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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Aug 12. 2015

납량특집: 하나 여인숙 308호

전건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낡은 장판 위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머리맡에서 여자의 흐느낌이 들린단다. 형광등이 깜박이고 창문이 덜컹거린단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으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단다.


  눈을 뜨면 여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린 채. 살아생전에는 예뻤을 갸름한 얼굴에는 죽음이 새겨놓은 창백한 상흔이 가득하다. 여자가 새빨간 입술을 꼼지락거리며 중얼댄다. 


  ……아니야. ……너도 아니야.     


  내가 들은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불콰하게 취한 남자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포장마차를 빠져나가 표표히 사라졌다. 


  하나 여인숙 308호에 정말로 귀신이 나타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포장마차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밤이었다. 바람이 선득선득 불었다. 차창 안으로 알싸한 공기가 들어왔다. 손마디가 시렸다. 계절의 변화는 달력보다도 몸뚱이가 먼저 알아챈다.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난 것도 이맘때쯤이었다. 가을이 일단락되고 겨울의 첫 장이 막 펼쳐질 무렵. 


  나는 트럭을 몰았다.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받아 대전을 거쳐 대구와 부산까지 배달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일을 했는데, 물건을 싣기 전날 밤에는 동대문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하나 여인숙은 동대문에서 신당동으로 넘어가는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이에 숨어 있었다. 낮에는 동대문운동장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밤에는 취객들의 토악질 소리가 들리던 곳.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돌고 돌다 보면 하나 여인숙의, 그 낯부끄러울 정도로 빨간 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매번 그곳에 묵었다.     


  하나 여인숙은 당시에도 오래되고 낡은 곳이었다. 방은 좁았고 냄새가 났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가득했으며 장판은 어딘지 모르게 축축했다. 가구라고는 손바닥만 한 브라운관 TV가 전부였다. 그런 이유로 가격이 쌌다. 일용직 노동자나 식당 종업원, 혹은 나 같은 장거리 트럭 운전수가 하나 여인숙에 묵는 것도 다 가격 때문이었다. 


  어느 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노란 고무줄 하나로 묶은 수수한 외모의 여자였다. 


  “새로 일하게 됐어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웃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골목을 휘돌아 웅웅 불어대던 바람마저 그 뒤척임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벽에 붙은 커다란 시계도 째깍거리는 걸 그만두고 우리를 지켜봤다. 


  “잘 부탁합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내가 그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시간은 고작 삼 분 남짓이었다. 


  “아주 무서운 얼굴이었어요. 강도가 아닐까, 걱정했다니까요.”


  그녀가 내 첫인상을 두고 했던 말이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그녀 마음을 너무도 훔치고 싶었으니까.


  우리는 처지가 비슷했다. 가난하고, 가난하고 또 가난했으며 희망을 찾기에는 둘 다 너무 피곤했다. 


  “소원이 뭐야?”


  언젠가 그녀에게 물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런 질문마저 사치였으나 사랑은 가끔 사치를 꿈꾸게 만든다. 사실, 내게는 사랑도 사치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잠. 잠을 푹 자고 싶어.”


  그녀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 아무것도 안 하고 오래오래 자고 싶어.”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소박하나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공통점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잤다. 장소가 어디건 상관없었지만 대부분은 하나 여인숙 308호, 내가 묵던 그 꼬질꼬질한 방에서였다. 


  우리는 늘 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딱히 씻거나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곰팡내가 풍기는 이불을 깔고, 정체불명의 얼룩이 가득한 베개를 꺼내 누우면 그만이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꼭 붙어서 잠을 청했다. 


  “대전에 가면 말이야…….”


  나는 가끔 내가 들르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언제나 대전을 넘지 못했다. 그전에 잠들었으므로.      

  그녀 옆에서라면 충분히 잘 수 있었다. 시간은 관계없었다. 십 분을 자더라도 그녀와 함께라면 죽은 듯이, 다시는 깨지 않을 기세로 숙면을 취했다. 


  잠에서 깨면 늘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희망이나 그 비슷한 걸 가지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일 이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모레. 그렇다. 처음으로 내게도 모레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이가 바로 그녀였다. 모레를 인정하고 나면 다음 주나 다음 달, 그리고 내년 역시 인정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빌어먹을 사랑.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기 전, 나는 다른 일을 찾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옷들을 싣고 대전과 대구, 부산에 들를 필요가 없어졌다. 하나 여인숙을 찾을 필요 역시 사라졌다. 나는 소금을 싣고 전국을 떠돌게 될 터였다. 그래야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기다려 줄래?”


