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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Nov 04. 2015

너와 나, 그리고 줄넘기

전건우

  줄넘기를 잘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애들처럼 응원이나 할 것을……. 


  축구도 못하고 농구도 못하고 발이 느려 계주는 더욱더 못하니 그냥 찌그러져 있을 걸……. 


  아니면 힘 좋은 애들 틈에 묻어가게 줄다리기라도 지원하면 됐을 텐데. 


  “자 마지막이야. 줄넘기 나갈 사람 손들어.”


  담임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고등학교 2학년, 고교 생활의 마지막 체육대회이니 만큼 뭔가 의미 있는 걸 하고 싶었다. 줄넘기야 간단하잖아. 줄을 돌리고, 그냥 폴짝 뛰어넘는다. 그 정도라면 자신이 있었다. 폴짝, 폴짝, 가볍게, 가볍게.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폴짝, 폴짝, 가볍게, 가볍게.


  “틀렸어! 아니라니까. ‘폴짝’이 아니라 사뿐이야. 사뿐사뿐. 알겠어?”


  유주는 코끝을 찡그리며 줄넘기를 내밀었다. 손잡이에 흰색 테이프가 감긴 낡고 아주 긴 줄넘기. 테이프에는 손때가 가득했다.


  “다시 해 보자.”


  나는 줄을 돌렸다. 초록색 줄이 반원을 그리며 가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아차 하는 순간에 다시 내려왔다. 먼저 유주가 사뿐 뛰어올랐고 뒤이어 내가 폴짝 발을 굴렀다. 


  틱.


  줄은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듯 맥 빠지는 소리를 내며 발에 걸렸다.


  물론, 내 발이었다.


  유주는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린 뒤 내 발끝을 바라봤다. 녀석에게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코끝을 찡그리고,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비죽 내밀고, 한쪽 눈썹만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한 곳을 바라보고, 그리고 또 기타 등등…….


  마주 보고 줄넘기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표정들이었다.


  그렇다.


  그게 또 문제였다.


  마주 보고 줄넘기 말이다.


  이른바, 커플 줄넘기.     


  줄넘기에도 종목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체육대회에서는 하필이면 2인 마주 보고 줄넘기를 한다는 사실도, 유주는 중학교 내내 줄넘기를 배웠다는 사실도, 우리 반에서 딱 두 명, 나랑 유주만 줄넘기에 지원했다는 사실도, 젠장,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점프가 아니라 그냥 발을 들어 올린다고 생각해 봐.”


  “그게 그거 아니야?”


  “달라. 다른 거야. 점프는 높이 뛸수록 좋은 거지만 발을 들어 올리는 건, 뭐랄까, 딱 줄을 넘을 정도면 되니까 욕심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유주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사진 @ 손구용


  체육관 뒤편, 방과 후의 나른한 햇살이 폴짝폴짝도 아니고 사뿐사뿐도 아니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곳, 우리는 여전히 마주 본 채로 서 있었다. 


  머리카락을 뒤로 당겨 묶어 훤히 드러난 이마에 여드름 몇 개가 나 있었다. 그런 게 다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유주와 나 사이는.


  “뭐 해? 다시 한번 해 보자. 아까보다는 나아졌어.”


  유주는 살짝 숨을 골랐다. 체육복 아래로 봉긋 솟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것 또한 문제였고, 나는 잠시 딴생각을 했다. 어제 읽다 만 판타지 소설이나 친구들과 PC방에 가기로 한 약속 같은 것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다시 줄을 돌렸다. 


  휘익!


  줄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우리 둘을 넘어 바닥을 쳤다. 


  유주가 사뿐 발을 들어 올렸고, 이윽고 나도 발을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사뿐사뿐.


  “그래!”


  환한 얼굴로 유주가 외쳤다.


  줄은 멈추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낙하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사뿐사뿐 잘도 넘었다.


  유주와 나 사이는 아주 가까웠는데,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 애의 몸에서 풍기는 희미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가쁜 호흡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집중을 하느라 가늘게 뜬 눈을 똑똑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줄을 넘고 또 넘으며 걱정했다.


  행여나 줄에 걸릴까 봐.


  그리고……콩닥콩닥 뛰는 내 심장 소리가 유주에게 들릴까 봐. 중학교 내내 줄넘기를 했고 전국대회에도 나가봤던 유주라면 심장 뛰는 소리가 줄넘기 때문인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역시, 줄넘기 따위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도 마주 보고 줄넘기라니…….     



  우리는 걸리지 않고 자꾸자꾸 넘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이대로라면 해가 저물 때까지도 줄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놈들이야 PC방에서 좀 기다리라지 뭐. 


  지금은 유주와 나, 그리고 줄넘기 밖에 없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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