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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춤은 내 삶이었다

by A록


스무 살에 재즈댄스를 추면서 봤다. 거울 안에 있는 내가 몰랐던 내 모습, 너무 매력적이고 뜨겁고 행복한 내 모습을. 나는 거울 속 그녀에게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 때부터 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 춤을 추었고 춤이라는 세계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영상을 찾아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뒤졌다.


그러다가 현대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책 ‘자유를 위한 변명’을 읽게 되었고 춤이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홍신자 선생님이 주관하는 국제무용예술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보고 행사를 돕는 자원봉사자에 지원했다. 유럽에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바로 예술제가 열리는 죽산으로 갔다.


일주일 동안 전국에서 모인 열댓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황토 무대를 만들고 흙길을 정리하고 해외에서 온 무용수들의 통역을 돕기도 하면서 행사를 준비했는데 그 시간부터가 이미 축제였다. 비가 오면 우리는 최소한의 옷만 입고 나가 비를 맞으며 황토무대를 구르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토 범벅이 된 채로 춤을 추었다. 별다른 음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정해진 춤동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느낌대로,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춤이었다.


우리는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매일 그런 춤을 추면서 놀았다. 코에 파리가 앉으면 파리 춤을 추고 술을 먹고 취하면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는 춤을 추고, 한 사람은 사자, 한 사람은 사자를 피해 도망가는 동물이 되어 으르렁 짖으며 네 발로 뛰어다니는 춤을 추었다. 그냥 우리가 하는 모든 몸동작이 춤이었다.


죽산이라는 시골동네, 산 속으로 쑥 들어간 넓은 터에 하얀색 이층짜리 펜션 한 채와 큰 황토 무대와 작은 황토 무대, 나무 데크 무대, 몽골텐트, 양쪽으로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흙돌길이 있는 공간.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해외 무용수들과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무대와 자연 속 여기저기에서 안무를 짜거나 리허설을 하면서 춤을 추고, 행사를 준비하려고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이런 저런 노동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우리 이렇게 하자고 계획한 것도 아닌데 춤을 추고 있었다. 신비로운 일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3일 동안은 뮤지션들이 와서 악기를 연주해주었기 때문에 음악과 함께 더 신나게 춤을 췄다. 숲으로 둘러싸인 황토무대에서 자연의 냄새를 흠뻑 맡으며 우리는 날이 밝아오도록 맨발로 춤을 췄다. 그 축제의 마법같은 힘에 홀려 나는 일곱 번의 여름을 죽산에서 춤을 추며 보냈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서서히 좀 더 자유롭고 즐거운 인간으로 진화해갔다.


그 축제에서 알게 된 무용수들의 소개로 ‘춤테라피’를 알게 되었고 나는 ‘한국춤테라피협회’와 ‘타말파 연구소’에서 열리는 수업들을 듣고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후 춤테라피스트가 되었다. 처음 춤테라피를 시작해서 마지막 전문가 과정을 졸업하기까지의 12년 동안 나는 춤으로 살았다.


마음이 즐거워도 춤을 췄고 힘들어도 춤을 췄고 고민이 있어도 춤을 췄다. 친오빠가 결혼한 날도 너무 허전하고 슬픈 감정이 들어 춤을 췄고 내 결혼식 날에도 춤을 추며 신부 입장을 했다. 첫 아이를 낳고 집으로 와 아이의 얼굴을 보니 덜컥 겁이 나서도 춤을 췄고 아이를 키우면서 공황장애가 와서 숨을 못 쉴 때도 춤을 미친 듯이 추고 나면 얼마 간 숨을 쉴 수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젖만 먹이고 뛰쳐나가 자연을 바라보며 춤을 췄다. 춤은 매번 나에게 고민에 대한 선명한 답과, 삶을 즐길 수 있는 기쁜 마음과, 고통을 견뎌낼 힘을 안겨주었다. 춤은 내 삶이었다.


글, 그림 by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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