바야흐로 기업들은 '구독'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구독이란 개념은 최근 생겨난 서비스 같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것들을 구독해 왔다. 신문 구독, 잡지 구독, 정기 우유 배달, 정수기와 비데 렌탈 등이 현재의 구독 서비스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렌탈은 중도에 해지가 자유롭지 못한 점에서 지금의 구독 서비스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맥락은 비슷하다. 과거에도 있었던 구독이란 서비스에 오늘날 기업들은 왜 그렇게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인가.
플랫폼의 무서운 성장들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플랫폼에서 정보를 받고 플랫폼을 이용해 이동하고, 플랫폼 내에서 일하고 플랫폼으로 식사를 하고 플랫폼으로 장을 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미래의 자산이라는 데이터가 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별도의 디지털 전환 과정 없이도 아주 쉽게 모든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그 데이터는 향후 플랫폼 확장의 에너지로 변환될 것이다.
플랫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둔 개방 원칙을 고수한다. 많은 참여자로부터 얻는 데이터라는 가치는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서 획기적으로 증폭된다. 신종플루가 출현했을 당시 기존의 검역시스템으로 특정 지역에 신종플루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2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구글은 하루면 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구글은 매 초당 4만 건 정도의 검색 쿼리를 처리한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구글에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보고 답을 구한다. 이렇게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글은 구글트렌드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버가 우버 이츠를 비롯하여 모든 이동형 서비스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축적된 데이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데이터를 통해서 이미 400여 개의 자사 브랜드를 출시했다. 우리를 지배한 플랫폼들은 플랫폼으로 모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장하고 또다시 우리를 장악한다.
기업은 소비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희망한다. 이를 기업 입장에서는 충성고객 또는 'Consumer Lock-in'이라 하기도 한다. 충성고객이 많아진다는 것은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 고객이 많아진다는 증표와 같다. 오늘날 '구독'이 이전의 충성고객과 같은 맥락이다.
저서에서는 구독을 'Direct to Cunsumer', 고객과 관계를 다시 만드는 전략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구독을 정기구매와 같은 한정된 의미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바다. 이전의 구독 서비스는 기업과 고객이 수직관계처럼 엮어 있었다면 현재의 구독 서비스는 수평 관계로 직접적인 관계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아마존의 운영원칙을 보면 플랫폼 참여자가 소비자에게 하면 안 되는 원칙들이 대부분이다. 공급자들이 아마존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일은 거의 드물고 이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아마존은 공급자가 고객과의 직접 만남을 제한하고 있다. 플랫폼의 힘이 커질수록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게 되며 개별 공급자들은 자신만의 고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디즈니는 3년간 넷플릭스에 독점 콘텐츠를 제공해 주다가 디즈니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로 독립을 표했다. 나이키는 아마존에 뻗어있던 유통망을 철회하고 나이키만의 브랜드 플랫폼을 낳았다. 브랜드들이 고객을 직접 만나려고 움직이고 있다.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객 네트워크가 클수록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쿠팡이나 아마존과 같은 대형 유통 플랫폼에 소속된다면 비용도 줄고 브랜드 운영이 쉽다. 플랫폼이 커질수록 기업의 매출도 커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쿠팡과 아마존에 의존한다면 브랜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없으며 고객과 직접적인 접촉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래에 플랫폼과 비플랫폼 기업 간의 데이터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
쿠팡과 아마존 같은 거대 유통 플랫폼은 엄청난 고객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만 상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깊이는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브랜드의 구독 전략은 깊이에 승부를 걸어야 하고 보다 깊은 고객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깊은 고객 네트워크라 함은 '전문성', '팬덤', '진심'이라고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거대 유통 플랫폼에서는 명명할 수 없는 단어다. 전문성으로 구독 전략을 취한 나이키, 팬덤으로 지속 가능한 디즈니 플러스, 진심으로 발행 중인 뉴욕타임스가 브랜드 구독의 대표주자들이다.
유통망을 통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고객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서는 직접적이면서 빈번한 고객과의 접촉이 필요하다. 고객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그 사이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므로 중간다리였던 유통망을 걷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은 고객과 직접적이고 영구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고객 정보는 기업의 미래 자산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됨에 따라 유통망을 거친 기업은 고객의 정보를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 스토어는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온라인 스토어로 고객과의 직접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양상과도 같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입어보고 실제로 물건을 보고 구매하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한눈에 보이는 쇼핑을 즐긴다. 오프라인 매장을 굳이 가지 않아도 쇼핑이 가능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니 주로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 없이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다. 오프라인 매장에 가는 이유는 경험을 위한 장소로 재설정되고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 직영망은 구매의 행위가 아닌 다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쿠팡의 수많은 공급사 중 하나가 될 것인지 브랜드의 구독 전략을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구독 전략을 위해서는 대단히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심지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관계 맺기의 지향점은 소수의 충성고객이 아닌 도달 가능한 전체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구독은 어디까지나 기업 입장에서 표현하는 단어로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면 구속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때 구독을 구속처럼 느끼지 않게 하는 핵심은 '해지의 자유로움'이다. 구시대의 신문 구독, 우유 배달, 정수기 렌탈과 현재 구독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예전의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려면 계약 당시 받았던 사은품을 도로 돌려주거나 위약금을 납부해야 가능했던 종속적인 계약이었다. 우리가 구독을 결심할 때처럼 해지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불이익도 없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클릭으로 해지할 수 있어야 역설적으로 더 많은 고객들이 구독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