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만 보면, 일본의 어느 문구점 이름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츠바키 문구점'은 이런저런 문구류를 취급하는 단순한 문구점이 아니다.
할머니 때부터 다른 사람의 손편지를 대신 써 주는, 대필업을 해 온 츠바키 문구점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30대의 여성, 이름보다는 '포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다.
'포포'는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부모 없이 할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대필업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할머니는 어린 포포에게 '대필'에 대한 온갖 노하우는 물론, 손님을 대하는 태도, 몸가짐 등을 까다롭게 스파르타 식으로 가르친다. 포포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맘껏 놀면서 자라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강요에 못이겨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어린시절을 할머니의 기에 눌려 꼼짝 못하고 지내던 포포는 사춘기를 지내면서 할머니에게 반기를 들게 되고,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난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능하면 할머니와 멀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에 해외에서 거주하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할머니'를 '선대'라고 표현하는 데서 할머니와의 관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마음에 이끌린 것인지, 포포는 결국 고향 가마쿠라로 돌아와 할머니가 운영하던 '츠바키 문구점'을 다시 열고, 대필업을 시작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2~30년 전만 해도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 자주 주고받던 '손편지'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손편지'가 보기 드물어지면서 이쁜 손글씨도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요즘은 캘리그라피를 통해 손글씨의 맛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만, 여전히 손편지는 e-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대체되었다.
츠바키 문구점에서 '손편지'를 대신 써 주는 일은 단순한 대필이 아니다. 사연에 따라 내용을 구상하고, 편지 내용을 직접 작성하는 일까지 같이 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싶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에도 공문서를 대신 써 주는 대서방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맹자가 많던 시절에 그를 대신하는 것이 하나의 업이 되었을 법 하다. 글씨를 쓸 수는 있다 해도 격식에 맞게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일반인에게 어려운 일이어서 대서방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시골 집에는 방이 세 개 있었는데, 큰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작은방은 누나가 쓰고, 건넌방은 할머니와 내가 같이 썼다. 할머니는 잠자리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시기도 하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숨겨 놓았다가 주기도 하셨다. 그런데 일 년에 몇 차례 할머니가 나에게 부탁하는 일은 정말 하기 싫었다. 그건 편지를 대필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는 멀리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막내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글씨를 쓸 줄 모르는 할머니는 나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편지 내용을 말하면 내가 받아 적는 방식이었는데, 대개의 시골 어른들이 그렇듯이 조리있게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막 널어 놓는 바람에 어린 내가 정리해서 편지로 쓰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가 가업을 이어 새로 문을 열고 나서 의뢰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그들이 의뢰한 편지라는 것이 참 기상천외하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가족과 지인들에게 '이혼을 알리는 편지', '돈 빌려 달라는 친구에게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지', 절친으로 지내던 친구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편지'와 같은 것들이다. 그것도 내용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상황 정보만 주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내용을 쓰는 것이다.
포포는 의뢰를 받으면 '선대(할머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지고, 결국은 보기 좋게 편지 내용을 완성하고, 내용에 맞는 필기구와 종이를 골라 편지를 쓴다.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건 기본이고, 의뢰인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직접 고민하여 써 주는 것이 대필업자 포포의 일인 것이다.
이야기의 외면은 '대필업'을 포포의 일상에 맞추어져 있지만, 내면은 할머니와의 풀지 못한 앙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포포가 '바바라 부인'을 비롯한 이웃 사람들과 사귀면서 조금씩 할머니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할머니가 생전에 외국에 있는 친구와 펜팔로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자신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할머니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가 마음을 표현하기에 서툴기만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이미 고인이 된 할머나와 화해하는 포포의 모습이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은 손편지를 정성껏 써서 우표를 붙여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일을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다시 써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