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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mel Dec 30. 2021

스푼 라디오와
꿈의 망망대해, 오디오 시장

클럽하우스는 찾지 못한 PMF를 스푼 라디오는 과연 찾았을까?

기본적으로 모든 스타트업은 성장을 꿈꾼다. 그리고 이 성장과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흔히 J커브를 떠올릴 수 있다. J커브는 스타트업의 성장곡선이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J자를 그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어제가 오늘 같지 않고, 오늘이 내일 같지 않을 만큼 바쁘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가 남다르게 새로운 성장 경험은 스타트업만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로켓에 비유한다.


사실 J커브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은 많은 고객이 찾는 프로덕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로덕트가 많은 고객이 가진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강한 시장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키며, "프로덕트가 제품시장적합성(Product-Market-Fit, 이하 PMF)을 찾았다"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그냥 대박 난 거다. 이론에 관한 설명은 이쯤에서 거두절미하고, 오늘은 Z세대 사이에서 핫한 스푼 라디오가 PMF를 찾았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스푼 라디오의 로고



클럽하우스의 흥망성쇠와 정복되지 않은 오디오 시장


작년 초 론칭해 올 초까지 인터넷을 가장 뜨겁게 달군 오디오 서비스가 있다. 바로 클럽하우스다.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ssen Horowitz)로부터 100억 달러 규모(한화 약 12조)의 시드 투자를 등에 업고 화려한 데뷔를 했고, 초대장을 통해 선별된 인원만 이용할 수 있게 한 마케팅 전략은 곧 일론 머스크와 마크 주커버그까지 끌어들이면서 글로벌 화두가 되었다. 갑자기 웬 클럽하우스 이야기냐고?


현재는 80% 이상의 유저가 이탈했고 과거의 영광만이 남았다는 클럽하우스는 스스로를 음성 기반 SNS라고 정의했다. 이제는 기나긴 동면에 빠졌지만 클럽하우스가 오디오 시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푼은 클럽하우스의 바통을 이어받기라도 한 듯 오디오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클럽하우스를 통해 맛본 오디오 미디어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귀로 콘텐츠를 들으며 손이나 눈으로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있었다. 누가 그런 걸 필요로 하는지도 몰랐고 이 특징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는 정도? 미국은 팟캐스트를 듣는 문화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라디오가 죽어가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니즈가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시장이었던 셈이다.



결국 누군가는 오디오를 기다렸다


스푼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오디오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다. 실시간으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대신, 'BGM처럼 틀어놓다가 집중하고 싶을 때 돌아와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고려해 스푼은 자사의 서비스를 묘사할 때 '오디오'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크리에이터와 이용자의 커뮤니티 서비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스푼과 스푼의 사용자들에게 있어 오디오 혹은 목소리는 소통의 방식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스푼은 2021년 1월 기준으로 3000만 건의 누적 다운로드 를 기록했고 월평균 3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이중 200만 명은 미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 20개국의 외국인이고, 국내 이용자의 80%가 흔히 Z세대라고 일컬어지는 1020세대다. 스푼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까다롭기로 애를 먹고 있는 국내의 1020세대를 사로잡았을까, 또한 어떻게 해외에서 통할 수 있었을까?



스푼, 그대는 혹시 Z세대의 운명의 상대...?


스푼이 Z세대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스푼이 가진 세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1. 즉시적 소통


Z세대는 굉장히 강력한 소통의 욕구를 갖고 있기로 유명하다. 태어나 보니 세상은 온택트이고 내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셈이다. 이것이 Z세대가 카카오톡보다 페이스북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스푼은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스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환경은 라이브 방송이 나타나는 메인 화면에서 시작한다. 아무 방송이나 들어가면 해당 공간에서 디제잉을 하는 '스푸너'가 이용자의 닉네임을 부르며 반겨준다. 그 뒤는 오디오 아프리카 TV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유사하다. 스푸너가 이용자들의 채팅을 하나하나 읽어주고 소통하는 식이다. 스푼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자작곡·커버곡 연주부터 더빙·성대모사, 예능, 고민 상담 그리고 심지어는 불경·찬송가 읽어주기나 전화 소개팅까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방송이 '소통'의 특성을 갖고 있고, 소통 위주의 방송이 가장 많을 만큼 이용자와 스푸너 모두 '소통'에 매진한다.


