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아...
지원아...
지원아...
미안해...
너한테 지나치게 잘해주던
그 늑대 같은 자식을 그냥 둬서.
선생 체면 세우려고 단체 기합 받게 해서.
네가 힘들어 하던 그날 밤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해서.
너를 포함한 전교생에게
끔찍한 상처를 입힌 그 나쁜 인간을
나도 무서워해서.
네가 그렇게 떠난 걸 뒤늦게 알아서.
네가 살아있을 때 안부 묻지 않아서.
네가 살아있을 때
작은 도움이라도 못 줘서 미안해...
우리 지원이 힘들게 한
우리 지원이가 삶을 포기하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을 폭발시켜버리고 싶다.
내 몸이 산산이 부서져도,
다 타버려도 좋으니
깨끗이 싹 날려버리고 싶다.
깨끗이 아니어도
한 삼분의 일이라도 치워주고 싶다.
너의 투명한 얼굴 말이야.
똑똑한 놈이 웃을 땐
약간 모자란 듯 보이는 것이
내 눈엔 그렇게 매력 있어 보였어.
발표도 노래도 그림도 글도
우정도 리더십도 얼마나 좋았니.
네가 우리나라에 있고 한참 한참 젊고
뻔하지 않고 늘 새로워서
나는 참 기대가 많이 되었어.
나 같이 멋진 애가 또 있어서
우리나라 미래가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고.
너 덧니 있었잖아.
웃을 때 마다 보이던 덧니.
그리고 눈언저리에 점이 있었던가?
머리카락이 가늘고 다리가 늘씬하고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손가락이
길고 하얬었지.
뿔테 안경.
공부하고 밥 먹을 때 종종 썼던
안경도 기억나.
달리기는 적당히 빠른 편이었던가?
뭐든 열심히 했지.
우리 할머니한테 니 얘기 했더니
너무 똑똑해서 그렇대.
너무 똑똑하면 그렇게 빨리 간다고.
네가 우리 할머니 말대로
너무 심하게 똑똑해서
빨리 생을 마감했다 하더라도 괜찮아.
애썼고 잘 살았어.
지원이 너의 삶이
예상하지 못 한 시점에 끝이 났고
그 끝이 행복하지 않았고
남은 예원이와 부모님이
많이 힘들게 되었지만 괜찮아.
다 괜찮아 지원아.
어제 바닷가 산책을 하는데
아참, 나 제주도에 사는 거 알지?
작고 예쁜 돌들을 줍다가
네 생각이 문득 났어.
너 힘들게 한 놈들 뒤통수를
짱돌로 확 찍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그 중에 선생 시절의 나도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그 때 내가 서른 살이었는데
막 철이 들랑말랑한 때라 애 같았지.
냉장고도 없는 학교 기숙사 방에서
먹고 자고 하느라 스트레스도 컸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고2인 너를
힘들게 했던 게 있다면 미안해.
그때로부터 10년이 흘렀으니
너도 서른 즈음이 되었겠구나.
내 기억 속엔 늘 고2인데.
늘 그 희망 가득한 얼굴의 너인데.
고인에게 희망을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
하늘엔 희망밖에 없을 테니 괜찮지?
지원아.
강지원.
보고 싶다.
네가 없는
네가 떠난
네가 애써서 살고자 했던
네가 많이도 사랑했던 이 땅에서
아직 살고 있는 나는
네가 보고 싶다.
앞으로 내가 만날 모든
젊음에서 예술에서 빛에서 너를 볼게
인사 할게
꼭 인사 할게
네가 살아있을 때 인사 못 해서 미안해
이제부터라도 할게
강지원~
이라고 네 이름 부르면서 인사할게
사랑해...
빛으로 돌아간 너를
자유로 돌아간 너를
사랑해...
파괴되어가는 자연 속에서
버티며 살고 있는 우리가
넌 이제 우스워 보이겠다?
좋겠네.
미세먼지 없고 코로나 없고
전쟁 없는 곳에 있어서.
지원아.
아무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로울 지원아.
고마워.
네가 살아있었던 것에 고마워.
남기고 간 것에 고마워.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어쨌든 예술가답게 재능을 약간 숨겨가며 또는 마음껏 펼치며 재미나게 살자.
너는 이제 기쁨 말고 다른 건 없겠지만
더 예술적일 수 없게 예술적이 되었겠지만
나를 위해서 하는 얘기지 뭐.
나는 있잖아 끝없이 새로워지고 싶어.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 한
세상도 예상하지 못 한 삶을 살고 싶어.
그것이 내 삶에 거는 가장 큰 기대야.
내가 어디까지 새로워지나 잘 봐 강지원.
나의 새로움의 기준이 문제인데...
극한을 넘은 네가
팁을 좀 줘야하지 않겠니?
내가 네 이름 부르고 인사할 때 마다
영감의 조각 하나를 나에게 준다면....
너무 거래인가?
그래, 나는 어쨋든 인사 할거니까
영감 조각은 네가 좋을대로~
내가 새로워지고
그 새로움이 만족스러워 웃을 때도
너를 생각할게
너를 기억할게
지원아
뭐라고 말을 끝내야 할지 몰라서
계속 길어지는 건데
있잖아 지원아
예원이...
예원이를 내가 도울 방법이 있으면 알려줘
예원이는 내 학생일 때도
내 도움이 필요 없던 아이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내가 뭘 해야 도움이 될지
뭐 아주아주 미미하긴 하겠지만
그거라도 해주고 싶은데 잘 모르겠거든.
그런데 너 임마
예원이한테 잘 하고 간 거야?
막 싸우고 간 거 아니야?
암튼
예원이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 듣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아직 연락을 못 했어.
괜찮냐고 물어봐도 될까?
너처럼 지원이를 기억하고
지원이를 사랑하는 내가 여기 있다고
너처럼 화나고 가슴이 찌르륵한 내가
여기 있다고 손 흔들어도 될까?
흐음.....
지원아 자자
새벽이 깊었어
모든 시간의 천사가 된 지원아
아름다운 지원아
잘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