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Nov 10. 2020

처음으로 무소속.

#2.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

책 <모모> 중... by 미하엘 엔데

“무소속”.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소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정치”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치가 아닌 나의 현재 상황이다.  


항상 학교에 꾸준히 소속되어 있던 내가 갑작스레 “무소속”이라는 행보를 택한 건 솔직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쉬지 않고 공부만 해왔으니 갑작스레 이런 결정을 한 건 내 삶에서 큰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학교에 소속되어 있던 이유는 그만큼 내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가끔 보면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기도 하고 꾀병을 부리기도 하지만 나는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 게 너무 좋았다. 물론 TV에 나오는 영재들처럼 뭔가 엄청난 업적을 이룬 건 아니지만 내가 공부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공부만을 계속해왔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아무런 의심 없이 석사까지 졸업한 뒤 계속해서 대학원 생활을 이어 가려했다. 그래서 교수님께 미리 컨택까지 했고, 교수님이 내 학부 성적과 석사 성적,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연구실 활동내역을 보며 상당히 만족하셨고, 그 연구실 사람들과 미리 얼굴까지 튼 상태였으니 아마 대학원 입학 필기시험도 잘 보고 면접에서도 큰 실수가 없었더라면 아마 합격할 확률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또다시 원서를 내고 대학원을 다닐 생각을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이런저런 학교 활동과 연구실 활동을 많이 했고, 원서도 지금까지 많이 써봤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원서를 쓸 때 너무 어려웠고, 그만큼 잘 써지지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자소서와 내 연구계획서를 쓰면 쓸수록 고구마를 먹다 체한 듯 꽉 막힌 느낌이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질문들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아직도 내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나?”

“지금까지 해와서 그냥 하고 싶어 하는 건가?”

 

이런 생각들 속에 안 써지는 원서를 꾸역꾸역 써 내려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서류전형을 무사히 합격하였고, 그 후에 필기시험과 면접 날짜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런 질문들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들었을까..



입학시험과 면접 보기 3일 전 순간 든 생각은...


정말 합격하면 어떡하지?”


뭔가 급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합격하려고 낸 원서인데 저런 생각 자체가 든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즐거웠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기계를 꺼서 살펴본 뒤 다시 전원을 켜야 하듯이 나도 잠시 전원을 끄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대학원 면접을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나와는 달리 내 선택이 바보 같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아깝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식을 알렸을 때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았지만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으니깐.  


하지만 어떨 때는 인생에서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는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그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과감한 선택으로 인해 더 소중한 걸 찾기도 하고, 또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에 대한 진정한 소중함을 깨닫기도 하니깐…


최근 뉴스를 보면 77세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하고, 70대 할아버지도 한의대에 원서를 넣고 합격까지 하시기도 한다. 근데 아직 30대도 안 된 내가 지금 당장 대학원 지원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나지 않을까? 망하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 때문에 남이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끌려가듯 대학원에 지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갖는 시간을 통해 여태까지 공부하느니라 미처 해보지 못했던 것들, 미뤄뒀던 것들을 하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내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남들은 그냥 백수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비관적으로 말하면 “백수”지만, 인생을 그렇게 각박하게만 보면 더 각박해질 뿐이다. 그래서 그냥 나는 나를 “무소속”으로 정의한 채, 잠시 동안 내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시간에 쫓기듯 무조건 미친 듯이 달려가기보다는 잠시 숨 쉬어가면서 찬찬히 돌아보며 말이다,,, 오늘도 내 새로운 다짐과 도전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담대함과 도전이 되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끝

작가의 이전글 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