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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OO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약간의 간이 만든다

by 취사병세끼

군대에서는 국물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국물 맛이 좋으면 모든 반찬이 살아난다.

"오늘 점심은 닭곰탕이네. 해낼 수 있겠지?"

‘닭곰탕’이라는 단어에 살짝 설렜지만, 현실은 달랐다. 냉동고에서 꺼낸 닭들은 얼음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고, 시간을 녹이듯 해동을 시작했다. 조리원(주방이모)님의 깨끗이 씻으라는 지시 아래 나는 닭의 속과 겉을 샅샅이 확인했다. 닭 손질에 능숙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날이었다.

닭곰탕의 생명은 깊고 진한 국물이다.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커다란 군용 솥(국 가마)에 닭을 통째로 넣고 물을 가득 채웠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부엌에는 닭 향이 퍼지기 시작했고, 국물은 서서히 뽀얗게 변해갔다.

"이모님, 이거 진짜 닭곰탕처럼 보이네요!"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야, 맛이 문제야."

닭과 물만 넣은 국물은 싱겁기 그지없었다. 대량 조리의 압박 속에서 마늘, 생강, 대파, 소금, 후추를 던져 넣었다. “과하면 안 돼”라는 이모님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간을 맞추는 건 과학이자 예술이었다.

닭을 다 끓인 후 건져내 뼈를 발라내는 작업은 전쟁이었다. 끓여진 닭은 부드러웠지만, 손으로 뼈를 발라내는 작업은 끝없는 반복이었다. "닭 한 마리로 이렇게 많은 손질을 해야 한다니…"

닭살을 국물로 다시 넣으며, 뿌듯함과 동시에 묘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드디어 닭곰탕이 완성됐다. 뜨끈한 국물 위로 송송 썬 파를 얹고, 옆에 고춧가루와 후추를 준비해 취향껏 뿌릴 수 있도록 했다. 고봉밥 한 그릇과 함께 닭곰탕이 배식됐다.

"OO아, 오늘 국물 기가 막히다."

"OOO OO님, 이거 진짜 식당에서 먹는 맛 같습니다."

배식받은 군인들이 한 입 먹고 칭찬할 때마다, 나는 비로소 닭곰탕의 성공을 실감했다.

오늘 깨달았다.

"좋은 국물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약간의 간이 만든다."

닭곰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다림과 수고로움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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