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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록 Mar 31. 2022

저... 대단한 아이와 살아요 1


올해 여덟 살인 우리집 둘 째, 하늘이의 태몽은 호랑이였다. 태몽을 꾼 사람은 시어머니였는데 “아무래도 호랑이처럼 용맹한 사내아이가 태어나려나 보다.”라고 하셨다. 아니었다. 딸이었다. 그런데 맞았다. 호랑이처럼 용맹한 딸이었다.     



그 호랑이 딸은 젖먹이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젖을 먹으며 베시시 웃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렸던 언니와는 달리 젖을 먹는 삼사십 분 동안 눈빛 한번 흐려지지 않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젖을 좍좍 빨았다. 내가 젖을 먹이다가 졸려서 눈 커플로 눈동자를 잠시 가렸다가 열면 십중팔구 하늘이의 레이저빔 눈빛이 나의 흐리멍덩한 눈을 가격했다. 깜짝 놀란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허리를 곧추 세워 앉았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런 하늘이가 네 살 정도 되어서 막 뛰어다니며 놀 때, 하늘이의 언니 바다랑, 아랫집 사는 바다의 친구 세아랑 1열로 줄을 서서 어딘가를 뛰어가는 놀이를 했는데 하늘이가 저만치 뒤에 서있는 나를 보더니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엄마! 뭐 해! 빨리 와서 내 뒤에 서!”

나는 당황했다. 나를 자기 다음 서열로 생각하는 것 같아 살짝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단 뛰어갔다.     



하늘이는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늘이가 무서워한 어른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어른은 다섯 살부터 일곱 살 까지 다닌 유치원의 선생님이다. 그것도 정말 무서워했다고는 볼 수가 없다. “말썽꾸러기 친구에게 아주 무섭게 화를 내면서 얘기했어.” 라고 말하는 정도였으니까.     



하늘이가 너무 겁이 없어서 내가 무서웠던 적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이거다. 여섯 살 즈음 흡연 중인 아저씨들 옆을 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길이 막혀 차는 천천히 움직였고 좁은 도로라 인도와 차도가 아주 가까웠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유치원에서 여러 차례 배운 하늘이가 창문을 천천히 내리더니 아저씨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들! 담배 끊으세요. 몸에 아주 나빠요.”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고 하늘이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앉아있는 아저씨들을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고 있었다. 허걱! 나는 급히 뒷자석 창문을 올리려고 차문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더듬거리고 있었는데 아저씨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하늘이에게 말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끌게요~ 미안합니다~”

그러고선 담배를 땅에 비벼 껐고 하늘이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다가 한 마디 더 했다.

“그 담배 꽁초, 길에 버리면 안 돼요!”

“아, 예예~”

아저씨들은 웃으며 머리를 조아렸고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엑셀을 밟았다.




하늘이는 사랑에도 겁이 없다. 우선은 자기 자신을 무지하게 사랑한다. 여덟 살이 되고 얼마 안 되어서 흔들리는 앞니 두 개를 뺐는데 친구의 엄마가 앞니가 없어서 음식 먹을 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저는 앞니 빠지고 나서 더 예뻐졌어요. 이빨이 천천히 자라길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여덟 살 생일에 “생일 축하해 하늘아!”

라고 했더니

“나도 축하해! 나도 내가 있는 게 좋아. 나 자신이 너어어어무 좋아아아!!!” 라고 답했다.     



유치원 때부터 좋아한 한 살 위 오빠가 있는데 그 오빠가 자기 눈이 예쁘다고 했다며 자기가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보고 오빠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여러 번을 얘기했다. 나는 그 오빠가 실망할까봐 걱정을 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내 입 진~짜 예쁘잖아, 내 입까지 보면 큰일 나겠네~ 큰일 나겠어~”

라고 하는 것이다. 대박!



그리고 그 오빠. 자기를 보면 늘 도망 가버린다는 그 오빠를 향한 사랑에도 겁이 정말 없다. 같이 유치원을 다니다가 그 오빠가 1학년이 되고 자기는 바로 옆 병설 유치원에 다니면서 언니를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늘 초등학교 돌봄 교실과 운동장에 그 오빠가 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보이는 순간! 달려갔다.

“오빠~~~!!!!”

그 오빠는 수줍어하며 다른 곳으로 달려가고 하늘이는 끝까지 쫓아가고...  


  

드디어 하늘이가 1학년이 되어 그 오빠와 학교를 같이 다니게 되었고 하늘이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학교가 좋다며 아주 아주 설레어했다. 첫 등교를 하러가는 차 안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계속 떨린다며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등교를 한지 3일 만에, 점심을 먹고 그 오빠가 있는 2학년 교실에 가서 문을 열고 소리쳤단다.



“오빠들! 나한테 잡히고 싶은 사람 다 나와!”

그리고 현관에 있는 신발장으로 가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속으로

‘정욱이 오빠만 나오면 돼...’

라고 생각했는데 아 글쎄, 2학년 오빠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더란다. 그래서 신나게 달려서 다 잡아버렸다고. 물론 정욱이 오빠도.     



그리고 1, 2학년 통합수업인 방과 후 수업 때 정욱이 오빠 옆에 앉았는데 자기가 계속 쳐다보니까 종이에 ‘보지마’라고 써서 얼굴을 가리더란다. 하늘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쳐다봤음은 물론이고 그 종이가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아 가져왔다며 ‘보지마’라고 적혀있는 구겨진 종이를 보여줬다. 오 마이 갓...!



정욱이도 하늘이를 좋아한다고 편지를 보낸 적이 있으니까 이러는 하늘이가 아주 싫지는 않겠지만 아니, 않길 바라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줄은 몰랐을 거다. 당황스러울 거다. 하늘이... 호랑인데... 물면 안 놓는데... 어쩌니?



하늘이는 대단한 아이다. 내가 감히 키웠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다. 클수록 더 대단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아이다. 그러니 정신 단디 차리고 잘 하자. 겁 먹지 말고 잘 하자. 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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