주로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주로 방송을 BGM처럼 틀어놓고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을 한다. 그러다 집중해서 듣고 싶은 키워드나 내용이 들리면 스푼으로 돌아와 채팅을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용자들은 스푼에서 원하는 순간에 타인과의 소통 욕구를 해소한다.



2. 수익 창출의 기회


스푼의 또 다른 장점은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스푼에서는 누구나 방송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이 콘텐츠를 배포할 수 있고, 누구든 쉽게 청중을 끌어모을 수 있다. '녹음 버튼 터치 → 확인 → 저장'이면 끝날 정도로 UI도 간단하다. 생방송이 자신이 없다면 녹음 방송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다. 이용자가 쉽게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가치를 창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구조인 셈이다.


스푼에서 방송, 즉 타인과의 소통은 한 마디로 '놀이'로서 받아들여진다. 나의 색깔을 잘 녹여내 재미있는 방송을 하면 나와 놀러 오는 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스푸너들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팬들로부터 아프리카 TV의 별풍선과도 같은 '스푼'을 후원받아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이렇게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 스푸너들 중에는 연봉 1000만 원부터 10억 원까지 달성하는 이용자가 생길 만큼 이용자들 간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렇게 수익 창출의 기회 마련은 스푼에게 가장 중요한 콘텐츠 생산과 고객 유입 선순환의 첫 단계다. 스푸너들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면 팬을 모으기 위해 창의적인 콘텐츠 활동을 펼친다. 각 방송의 퀄리티는 자동으로 높아지게 되고, 그러면 점점 더 많은 청취자가 모여 팬이 되는 구조다. 진입장벽이 낮은 오디오의 특성상 이렇게 모인 청취자 중 새로운 스푸너가 탄생하면서 끊임없이 선순환한다.



3. 익명성 보장을 통한 또 다른 인격


Z세대는 익명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틱톡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디오는 시각적 노출이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틱톡보다 강력한 익명성을 띤다. 그런 Z세대에게 '익명의 대나숲'을 벤치마킹한 스푼은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스푼의 300만 월평균 이용자 중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송을 하는 유저는 25만 명을 넘는다. 스푼에서 제작되는 오디오 콘텐츠의 생산자 비율은 영상을 다섯 배로 웃돈다.



스푼은 오올블루를 찾았을까?


일본의 만화를 몇십여 년간 주름잡고 있는 "원피스"의 세계관에는 기적의 바다로 불리는 해협이 존재한다. 오올블루(All Blue)라는 이름의 이 바다는 네 개의 해협(이스트블루, 웨스트블루, 노스블루, 사우스블루)에 각각 서식하는 모든 어류가 한 데 모인다고 전해지는 일종의 조경 수역이다. 오올 블루는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목격하진 못한 모든 요리사들의 꿈이라고 일컬어진다. 마치 많은 이들이 제패를 노리고 도전했지만 아직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오디오 시장의 PMF와도 닮아있다.



스푼은 Freemium 서비스를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모든 이용자들은 무료로 앱 내 기본적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추가적인 활동을 할 때에만 결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스푼이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는 '스푼'이라는 플랫폼 내 화폐를 구매해 청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푸너를 후원하거나 스푸너는 라이브를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소위 아이템 결제의 개념인 셈이다. 


스푼의 아이템 스토어


그러나 스푼의 Freemium 서비스는 그 특성상 고객이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이 지점을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 신규 유입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 현재 플랫폼에 잔존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현재 플랫폼 내에 축적되는 오디오 데이터를 통해 청취자가 즐겨 듣는 스푸너와 유사한 목소리를 가진 다른 스푸너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서비스부터 방송 중 청취자와 실시간으로 전화를 통해 연결시켜주는 '라이브콜' 기능 등의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스푼은 단일 수익 모델을 갖고 있지만 이 하나만으로 2020년 한 해 동안 837억의 매출을 만들어 냈다. 서비스 첫 출시로부터 이 성과를 이루는 데에 걸린 기간은 불과 3년이었다. 이미 그전 해에 45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까지 받아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푼은 Product Market Fit(PMF)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스푼이 PMF를 달성했는지 아직은 확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확실히 스푼은 Z세대가 가진 '갈증'을 해소해줌으로써 높은 이용자 수와 콘텐츠 생산의 선순환 구조, 그리고 폭발적인 매출 증가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스푼은 아직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더 염두에 둘 건 이것이 스푼의 잘못 아니며, 스푼이 국내 오디오 시장의 PMF를 찾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애초에 적절하지 않은 발상이다.



