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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Nov 25. 2020

버리지 못하는 물건

"우리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

“참 예쁘네, 보기 좋아요”


친한 언니와 등산을 하다가 쉬고 있는데 예쁜 꽃무늬 분홍 조끼를 입으신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건네신 말씀이었다.

처음 뵌 할머니에게서 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기억 속에 남아계신 우리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였다. 우리 할머니도 나만 보면 “아이고 이쁜 우리 똥강아지”라고 얼마나 칭찬을 해주셨는지. 게다가 할머니들은 무조건 꽃무늬 옷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할머니도 저런 비슷한 꽃무늬가 있는 옷을 가지고 계셨어서 더 생각이 나지 않았나 싶다. 내 기억 속에 남은 할머니는 저런 꽃무늬가 있는 바지를 입고 나를 재워주시거나 내가 좋아하는 김치부침개를 해주곤 하셨다.

우리 할머니의 필수 아이템인 꽃무늬 바지




여느 부모님처럼 나의 부모님 또한 먹고살기 위해 맞벌이 부부로 열심히 일하셨다. 내가 태어났다고 해서 맞벌이를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골에서 할머니가 나를 돌보기 위해 수원까지 올라오셨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셨지만 손녀를 위해서 열일 재치고 올라오실 만큼 나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셨다. 그 많은 손주 중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은 건 나뿐이었으니깐 말이다. 할머니는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나를 애지중지 키우셨다. 그만큼 나를 아껴주셨고, 어린 나도 그걸 느꼈는지 할머니를 제일 많이 따랐고 심지어 보통 애들은 울 때 “엄마” 하며 울지만 나는 “할머니”라고 울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고 친할머니만 “우리 할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물론 할머니도 나를 너무 사랑하셨지만 그래도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사시던 분이 도시에서만 계시다 보니 삶이 무료하셨었나 보다. 결국,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셨고, 나는 할머니 없이 어떻게 살 수가 있냐고 오열을 하였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신 게 너무 슬퍼서 거의 맨날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슬픔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고,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나는 공부하기에 바빴다. 따라서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할머니와의 통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대학교 때는 다들 중고등학교 때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었고 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느니라 바빴기 때문에 할머니는커녕 엄마 아빠에게도 전화 자주 드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계속 커가는 동안 우리 할머니 또한 계속 늙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할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시고 말았다.  다행히도 큰 고비는 넘기셨지만 계속 혼자 시골에서 사시면 위험할 것 같아서 우리 부모님은 할머니를 다시 모시게 되었다. 옛날 같았으면 “할머니!” 하며 오손도손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대학교 4학년이 되어버린 나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딸, 할머니 많이 아프시니깐 전화 좀 해”

“어어. 알았어. 나중에 전화할게. 나 지금 이거 또 뭐 내야 돼. 사랑해 끊어”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해봐도 난 참 바보 같았다. 할머니는 열일 재치고 나를 키워주셨는데 나는 할머니보다 공부가 더 중요했는지 할머니에게 전화드리는 걸 계속 미뤘고 결국 할머니께 제대로 된 전화를 드리기 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후회가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결국 지금 나에겐 할머니 대신 이제는 할머니의 유품이 되어버린 꽃무늬 바지만 남아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꽃무늬 바지는 아마 버리지 못하겠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 꽃무늬 바지를 입고, “어여 김치부침개 좀 먹어봐, 우리 예쁜 똥강아지” 이러실 것 같지만, 할머니는 내 곁에 더 이상 계시지 않다. 하늘에서 할머니가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내가 얼마나 죄송한지, 할머니를 아직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그리운 우리 할머니..


“할머니, 그립고, 죄송하고, 너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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