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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Sep 24. 2015

이별전문상담소

전건우

1.     


        이것은 당신에게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을 나와 밀리오레를 지나면 인도풍 목걸이를 파는 노점이 있고 거기서부터 우회전을 두 번 하고 좌회전을 세 번 하면 시내 한 복판의 화려함을 비웃는 어둡고 후미진 골목이 나오는데, 바로 그 골목에 이별전문상담소가 있습니다.      


        취객들의 오줌과 구토 자국이 상흔처럼 남아있고, 길거리에 뿌려진 형형색색 전단지들이 쓰레기가 되어 쌓인 골목에는 낡은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지요. 그 골목의 중간쯤, 가로등이 던지는 한 줌의 빛이 간신히 닿는 거기 2층에 ‘이별전문상담소’라는 간판이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아마 새똥이 덕지덕지 붙은 그 간판을 못 보고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간판은 ‘문’자 부분이 깨어져나가 흡사 ‘이별전 상담소’처럼도 보이는데, 낡고 더러운 간판과 이별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버림받은 집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이별이라는 통과의례가 그런 것처럼 좁고 가파릅니다. 그 계단을 절반쯤 올랐을 때, 당신은 할로겐 불빛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곳에서 걸음을 되돌려 돌아가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이별을 상담한다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져 어둠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그 골목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한 발만 더 계단을 오르라고. 이별은 그 한 발이 모자라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 빨간 카펫이 깔린 그 촌스러운 계단에서부터 우리는, 나와 당신은 한 발을 더 내딛는 연습을 하자고, 나는, 당신에게 권하렵니다.      


        이별전문상담소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당신처럼 믿지 않았습니다. 푸르디푸른 5월이었고,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몇 덩이가 두둥실 떠 있던 맑은 날이었습니다. 나는 매점 옆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 든 사이다가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추웠고, 그래서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감고 있었습니다. 5월에 어울릴법한 복장이 아니었으므로 학생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의자에 앉아 살아서 보게 될 마지막 풍경을 음미했습니다. 


        그래요. 


        그때 나는 자살을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5월은 살아서 이별을 견디기에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내가 막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선배 K가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학과 선배이자 동아리 선배였던 K는 사람 좋고 인심도 후해서 후배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나도 그런 후배 중 하나였지요. 


        하지만 그 순간에는 K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K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피해서 끝도 없는 구렁으로 빠지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독한 파괴 충동이었습니다. 


        K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살며시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그러곤 이야기했지요. 


        “요즘 힘들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별이 가져다주는 ‘힘듦’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도 잘 알 겁니다. 


        K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안다. 나도 네 마음.”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인마. 이별 따위는 누구나 겪는 거야! 그러니까 툴툴 털고 일어나. 지금 계절이 어느 땐데 목도리가 뭐냐?” 


        “추워요.”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워요. 저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이놈 봐라……. 꽤 심각한데!” 


        K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얼굴을 한참 쳐다봤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말을 꺼냈습니다. 


        “너, 이별전문상담소에 가 봐야겠다. 나도 선배한테서 들었는데 꽤 도움이 된대.”           




2.     


        나는 토요일 오후에 이별전문상담소를 찾았습니다. 명동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지요. 당신은 어쩌면 그날, 나를 봤을지도 모릅니다. 


        따사로운 햇빛에 어울리지 않게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 털모자를 쓴 나를. 


        나는 극장 앞을 지났고, 어묵 파는 노점 앞을 지났고,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음식점 앞을 지났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애인과 함께 사랑의 정상에 서서 화창한 날씨를 찬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유령처럼 걸어가던 나를 보며 비웃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 당신에게 나는 당부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확신하지 말 것. 


        이별은 언제나 도둑고양이처럼 오는 것. 


        아시겠지만, 이것은 당신에게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K가 설명해준 그 골목은 거짓말처럼 한산했습니다.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한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완벽히 차단된 그곳에 정말로 이별전문상담소가 있었습니다. 


        나는 빨간 카펫이 깔린 촌스런 계단의 중간쯤을 오르다가 문득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가파르게 버티고 선 계단을 올려다보며,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다리가 굳어져, 나는 못에 박힌 액자처럼 우두커니 그 계단에 서 있었습니다. 이별전문상담소를 찾기 전 느꼈던 일말의 호기심과 흥분도 깡그리 사라졌지요.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이별을 극복하자는 거창한 자기 수련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네 계단 위에 적힌 낙서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 조금만 더 가자.      


        누군가가 나와 같은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이 그 당시 나에게는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발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이별전문상담소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상담소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넓었습니다. 수십 개의 형광등이 켜진 흰색 복도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복도의 오른쪽 편, 입구와 가까운 쪽에는 종합병원 대기실에나 있을 법한 대기용 의자들이 어림잡아도 백 개는 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의자도 빠짐없이. 


