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록 Oct 05. 2022

모든 시간의 천사가 된 지원이에게

지원아...

지원아...

지원아...     

미안해...


너한테 지나치게 잘해주던

그 늑대 같은 자식을 그냥 둬서.

선생 체면 세우려고 단체 기합 받게 해서.

네가 힘들어 하던 그날 밤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해서.

너를 포함한 전교생에게

끔찍한 상처를 입힌 그 나쁜 인간을

나도 무서워해서.    


네가 그렇게 떠난 걸 뒤늦게 알아서.

네가 살아있을 때 안부 묻지 않아서.

네가 살아있을 때

작은 도움이라도 못 줘서 미안해...     


우리 지원이 힘들게 한

우리 지원이가 삶을 포기하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을 폭발시켜버리고 싶다.

내 몸이 산산이 부서져도,

다 타버려도 좋으니

깨끗이 싹 날려버리고 싶다.

깨끗이 아니어도

한 삼분의 일이라도 치워주고 싶다.     




너의 투명한 얼굴 말이야.

똑똑한 놈이 웃을 땐

약간 모자란 듯 보이는 것이

내 눈엔 그렇게 매력 있어 보였어.


발표도 노래도 그림도 글도

우정도 리더십도 얼마나 좋았니.

네가 우리나라에 있고 한참 한참 젊고

뻔하지 않고 늘 새로워서

나는 참 기대가 많이 되었어.

나 같이 멋진 애가 또 있어서

우리나라 미래가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고.    

 

너 덧니 있었잖아.

웃을 때 마다 보이던 덧니.

그리고 눈언저리에 점이 있었던가?

머리카락이 가늘고 다리가 늘씬하고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손가락이

길고 하얬었지.


뿔테 안경.

공부하고 밥 먹을 때 종종 썼던

안경도 기억나.

달리기는 적당히 빠른 편이었던가?

뭐든 열심히 했지.     

  



우리 할머니한테 니 얘기 했더니

너무 똑똑해서 그렇대.

너무 똑똑하면 그렇게 빨리 간다고.     


네가 우리 할머니 말대로

너무 심하게 똑똑해서

빨리 생을 마감했다 하더라도 괜찮아.

애썼고 잘 살았어.     


지원이 너의 삶이

예상하지 못 한 시점에 끝이 났고

그 끝이 행복하지 않았고

남은 예원이와 부모님이

많이 힘들게 되었지만 괜찮아.     

다 괜찮아 지원아.     




어제 바닷가 산책을 하는데

아참, 나 제주도에 사는 거 알지?

작고 예쁜 돌들을 줍다가

네 생각이 문득 났어.    

 

너 힘들게 한 놈들 뒤통수를

짱돌로  확 찍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그 중에 선생 시절의 나도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그 때 내가 서른 살이었는데

막 철이 들랑말랑한 때라 애 같았지.

냉장고도 없는 학교 기숙사 방에서

먹고 자고 하느라 스트레스도 컸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2 너를 

힘들게 했던  있다면 미안해.  

   

그때로부터 10년이 흘렀으니

너도 서른 즈음이 되었겠구나.

내 기억 속엔 늘 고2인데.

늘 그 희망 가득한 얼굴의 너인데.

고인에게 희망을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

하늘엔 희망밖에 없을 테니 괜찮지?               




지원아.

강지원.

보고 싶다.     

네가 없는

네가 떠난

네가 애써서 살고자 했던

네가 많이도 사랑했던 이 땅에서

아직 살고 있는 나는

네가 보고 싶다.     


앞으로 내가 만날 모든

젊음에서 예술에서 빛에서 너를 볼게

인사 할게

꼭 인사 할게     


네가 살아있을 때 인사 못 해서 미안해

이제부터라도 할게

강지원~

이라고 네 이름 부르면서 인사할게     


사랑해...

빛으로 돌아간 너를

자유로 돌아간 너를

사랑해...     


파괴되어가는 자연 속에서

버티며 살고 있는 우리가

넌 이제 우스워 보이겠다?

좋겠네.

미세먼지 없고 코로나 없고

전쟁 없는 곳에 있어서.     


지원아.

아무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로울 지원아.

고마워.

네가 살아있었던 것에 고마워.

남기고 간 것에 고마워.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어쨌든 예술가답게 재능을 약간 숨겨가며 또는 마음껏 펼치며 재미나게 살자.     


너는 이제 기쁨 말고 다른 건 없겠지만

더 예술적일 수 없게 예술적이 되었겠지만

나를 위해서 하는 얘기지 뭐.     


나는 있잖아 끝없이 새로워지고 싶어.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 한

세상도 예상하지 못 한 삶을 살고 싶어.

그것이 내 삶에 거는 가장 큰 기대야.    

 

내가 어디까지 새로워지나 잘 봐 강지원.    

 

나의 새로움의 기준이 문제인데...

극한을 넘은 네가

팁을 좀 줘야하지 않겠니?

내가 네 이름 부르고 인사할 때 마다

영감의 조각 하나를 나에게 준다면....


너무 거래인가?

그래, 나는 어쨋든 인사 할거니까

영감 조각은 네가 좋을대로~


내가 새로워지고

그 새로움이 만족스러워 웃을 때도

너를 생각할게

너를 기억할게     




지원아

뭐라고 말을 끝내야 할지 몰라서

계속 길어지는 건데

있잖아 지원아     


예원이...

예원이를 내가 도울 방법이 있으면 알려줘

예원이는 내 학생일 때도

내 도움이 필요 없던 아이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내가 뭘 해야 도움이 될지

뭐 아주아주 미미하긴 하겠지만

그거라도 해주고 싶은데 잘 모르겠거든.  

   

그런데 너 임마

예원이한테 잘 하고 간 거야?

막 싸우고 간 거 아니야?     


암튼

예원이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 듣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아직 연락을 못 했어.


괜찮냐고 물어봐도 될까?

너처럼 지원이를 기억하고

지원이를 사랑하는 내가 여기 있다고

너처럼 화나고 가슴이 찌르륵한 내가

여기 있다고 손 흔들어도 될까?  

흐음.....


지원아 자자

새벽이 깊었어     


모든 시간의 천사가 된 지원아

아름다운 지원아

잘자     


또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과 나의 에너지를 섞어버려 2 - 저수지 알몸 수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