  나는 그녀에게 염치없이 물었다. 돌아올 계획 같은 건 애초에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허나 누군가가 기다려줬으면 했다. 햇볕에 잘 말린 소금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 때, 혹은 피곤한 몸으로 막걸리를 들이켤 때, 하나 여인숙과 비슷한 어떤 곳에서 비슷한 이불을 덮고 애써 잠을 청할 때,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레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레 그리고 또 모레. 


  “돌아온다고 약속해.”


  그녀가 말했다. 


  내 이기심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것이 나와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하나 여인숙 308호를 떠났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함께 가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녀 역시 함께 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런 게 사랑이라 생각했다. 


  사랑마저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사진 @ 손구용


  오랜 세월이 지났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 나는 인생이 내리누르고 시간이 후려쳐도 살아남았다. 내게는 늘 모레가 있었다. 딱 그만큼의 희망. 


  물론 끝내 그럴싸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했다. 사랑을 했고 또 이별도 했다. 


  가끔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녀와 내가 하나 여인숙 308호에서 단잠을 잤던 순간들. 생각하면 아득했다. 마치 꿈인 것 같았다. 아니, 그때 꾼 꿈속에서 영원히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통증은 예민한 짐승이었다. 내가 잠에 빠질라치면 금세 눈에 불을 켜고 일어나 온몸을 헤집어 놓았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소용없었다. 


  “마지막을 준비하십시오. 가족은 있습니까?”


  의사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아무나 선생님 곁을 지켜줄 분은?”


  황송하게도 선생님으로 불린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쓸쓸히 병원을 나왔던 그날, 혼자 들른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술에 취한 남자가 홀로 소주병을 기울이며 여주인에게 털어놓던 이야기.


  “날도 서늘한데 내가 귀신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옛날에 말이야 저기 저 동대문 쪽에 그 뭐냐, 여인숙이 하나 있었대. 이름이 하나라고 했나 둘이라고 했나……. 아무튼 말이야…….”     


  택시에서 내리다가 쓰러졌다. 통증이 엄습했다. 배를 움켜쥐고 일어서지 못하자 택시 기사가 문을 열고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119 불러 드려요?”


  나는 손을 저었다.


  “괜찮소. 바로 요 앞이 내 집이오.”


  택시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났다. 나는 그가 왜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리킨 방향, 그 옛날 골목길이었던 그곳은 이제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변해 버렸다. 


  허허.


  나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었다. 품에서 진통제를 꺼내 입으로 털어 넣으면서도 웃었다. 남자가 포장마차를 나서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귀신 나오는 여인숙 이야기도 벌써 몇 년 전이오. 지금 가 봐야 없을 걸.”


  통증이 어느 정도 사라지기를 기다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눈앞에 우뚝 솟은 공사장 가림막을 바라봤다. 틈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나는 거기에다가 눈을 대고 하릴없이 공사장 안을 엿봤다.


  바로 거기에 그게 있었다.     


  하나 여인숙.     


  그 새빨간 간판이.     


  나는 뛰는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며 공사장으로 들어갈 개구멍을 찾았다. 지난날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자면 공사장에는 어디나 그런 개구멍들이 존재했다. 


  절뚝거리며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내 몸이 들어갈 만한 개구멍 하나를 찾았다. 나는 시큰거리는 무릎을 억지로 구부려 그 구멍을 빠져나갔다. 


  “아!”


  하나 여인숙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 하는 소리가 났다. 그것 역시 옛날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카운터는 텅 비었다. 어두운 복도에 차디 찬 바람이 머물고 있었다. 


  나는 308호를 찾았다. 칠이 벗겨진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때와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습한 기운도 그대로였다. 


  “자고 싶어서 왔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 방 어딘가에 깃들어 있으리라. 언제 어느 때, 무슨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딱히 슬프지도 않았다. 무언가에 슬퍼하기엔 내게 남은 모레가 너무나 헐거웠다. 다만 그녀 품에서 잠들고 싶었다. 고통 없는 깊고 깊은 잠. 이왕이면 오래오래 깨지 않을 그런 잠.


  이불을 깔고 누웠다. 축축한 이불은 뒤척이면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 옛날에도 그랬다.  

  사방이 어두웠다. 눈을 감았다. 머리맡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차갑고 기다란 손가락이 희끗희끗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흑흑.


  누군가가 그렇게 울었다. 어쩌면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르겠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건드렸고 울음소리는 바람의 속삭임이었는지도…….


  설핏 잠이 몰려왔다. 내 얼굴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빤히 바라보고 있다.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로. 


  늦었소.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허나, 미안하다는 말은 않겠소. 미안하다 말하기엔 내 남은 모레가 너무 짧소. 

점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처럼 숙면을 취하리라. 그런 예감 속에서 나는 또 중얼거렸다. 


  이리 오소. 

  같이 잡시다. 

  오랜만이오. 

  당신과 나, 참 수고 많았소. 

  그럼 잘 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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