        의자가 놓여있는 반대편 쪽에는 접수창구로 보이는 허리 높이 정도의 탁자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간호사 복장을 한 여자가 서 있었지요. 그녀의 머리 위에는 전광판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은 흡사 대형 마트 식당 코너 같았습니다. 


        전광판은 쉴 새 없이 번호가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번호가 반짝일 때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누군가는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화들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은행이나 병원, 식당이나 극장, 대기 번호를 부여받는 그곳에서 우리는 줄곧 전광판을 바라보다가도 막상 자신의 번호가 뜨면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 반짝이는 다급한 호출이 살아가다가 꼭 한 번은 겪게 되는 이별과 닮았다는 사실을 이별을 맛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나는 접수창구로 다가가 번호표를 뽑았습니다. 대기인원 120명. 하품이 나올 만큼 긴 숫자가 적힌 대기표를 뽑아 들고 의자 뒤쪽, 호시탐탐 앉을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열댓 명쯤 서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가 뒤섞인 그곳은 완벽한 침묵의 공간이었습니다. 골목 어귀에서 느끼는 그 기이한 고요함이 오래된 냉장고에서 냉기가 빠져나오듯 바로 이곳의 침묵에서 근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헛기침 소리나 그 흔한 핸드폰 통화 소리도 없이, 사람들은 맹렬히 전광판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방어본능이었지요. 이별로 너덜너덜해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 무관심. 타인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만이 이별을 견디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번호가 불린 사람들은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상담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문이었는데, 검은 색인 그 문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입구에서 복도까지는 눈부실 정도로 하얀색이었습니다. 천장과 바닥, 그리고 의자나 탁자, 심지어는 벽에 걸린 시계까지 전부. 상담소에서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는 낡은 건물 어디에 이런 공간이 있을까 싶은 압도적인 넓이뿐 아니라 너무나 진해서 오히려 투명해 보이는 ‘흰색들’에도 기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대비되는 흰색의 향연은 마치 표백제를 부어 그 부분만 쓰윽 닦아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도 번호는 쉼 없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내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나는 역시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급히 그 검은색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3.     


        문 너머의 세계는 복도와 또 달랐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넓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온통 연두색으로 칠해진 문 너머의 세계, ‘상담실’은 수십 개의 칸막이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상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은행 창구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당신이 이해하기 쉬울까요? 


        나는 내 번호가 반짝이는 칸막이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별전문상담원’이란 명찰을 단 파마머리 남자가 있었습니다. 튀어나온 배, 빗어 넘긴 파마머리, 그리고 목에 건 금목걸이까지 ‘이별전문상담원’이라는 뻔뻔할 정도로 친절한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았더라면 조폭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외모였습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군요.” 


        자리에 앉자 남자가 말했다. 


        “그런 가요…….” 


        나는 얼굴을 만지며 대답했습니다. 분명 눈도 퀭하고 살도 빠졌겠지요. 지난 몇 달 동안 먹은 거라고는 몇 백 캔의 맥주와 라면뿐이었으니까요. 


        “일단 이것부터 작성해 주시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 몇 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별에 대한 설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종이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별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였습니다. 나는 남자가 건네 준 볼펜으로 2번, ‘두 달에서 석 달 사이’에 체크했습니다. 다음 질문은 ‘헤어지기 전 사귄 기간은 얼마입니까?’였습니다. 이번에는 3번에 체크했습니다. 3년 이상. 


        그런 식의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총 110개 문항이었죠. 나는 이별에 대한 110가지 질문들에 답하며 비릿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모나미 볼펜으로 체크될 수 있는 문서화된 이별. 결국 내 이별은 A4지 몇 장, 110개 질문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소함 앞에서 일종의 절망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질문까지 답하고 난 후 말없이 상담원에게 종이를 건넸습니다. 상담원 역시 말없이 종이를 받아 든 뒤 프린터처럼 생긴 기계에 종이를 넣었습니다. 곧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화면에 불규칙적인 파동이 죽죽 그려졌다가 사라졌습니다. 


        “분석 작업이죠.” 


        화면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상담원이 말했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파동은 한동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얼마 안 있어 서서히 어떤 글자의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A’였습니다. 


        고딕체의 A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상담원이 손으로 화면을 톡톡 치며 말했습니다. 


        “보이시죠? 고객님은 A유형이세요.” 


        “A라고요?” 


        나는 갑작스럽게 부여받은 ‘A’라는 이름의 유형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혈액형도 아니고 성격 테스트나 적성 검사도 아닌데 유형이라니. 상담원이 말을 이었습니다. 


