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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Jan 21. 2024

무수한 찰나

사바아사나 │ 채도 높은 아름다움


  어떤 요가든 수련의 마무리는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로 맺습니다. 이름 그대로 죽은 사람처럼 힘을 툭 빼고 누워 눈을 감은 채 모든 움직임을 멈추죠. 다만 내 숨소리를 따라가며 몸을 찬찬히 살핍니다. 양 날개뼈는 바닥에 균등하게 닿아 있는지, 배는 호흡에 따라 최대치로 부풀었다 줄어드는지, 양 발바닥은 비슷한 각도로 벌어져있는지...


  그러다 보면 나를 꾹 누르고 있던 것들이 묽어집니다. 열린 틈 사이로 부는 미풍, 나부끼는 커튼 틈 일렁이는 볕, 수련실 문을 긁는 강아지 발소리, 어제 미팅 때 못한 말에 대한 후회, 아까 친구들과 빵 터졌던 농담, 내일 출근 걱정.


  물론 생각이 꼬리를 물거나, 깜빡 조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감사하게도 집중이 잘 됐네요. 사바아사나는 힘을 빼는 시작보다 깨어나는 마지막이 더 중요해요. ‘작은 죽음'후 맞는 보드라운 새 생명으로 자기를 대해야 하죠.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 꼼지락 대고, 스스로 몸을 쓰다듬으며 감각의 보식 시간을 갖습니다.


  오늘도 평소처럼 쭉 기지개를 켰습니다. 제 짝을 찾은 볼트와 너트처럼 깍지 낀 양 손가락의 움직임이 새삼 신기하더군요. 실감개처럼 생긴 관절 하나하나가 느껴지면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버릴 것 없는 당위적 요소가 이토록 작은 내 몸의 영역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자, 깍지 낀 양손을 꾹 마주 잡고 말았습니다.


  요가원을 나서 집으로 가는 길, 핸들을 잡은 손 등위로 내려앉은 햇살 조각에 눈이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하늘색이 예쁘더군요. 머리 바로 위 하늘과 저 멀리 신호등 너머 걸린 하늘색은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식탁에 놓인 실온의 물 한 모금은 유독 다네요.


  내 몸에 오롯이 집중했더니 외부를 향한 채도도 선명해집니다. 예민해진 감각 덕에 일상 속 작은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움에 머물 수 있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있을까요. 요즘 아침마다 한쪽씩 읽는 책에서 '찰나라서 아름답다'는 구절을 봤어요. 아름다움이 찰나라면 정박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무수할까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 누릴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풍요로워질까요. 오늘도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나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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