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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요리는 맛보다 OO이다

by 취사병세끼

취사병으로 군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평범한 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평범한 오늘 점심 메뉴판에 적힌 오늘의 특별함은 쇠고기버섯전골이었다.

평소라면 김치찌개나 된장국 정도로 끝날 일이지만, 전골은 다르다. 재료 준비부터 플레이팅까지 모든 것이 신경 써야 할 작업이었다. 문제는 군대의 재료였다. 고급스러운 좋은 쇠고기는 기대할 수 없고, 버섯은 며칠째 냉장고 안에 있던 그것들뿐이었다.

전골이라면 채소는 정갈해야 한다. 그러나 군대 칼은 날카롭지 않았다. 얇게 썰어야 할 대파와 배추는 마치 손으로 찢은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충 썬 채소라도 냄비에 깔아 두면, 적어도 전골의 기본 모양새는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버섯들은 씻어서 윤기가 나는 척하며 국 가마에 자리 잡았다.

쇠고기는 제일 중요한 재료였다. 그러나 해동을 미처 하지 못한 냉동실에서 꺼낸 쇠고기는 해동이 덜 된 채 얼음 덩어리처럼 딱딱했다. 이를 어찌할까 고민하던 나는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해동하려고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가 건져냈는데, 그 순간 회색빛 고기가 나를 반겼다. 고기는 얇게 썰린 척하며 냄비 중앙에 자리 잡았다. 적어도 외관은 그럴싸했다.

전골은 결국 국물 맛이 승부다. 고기에서 뽑아낸 육수와 한식간장, 마늘, 고춧가루로 간을 맞췄다. 하지만 한 입 맛보고 나니 국물 맛이 어딘가 허전했다. 급히 맛소금과 한식간장을 추가로 넣어 간을 맞췄다. 국물 맛은 금세 풍미가 더해졌고, 군대 특유의 깊은 맛이 완성되었다.

"OO아, 고기 잘 익었네. 국물도 깔끔하고."
"이거 버섯 향이 좀 독특한데, 쇠고기 좋은 건가 봐, 신선하군."
내 머릿속엔 '그 버섯이 몇 일 된 건지, 쇠고기가 급히 해동된 거 아시면 충격받으실 텐데...'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다행히 겉모습은 합격이었다.

"군대에서 요리는 맛보다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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