        “저희들은 고객님의 상담 및 치료 편의를 돕기 위해 5가지 유형으로 분류를 합니다. A부터 E까지죠. 그중에서도 A유형은 중증의 ‘이별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나 심한 경우엔 자살까지 원하게 되는 증상을 말하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A유형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치료를 해야죠. 저희들은 그 작업을 ‘삭제’라고 부릅니다만.” 


        “삭제라고요?” 


        삭제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습니다. 


        이별이란 이미 ‘사랑’이 삭제된 단계 아닌가? 


        그런데 무엇을 또 삭제한다는 말인가? 


        내가 미처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상담원이 말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의 삭제’입니다. 고객님의 이별 기억을 삭제해 버리는 거죠.” 


        “파일을……삭제하는 것처럼?” 


        “네. 파일을 삭제하는 것처럼. 그럼 고객님은 예전의 상태, 지금보다 덜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억을 삭제하다니. 그것도 이별에 대한 기억만을 골라서 삭제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원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재빨리 말했습니다. 


        “신기술입니다. 얼마 전에 개발된. 삼십 분 시술만으로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죠. 대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물론 저희가 상담소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상담소에서 시술을 할 수 없다는 것도. 하지만 고객님, 이 시술이야 말로 고객님 같은 분, A유형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고통도 없고 번거로운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여기에 사인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번에는 ‘시술 동의서’였습니다. 


        나는 물끄러미 종이를 바라봤습니다. 여러 가지 약관이 적혀 있었고 맨 마지막에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삭. 제. 하. 시. 겠. 습. 니. 까. 


        나는 마음속으로 한 자, 한 자 발음해 봤습니다. 기억을 삭제한다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그 일은 내가 진정으로 꿈꾸던 것이었습니다. 


        그녀와의 기억, 떠올릴 때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되는 그 기억을 ‘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요. 하지만 기억은 얼룩이었습니다. 볼펜 자국이었습니다. 달라붙은 껌이었습니다.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우려 하면 할수록 얼룩이 번지듯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술에 취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그 순간에도 기억만은 또렷했습니다. 의식은 멀어져도 기억만은 내 관자놀이 근처 어딘가에서 깜박였습니다. 덕분에 나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반짝이는 기억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기억을 삭제하는 일, 가능하다면 하고 싶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말끔히 도려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볼펜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네      


        나는 동의했습니다.           


사진 @ 손구용


4.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기억의 삭제’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내 관자놀이 근처에 전선이 연결된 둥근 테이프를 붙이고 왼손 검지를 회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빨래집게 모양의 기계로 집자 여태껏 ‘A’만 비쳤던 화면이 파랗게 변했습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보는 흔한 윈도우 화면이었습니다. 


        상담원은 익숙한 놀림으로 몇 번 클릭을 했고, 이윽고 몇 장의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떴습니다. 흑백의 이미지도 있었고 컬러도 있었습니다. 


        “이게 고객님의 기억입니다.” 


        나는 화면에 뜬 몇 가지 이미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지의 등, 어머니의 가슴, 재래식 석유난로 같은 이미지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 싶었습니다. 마치 컴퓨터의 ‘미리보기’처럼 죽 나열된 셀 수 없이 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나는 내 지난날을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터질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올라 깜박이는 모양으로. 


        “보세요. 고객님. 이게 바로 저희들이 말하는 ‘기억의 염증’입니다. 이렇게 부어올랐으니 당연히 괴로운 거죠.” 


        상담원은 그렇게 말하며 염증을 일으킨 기억들을 선택해 나갔습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날, 밤을 새워 전화했던 날, 손을 잡은 날, 입맞춤을 했던 날, 그 외에도 그녀와 나의 무수한 날들이 선택됐습니다. 


        나는 그 기억들을, 암세포처럼 내 몸을 잠식한 그 기억들을 제3자의 눈이 되어 바라보며 모든 장기를 무딘 칼로 자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삭제하시겠습니까?” 


        상담원이 물었습니다. 


        화면에 뜬 ‘YES’ 위에서 마우스 커서가 애처롭게 반짝였습니다. 나는 화면을 가득 채운 ‘기억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어느 해 5월, 그녀가 햇빛 아래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저장한 ‘기억’이 어느 것보다 빨갛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안녕.” 


        상담원이 YES를 눌렀습니다. 


        그 순간 화면 위에서 기억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며 엄청난 어지럼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습니다. 거대한 믹서에 뇌를 통째로 넣고 돌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심장은 몇 번이나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고 내 의식은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허공을 헤맸습니다. 손가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엄습했다.      


