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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Aug 26. 2015

각자의 포옹법

전건우

  좋아하는 음식이 사람마다 다 다르듯 선호하는 포옹법 역시 제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물론 누군가는 다른 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음식을 즐기기도 한다.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구더기가 가득한 치즈를 별미로 여긴다니, 과연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할 수밖에. 


  마찬가지로 아주 특이한, 그러니까 평범함의 범위를 훌쩍 벗어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포옹을 즐기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다리에 매달려 봐도 돼?”


  그녀에게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라니, 양화대교를 말하는 건가?


  “다리?”


  “응. 네 다리. 꼭 한 번 매달려 보고 싶었어.”


  나는 내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런 식으로 내 다리를 유심히 살펴본 건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별다를 것 없는 다리였다. 적당히 짧고 약간 휜, 단단한 근육과도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다리. 


  “그러니까, 지금 내 다리에 네가 매달려 보겠다는 거지?”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러나 일말의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매달린 다기보다는 안는 거야. 즉, 포옹이란 말이지.”


  흐음. 그 정도야 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나는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었고 그 사이에 그녀가 다리에 매달린다면, 그러니까 그녀의 표현대로 포옹을 한다면 딱히 힘들 것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내 오른쪽 다리를 끌어안고 모로 누웠다. 발과 장딴지와 무릎과 허벅지에 그녀의 몸이 밀착됐다. 그것은 매우 특별하면서도 또한 미묘한 느낌이었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 수없이 포옹을 했지만 그때만큼 온몸을 밀착시킨 포옹은 없었다. 


  “사실 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다리에 매달려 꼭 끌어안고 싶었어.”


  그녀가 웅얼웅얼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적 취향 같은 건가?”


  내가 물었다.


  “글쎄 그렇다기보다는 각자의 포옹법 아닐까?”


사진 @ 손구용


  각자의 포옹법이라……. 


  나는 그 말이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날 이후 그녀는 틈만 나면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 실제로 매미처럼 매달린 적도 있었다. 한여름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가을 무렵이었고 숲 속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그렇다. 가을 숲 속이었다. 우리는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햇빛을 흠뻑 받아 노릇노릇 잘도 익어가던 평일 오후였다. 숲 속에는 싱그러운 냄새가 가득했다.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녔다. 훤히 뚫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야말로 새파란 하늘이 끝없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작은 바위 위에 올라가 저 아래 펼쳐진 눈부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척하니 내 다리에 매달렸다. 우리는 그때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고 우리 두 사람의 미래는 가을 하늘만큼이나 맑고 투명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좋다.”


  그녀가, 내 다리에 매달려 이야기했다.


  조금 특이한 포옹법이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포옹법, 특히 더 선호하는 포옹법이 있는 법이니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듯 우리의 사랑은 자연스레 그 끝을 맞이했다. 당시에는 퍽 슬프고 괴로웠지만 청춘의 한 순간이 지난 후부터는 희미한 상흔으로만 남게 되었고 그 후로 몇 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아예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여러 여자들을 만났다. 그녀들 역시 각자 선호하는 포옹법이 따로 있었다. 백허그를 좋아하는 가하면, 온몸이 으스러질 듯 꼭 끌어안는 걸 즐기는 여자도 있었다. 아예 포옹 따위 즐기지 않는 여자도 만나 봤다. 그러나 어떤 여자도 그 옛날의 그녀만큼 특이하지는 않았다. 


  “옛날에 사귀던 여자는 다리에 매달리는 걸 좋아했어.”


  상황에 따라 가끔 털어놓기도 했는데 역시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렸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녀의 얼굴마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는 사실만은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의 다리에 매달려 자신만의 포옹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그녀가 기꺼이 매달리고픈, 그녀의 표현대로 포옹하고픈 다리를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기원할 뿐이다. 이왕이면 더 튼튼하고 긴 다리면 좋겠지.


  아무튼 그녀를 만난 이후로 내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어느 정도 호감이 생긴 이성에게는 꼭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포옹법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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