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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Jul 24. 2015

처음이자 마지막 롤러코스터

전건우

  이별한 다음 달 나는 놀이공원을 찾았다.  

  

  우리의 이별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깔끔하고 정돈된 이별이었다. 일류 요리사가 잘 벼른 칼로 단숨에 잘라버린 두부처럼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이별이었다.


  “우리 이쯤에서 그만할까?”


  그녀와 나, 둘 중 누군가가 그 말을 꺼냈다. 누구였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는지를 따지는 일이 무의미한 것처럼 이별 역시 마찬가지이니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쩌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이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랑의 절정을 달리던 순간에도 늘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들은 다 그래.”


  아무리 행복해도 머릿속 어딘가에는 이별의 예감이 매복 사랑니처럼 잠들어 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매복 사랑니라니,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참 단순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사랑했는데 그건 마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았다. 한순간도 손에서 뗄 수는 없지만 그 때문에 늘 어깨나 목이 아팠다.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다고, 나 역시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놀이공원은 언제나 그렇듯 한산했다. 피에로 분장을 한 남자가 하릴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지나 롤러코스터 앞으로 갔다. 


  “한 장 주세요.”


  심드렁한 얼굴로 껌을 씹던 매표원은 역시 심드렁한 얼굴로 표 한 장을 내밀었다. 그 표를 받아 들고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롤러코스터를 바라봤다. 마침 출발하기 전이었다. 마치 지금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탑승하세요.”


  사각형 모자를 눌러쓴 직원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그 손짓에 이끌려 롤러코스터에 앉았고 내려오는 안전 바를 속절없이 바라봤다. 모든 일이, 마치 우리의 이별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대비할 새도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사진 @ 손구용


    직원의 경쾌한 외침과 동시에 롤러코스터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올 파국을 예감하는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올라갔다. 덩달아 내 심장도 요란스레 뛰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는 정점에 서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듯 ‘푸쉬’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것이 신호였다. 롤러코스터는 곧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시속 200킬로미터의 바람이 귓전을 스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셔츠가 나부꼈다. 중력을 거스르는 거대한 힘이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마도 지금 나는 호수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눈도 뜰 수 없었다. 엄청난 바람이 단숨에 호흡을 앗아갔다.      


  그녀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놀이공원에 가는 걸 좋아했다. 손바닥만 한 호수를 끼고 만들어진 작고 낡은 놀이공원엔 삐걱거리는 회전목마와 어린이 바이킹, 그리고 지루해서 하품까지 나오는 귀신의 집이 전부였다. 


  롤러코스터. 


  롤러코스터도 있었다. 그 낡은 공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선형의 매끈한 몸체를 가진 롤러코스터는 ‘꿈과 사랑을 싣고’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옆구리에 매달고 호수를 가를 듯이 내달리곤 했다. 


  그녀는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그 롤러코스터를 탔다. 저무는 태양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주인 잃은 풍선 한 두 개가 가슴이 터져라 하늘로 날아오를 때쯤 그녀는 어린애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나를 롤러코스터 앞으로 잡아끌었다. 


  “꿈과 사랑을 싣는다잖아.” 


  그녀는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롤러코스터만은 절대 타지 않겠다는 나를 향해 그녀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나는 한 손엔 음료수를 들고 혹은 카메라를 들고 또 가끔은 솜사탕이나 뻥튀기 같은 걸 들고 롤러코스터 앞에서 언제나, 언제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해. 나 롤러코스터만은 못 타겠다. 알잖아? 내가 무서워하는 거.”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서운한 듯 잠시 서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며 음료수를 조금 마시거나 사진을 찍거나 뻥튀기에 구멍을 내곤 했다. 그런 날들이 하늘에 맺힌 수많은 구름들처럼 모였다가 흩어졌다. 


  어느 날, 이제는 더 이상 그냥 어느 날이 아니게 되어 버린 그 어느 날에 그녀는 말했다. 그날도 우리는 작고 낡은 놀이공원, 손바닥만 한 호수를 끼고 자리 잡은 그곳에 갔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롤러코스터 앞에 섰다. 


  “마지막 부탁이니까 우리 같이 타자.” 


  나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람이 불었다고 기억한다. 길고 긴 바람이 땅거미가 깔리는 공원 안을 휘돌았다고 기억한다. 페인트가 벗겨진 회전목마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디선가 동요가 들려왔고, 그녀가, 롤러코스터로 향하며 코를 훌쩍이는 소리도 들려왔다고 기억한다. 


  이별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서부터일까? 사랑에서 이별로 기울기 시작하는 그 순간, 삶이 오래된 나사처럼 뒤틀리기 시작하는 그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나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그녀가 먼저 발걸음을 돌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틈 사이로 사라져 갈 때도 나는 바보처럼 그 생각만 했다. 

  

  그렇게 사랑이 낙하했다.      


  롤러코스터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굉음과 함께 계속해서 내 심장을 들썩이고 내 머리를 흔든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과 용기를 짜내 살며시 눈을 뜬다. 


  그녀와 헤어진 후 늘 궁금했었다. 


  그녀는 왜 롤러코스터를 탔을까? 그곳에서 무엇을 보며 즐거워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롤러코스터 위에서 나는 눈을 뜬다. 그곳엔 낡고 삐걱대는 회전목마와 노란색 어린이 바이킹이 가슴이 시리도록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석양이,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짙고 두꺼운 노을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아름답다. 


  나는 왜 이런 아름다움을 몰랐던 것일까? 문득, 눈물이 흐른다. 


  그녀와 함께 했던 날들이,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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