        한동안 계속되던 어지럼과 역겨움은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기분 나쁜 느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엎드려있던 책상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정신을 차리기는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상담원의 말이 물속을 통과해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하게 귀를 울렸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눈을 떠 보세요. 깨끗해진 기억을 보실 수 있죠? 처음 몇 분은 좀 어지럽겠지만 조금 있으면 앓던 이를 뺀 것처럼 아주 후련하실 겁니다.”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눈을 조심스레 떴습니다.           




5.     


        그 후 몇 해가 지났습니다. 


        나는 비교적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위해 한 해 더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을 했고, 그렇고 그런 중소기업에 취직했습니다. 맞선을 몇 번 보다가 결혼도 했습니다. 착하고 여린, 절대로 이별하자는 말은 못 할 것 같은 스타일의 여자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나는 결혼 생활에 최선을 다 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렇게 내 인생은 흘러갑니다. 


        마치 당신의 인생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가끔 멍하니 한 지점을 바라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별전문상담소에 다녀온 이후로 생긴 버릇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이별에 대한 기억을 말끔히 지웠습니다. 상담원의 말처럼 후련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길고 긴 연휴를 앞둔 초등학생처럼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시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도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허전했습니다. 


        나는 허전함의 정체를 더듬다 일곱 살 무렵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앞니가 빠졌습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었습니다. 


        나는 자주 그 사이로 혀를 집어넣어 미끌미끌하고 보드라운, 여물지 못한 잇몸을 건드리곤 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허전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의 느낌.’ 


        바로 그것이 기억을 지운 후 내 주위를 맴돌던 허전함의 정체였습니다. 앞니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었던 것처럼 나는 종종, 내 머릿속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억은 삭제됐지만 ‘느낌’은 남은 것이죠. 


        이름조차 완벽하게 삭제된 그녀와의 모든 기억은 저 멀리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이별의 느낌만은 아련하게 남아 앙금처럼 내 마음에 무게를 더했습니다. 마치 다 타버린 뒤에도 잿더미는 남아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날리는 것처럼. 


        가라앉아 있던 앙금이 풀썩 몸을 일으키듯이 이별에 대한 느낌이 문득 떠오를 때면 나는 물끄러미 한 곳을 응시했습니다.      


        이별전문상담소에 다녀오고, 내가 이런 버릇을 가지게 된 후 우연히 거리에서 K를 만났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였죠. 


        나에게 이별전문상담소를 소개하고 곧바로 유학길에 오른 K였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에 우리 둘은 반가웠습니다. 식사로 시작된 해후는 술자리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 K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 거기에는 가 봤냐?”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거기’가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네.” 


        “어땠어?” 


        “기억 삭제라는 걸 했어요.” 


        나는 그전까지 누구에게도 이별전문상담소에 대해 털어놓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K에게만은 왠지 모든 걸 다 말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이별전문상담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후 생긴 이상한 버릇까지도. 


        말없이 듣기만 하던 K는 내 이야기가 끝나고 연거푸 술잔을 비우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런 걸 ‘기억 잔영’이라고 해.” 


        “네?” 


        “한 곳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통증이 가시듯이 점점 그 느낌에서 벗어나지? 연두색이 눈 주위에 맴돌면서.” 


        “선배가 어떻게 그걸?” 


        나는 놀라서 물었다. 


        “나도 갔었거든. 거기.” 


        “선배도?” 


        K는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한 모금을 빤 후,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K는 “그래”라고 대답했습니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아슬아슬하고 흐릿한 목소리였죠. 


        “내 주위에도 많아. ‘거기’에 다녀온 사람. 한 곳을 응시하는 버릇은 금방 표시가 나거든.” 


        “그러면 ‘거기’에 가득하던 사람들이 그날만 특별히 많았던 게 아니었군요.” 


        문득, 종종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던 박 과장이 떠올랐습니다. 김 대리도, 경리부 미스 최도, 그리고 아내도……. 


        K가 두 번째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렇지. 누구나 이별을 하니까.”           




6.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4호선 명동역 5번 출구를 나와 밀리오레 정문을 지나면 인도풍 목걸이를 파는 노점이 있습니다. 그 노점과 스포츠 용품점 사이로 비스듬히 난 길로 우회전을 해서 들어가다가 첫 번째 골목에서 다시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세 번 하면 시내 한 복판의 화려함을 비웃는 어둡고 후미진 골목이 나옵니다. 골목이 나오기 전에는 사시사철 파리를 날릴 것처럼 보이는 허름한 밥집이 있고, 그 밥집에서 45도 정도 맞은편에 골목이 있습니다. 골목 입구에는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류 스타들 사진이 들어간 부채며 티를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는데, 바로 그 골목에 이별전문상담소가 있습니다. 


        아마, 아직도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별을 하므로. 


        누구나 이별에 아파하므로. 


        여전히, 빨간 전광판을 반짝이며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당신에게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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