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없는 하늘이에게 많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눈물.
하루는 내가 아이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가 밥 먹자고 몇 번을 말했는지 알아? 열 번도 더 말했어. 같은 말을 계속하는 거 진짜 힘들어. 엄마 정말 힘들다고. 특히 저녁 시간에는 더!”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하늘이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금세 얼굴을 붉히면서 으아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내가 무서워서 우나 싶어 움찔하고 있는데 하늘이가 말했다.
“엄마 불쌍해... 엄마가 힘든 게 불쌍해... 불쌍해...!!”
헐. 나는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하늘이는 불쌍하다는 말을 참 자주 했다. 차바퀴가 밟고 지나간 풀이 불쌍하고 집 안에 들어와 돌아다니는 개미가 불쌍하고 길에서 마주친 주인 없는 강아지가 불쌍하고 사탕을 먹다가 떨어뜨린 언니가 불쌍하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 한 운동선수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다섯 살 때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아빠가 가족들을 다 구하고 불기둥 속에 갇히는 장면을 보고는 “아빠아아아!!!”하고 손을 뻗으며 꺼이꺼이 울었던 적도 있다. 하늘이는 그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울음이 묻어있는 딸꾹질을 했다.
일곱 살 유치원 졸업식 때도 다른 아이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자기들이 나오는 인사 영상을 보고 있는데 하늘이만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졸업식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이가 두 번째 줄에 앉아있어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저기 저 혼자 우는 아이가 하늘이라는 걸 나는 대번에 알았다.
졸업식날 하늘이는 집에 와서도 계속 눈물이 날랑말랑한 얼굴을 하고선
"서안이랑 은교랑 하준이가 없는 세상이 믿어지지가 않아..."라고 말했다.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많이 힘든 것 같았다. 비가 와서 나랑 우산을 쓰고 산책을 했는데 오늘은 좀 많이 걷고 싶다더니 걸어도 걸어도 더 걷고 싶다고 해서 지친 나는 먼저 들어오고 하늘이는 혼자 마당을 이리저리 더 걸었다. 그러더니 집 앞에 주차된 차의 창문에 '친구들아 사랑해'라고 손가락 글씨를 쓰는 모습이 보였다. 훌쩍이는 소리도 작게 들렸다.
주인집과 마당을 같이 쓰고 있어서 주인집이 키우는 네 마리의 개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 하늘이는 늘 그 개들을 신경 쓴다. 밥은 잘 먹는지, 얼굴에 상처가 없는지, 상처가 생겼으면 잘 아물고 있는지, 산책을 가고 싶어 하는지 등이다.
하루는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들어오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킨이가 밥을 잘 안 먹는데 내가 손으로 주면 다 먹어. 그래서 먹여주고 왔어.”
라고 했다. 킨이는 주인집 개 중에 한 마리인데 하늘이와 덩치가 비슷한 시베리안 허스키이다.
속으로 나는 ‘네 밥이나 좀 먹지...’했지만 세상 만물을 불쌍해하고 돌봐주고 싶어 하는 대인의 마음을 소인인 내가 어찌 알겠나 싶어 입을 닫았다.
대인배 하늘이의 돈 씀씀이는 어떨 것 같나?
“그거 얼만데? 내가 사줄게.”
그러고는 돈을 턱 낸다. 돈을 많이 쓴 날은 돈을 많이 썼더니 너무 기분이 좋다며 행복해한다.
하루는 언니 생일 선물을 이것저것 많이도 샀길래
“돈을 좀 아끼지~”라고 하니
“엄마, 돈을 아낀다는 생각을 버려. 자유로움을 먼저 선택하는 거야. 무조건 자유로움이 먼저야, 무조건!”라고 했다. 여덟 살 나이에 플렉스의 자유를 느끼는 하늘이가 부럽기도 하고 너의 플렉스 덕분에 줄어드는 나의 플렉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기 물건을 살 때는 천 원짜리가 없나... 살핀다. 마음에 들어서 집었는데 천원이 넘으면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놓기를 반복했다. 무조건 자유라더니... 조건이 있네 싶어서 웃었다.
나는 노력한다. 하늘이가 타고난 것들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축소시키지 않으려고. 그리고 가능한 쫄지 말고 감탄하려고. 하늘이와 이번 생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