스푼의 오올블루는 바깥에 있다


확실히 스푼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J커브는 아니다. 첫해에 일구어낸 성장가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뎌지기 때문이다. 매월 평균 300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다는 건 시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이상 해결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대체 문제가 뭘까?



사실 스푼의 성장이 더딘 이유는 시장에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오디오 시장은 지상파 라디오 매출은 전부 합쳐 1,700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때 KBS, MBC, SBS 3사의 시장 점유율이 약 90%였던 점을 감안하면 스푼의 성장은 결국 전통 라디오 매체에서의 전환이지, 오디오 시장 커지면서 발생한 매출이 아니라는 진단이 나온다.


스푼은 사실 이 점을 초기부터 파고들어 이미 해외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전체 MAU 300만 명 중 200만 명이 일본,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거주하는 이용자인 점도 국내 시장의 한계에 착안한 스푼의 발 빠른 판단에서 나온 결과다. 이런 점에서 시리즈 C 투자 유치는 투자자들이 스푼의 큰 그림에 동참했다는 표시지만, 글로벌 시장은 만만하지 않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전 세계 오디오 플랫폼 콘텐츠 시장이 2019년 220억 달러(약 26조 3,000억 원)에서 2030년에는 753억 달러(약 9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2027년까지 연평균 24.4%로 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글로벌 투자은행 UBS에 의하면, 미국 팟캐스트 청취자의 숫자가 현재 약 1억 4,000만 명에서 향후 3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날 거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이 커진다는 게 스푼에게 마냥 좋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외의 대기업들도 이미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글은 오디오북 서비스 '구글 플레이 북스'를 출시했고, 애플은 오래전부터 팟캐스트를 통해 오리지널 오디오 콘텐츠를 축적하고 있다. 스포티파이 또한 5월 오디오북 서비스 업체인 스토리텔과 파트너십을 맺고 오디오북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시장은 히말라야가 종합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선도하고 있다. 이 시장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건 스푼의 입장에서 문화적인 간극부터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기존의 콘텐츠 색깔부터 다시 설정해봐야 한다. 오디오북보다 생소할 수 있는 점 또한 잘 고려해 전략을 짜야한다.


다행히 일본에서의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만큼 앞으로의 행보는 기대해 볼 만하다. 올 4월 기준, 스푼의 총 가입자 규모로만 봤을 때 일본은 50%, 미국은 15%에 달한다. 한국은 35% 정도다. 일본의 경우 일본이 가진 고유의 성우 중심 팬덤 문화를 파고들어 스푼의 크리에이터 특성과 시너지를 일으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현지 전문가를 필두로 내세운 글로벌 전략이 빛을 발한 것이다. 각 나라마다 문화적 특성이 달라 진입이 쉽지는 않지만 이미 20개국 이상에 진출했고, 6개 언어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만큼 뚜렷한 정체성의 프로덕트를 갖고 현지 맞춤형 전략을 내세우는 PMF를 향한 스푼의 여정은 앞으로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참고자료


미디어투데이, "[미디어 MZ] 누가 라디오 들으면미서 돈 내냐고요?"

방송&트렌드 인사이트, "라디오계의 유튜브를 꿈꾸다"

브런치 김피플, "Z세대는 왜 스푼 라디오를 좋아할까?"

연합뉴스, "오디오 플랫폼 스푼, 지난해 800억원대 아이템 매출 달성"

조선비즈, "[빅테크 오디오 플랫폼 경쟁 ‘2라운드’]"

조선일보 쫌아는기자들, "S1#5 스푼라디오 최혁재, 벽돌 1kg 무게와 오디오의 유튜브"

중앙일보, "[민지리뷰] Z세대 300만명이 매달 접속하는 라디오, 아직 못 들어봤니?"

중앙일보, ""한국형 대박은 아직 안 나왔다"...플로(FLO)의 새로운 도전"

테크42, "올드 미디어의 화려한 부활, Z세대가 스푼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테크M, "[인싸뷰] MZ세대 사로잡은 스푼라디오 "오리지널+구독으로 사업확장""

AB180, "스푼 라디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CRM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할 때 충성 고객이 됩니다""

Bank of Hope, "Z세대 (Gen Z)는 무엇을 원하는가?"

ZERO to ONE Insight, "라디오계의 유튜브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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