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스타장 Jan 21. 2024

아들이 사 주는 밥

퇴직 후 처음으로 아들이 사 주는 밥을 먹은 날의 소감



    아들이 처음으로 내게 밥을 사 주었다. 언제나 나의 그늘에서 보호를 받을 것만 같았던 아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나에게 밥을 사 준 것이다. 그것은 생일이나 어버이날 같은 때에 선물을 사 주는 것과는 어딘가 다른 면이 있었다. 선물은 아주 어렸을 때라도 용돈을 모아서 할 수 있지만, 밥을 사 주는 일은 그것과는 다르다.


    퇴직 후에 이런저런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기도 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고 나서, 국가자격인 1급 시험을 보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한 후 시험날이 다가왔다. 시험 접수를 조금 늦게 해서일까? 집에서 가까운 시험장은 모두 마감이 되고, 같은 경기도지만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은 걸릴 것 같은 곳의 시험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험장의 혼잡을 막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주최 측의 부탁도 있고 해서 차를 갖고 가는 일은 포기를 해야 했다. 집에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더니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문제는 아침 일찍 시험장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시험장 근처는 아니지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사는 아들이 생각나서 문자를 보냈다. 

    "시험장이 너무 멀어서 집에서 직접 가기는 힘든데, 하룻밤 재워 줄 수 있어?"

아들의 집에서 자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아들의 집 근처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근처 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들이 안내한 곳은 아들이 이사하는 날 같이 간 적이 있는 고깃집이었다. 간단히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고깃집을 선택한 것은 아들이었다.


    삼겹살을 구워 저녁을 먹으면서 부자의 대화는 신입사원인 아들의 회사 이야기와 나의 퇴직 후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평생직장, 주인의식 같은 것을 생각하며 직장 생활을 했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요즘 세대는 회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들의 이야기에서 '역시 요즘 세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과 '이런 면은 요즘 세대 같지가 않네.'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어릴 때부터 장남이라는 책임감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탓일까? 아들은 흔히 말하는 MZ와는 다른 생각들을 이야기해서 내심 놀랐다. 


    식사가 끝나고 아들이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밥을 먹고 계산을 하는 사람은 늘 나였는데, 아들이 나에게 등을 보이고 카운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음식점 밖으로 나온 후,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어~." 아들은 멋쩍게 웃으며 "응."이라고 대답한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세대가 역할을 바꾸어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따라 아들의 등은 더욱 듬직해 보였고, 오랫동안의 내 역할을 아들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현실이 기분 좋으면서도 어딘가 어색했다.


    아들은 특별한 날이면 선물하기를 잘했다. 그것도 즉흥적인 선물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다가 거기에 딱 맞는 선물을 해서 감동을 줄 때가 많았다. 내가 사진 출사나 등산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동생과 같이 용돈을 모아 '모자'를 사 준 일,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만년필'을 선물한 일, 추운 날 출근하면서 입으라고 '다운 패딩'을 사 준 일 등등 필요한 것을 잘 알아서 선물하는 센스가 있었다. 그런 아들이 내게 밥을(사실은 고기를) 사 준 일에도 분명한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퇴직 후 늦은 공부와 씨름하는 아빠를 응원하는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두고두고 가슴 뭉클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