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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Jul 15. 2015

연애는 끝났다

전건우

  “연애는 끝났다.”

  

  녀석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연애란, 그 녀석이나 나에게 있어 담배연기처럼 모호하고 흐릿한 단어였다. 더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솔로 인생 5년 차에 접어든 복학생의 삶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녀석이 아니던가! 

  

  평소 같았으면 지랄한다며 뒤통수를 때렸겠지만 비에 흠뻑 젖어 자취방으로 들어온 녀석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녀석이 자랑하며 한 번도 빌려주지 않던 미피 3단 우산의 행방도 궁금했고, 어떻게 하면 단 하루 만에 실연당한 남자의 눈빛을 가질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 슬퍼 보인다는 사실도 지적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은 녀석의 말을 듣는 게 먼저였다. 

  

  녀석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토익 학원을 마치고 지하철을 탔단다. 언제나 그렇듯 늦은 시간의 지하철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맞은편에 앉은 여자 두 명의 대화가 유독 잘 들렸단다.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을 자꾸만 쓸어 넘기는 여자의 말이 유독 귀에 들어왔다고 했다. 

  

  여자는 이렇게 말했단다. 

  

  “언니는 가족이라도 있지. 나는 진짜 외로워.”

  

  척 보기에도 언니 같아 보이던 그 옆의 여자는 이미 반쯤 잠에 빠져든 상태였는데도 ‘그녀’(여기서부터 녀석은 그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계속 이야기를 하더란다. 

  

  “집에 가면 나 혼자 뿐이고 날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녀석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단다. 

  

  물론 ‘그녀’는 남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 정도의 미모와 몸매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녀석으로서도 그 ‘뭉클’이 당황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단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아마도 그랬겠지만) 녀석은 그녀를 따라 지하철에서 내려버렸단다. 원래 내려야 할 곳보다 다섯 정류장이나 더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녀를 따라 지하도를 걸으면서도 녀석은 생각했단다. 

  

  내가 미쳤지……. 


사진 @ 손구용

  

  “하지만 때로는 미쳤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잖아?” 

  

  녀석은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좌우지간, 바깥에는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해서 추적거리고 있었고 녀석은 미피 3단 우산을 펼쳐 들고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씌워줬단다. 그녀 역시도 녀석을 잠깐 올려다봤을 뿐 별다른 말없이 걷기만 했단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두 남녀가 빗속을 걸어갔단다. 

  

  “시간도 기억하고 있어. 1시간 10분.” 

  

  녀석은 가만히 말했다. 

  

  아니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닌 거야,라고 물으려는 찰나 녀석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초등학교 2학년 때 백 원을 주고 산 노란 병아리를 만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의 어깨와 맞닿았던 느낌에 대해 녀석은 말했다. 

  

  그녀의 가늘고 따뜻한 어깨가 박자를 전하는 메트로놈처럼 녀석에게 슬픔과 애잔함과 고독을 전했단다. 좁은 우산 사이로 삐져나와 비에 젖은 한쪽 어깨와 그녀와 맞닿아 따뜻해진 또 다른 어깨 때문에 녀석은 한기가 돌아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는데, 그 떨림이 휴대전화의 진동처럼 사랑의 신호를 전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그녀가 마침내 한마디 말을 꺼냈단다.

  

  “커피 마시고 싶어요.” 

  

  고독한 그녀와 커피는 사뭇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녀석은 냉큼 건너편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이 캔커피 두 개를 들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단다.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녀석이 자랑하며 한 번도 빌려주지 않던 미피 3단 우산과 함께. 


  “그건, 정말로 사랑이었어.”


  그래서 비를 맞으며 자취방까지 걸어왔다는 녀석은 이야기를 끝내며 덧붙였다. 


  ‘지독하게 짧은 사랑이었지. 불과 1시간 10분 동안의 연애.’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농담을 하기에는 녀석의 슬픔이 너무 커 보였고 위로를 건네기에는 녀석의 허무가 너무 짙어 보여 둘 다 그만뒀다. 


  “라면 하나 삶아 줄까?”


  모든 말을 뒤로하고 녀석에게 물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 10분 동안의 장엄하고 절절하며 슬프고 행복하기까지 했던 연애를 마친 녀석은 기운을 다 소진한 듯 가만히 자리에 누웠다. 


  나는 녀석을 위해 참치를 넣은 특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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