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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Sep 03. 2015

Long Goodnight

전건우

  좀비가 나오는 꿈을 꿨다.


  아니,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에 휩싸인 어느 마을 한 복판이었던 것도 같다. 무언가가 폭발했고 귀를 찢는 총소리가 들렸으며 사방에 피가 가득했다. 어쩌면 대학살의 현장이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쓰러졌고 아직 죽지 못한 누군가는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집채 만 한 괴물이 빌딩을 무너뜨리고 입에서 불을 토해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불을 끄고 간이침대에 눕기만 하면, 잠은 예민한 들쥐처럼 긴 꼬리를 꿈틀거리며 달아나버렸다. 불면의 밤은 길고 지루했다. 나는 긴 밤의 대부분을 어둠 속에 오도카니 앉아서 보냈다. 질척질척하고 끈적끈적한 밤의 어둠과 싸우다 보면 나는 이내 탈진했다. 그런 순간이면 기다렸다는 듯 악몽이 다리를 뻗어온다. 마치 여행자의 천막을 점령해 버린 낙타처럼 슬그머니, 음흉하게.


  그런 날들이 있었다. 우리가 젊었던 날. 새파랗게 익은 청춘이 사막의 모래알만큼 반짝이던 시절 아내와 나는 여러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단단히 손을 마주 잡고 이곳저곳을 잘도 걸어 다녔다. 같은 길을 함께 걷기만 해도 행복했다.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 어느 해 여름날에 우리는 먼 이국의 철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의 폐쇄된 철로였다. 레일은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갈라진 침목 사이로 이름 모를 풀꽃이 자라나 있었다. 철로의 양옆은 우거진 숲이었다. 절정에 다다른 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동안 아내와 나는 배낭을 깔고 선로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두어 시간 전 지나쳐 온 상점 겸 주유소에서 산 음료수도 마셨다. 아마 대용량의 이온 음료였으리라. 이미 미지근해졌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나뭇잎을 스치며 바람이 불어왔다. 새파란 하늘에 조각상 같은 구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우리는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들었다. 무언가 다정한 말들과 앞으로의 여행 계획, 이 무의미한 철로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따위의 이야기들을 나눈 것도 같지만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일본제 소니 워크맨을 통해 흘러나오던 노래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Long good-byes make me so sad.

  I have to leave right now.

  And though I hate to go,

  I know it's for the better.

  Long goodbyes make me so sad.

  Forgive my leaving now.

  You know I'll miss you so

  and days we spent together.


  70년대 그룹의 오래된 노래가 후렴부를 향해 달려가던 그때 철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열차가 내뿜는 커다랗고 우렁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다음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철로의 저쪽 끝에서 열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순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여행 책자에 폐쇄되었다고 나와 있던 철로는 비록 녹이 슬고 침목이 갈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사용 중이었고 우리가 모르는 새에 열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아내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어서 피해.”


  아내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샌드위치 더 먹을래? 마치 그런 질문을 할 때처럼 평온하게. 무슨 소리냐고, 같이 일어나서 그저 철로 밖으로 나가면 될 일 아니냐고 말하려는 찰나 나는 아내의 발을 봤다. 침목과 침목 사이에 꽉 낀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발을.


  “진동을 느끼고 바로 발을 움직였는데 이렇게 됐다는 걸 발견했어. 안 빠져. 그리고 시간이 없어.”


  열차는 몇십 미터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투우 소처럼 콧김을 뿜으며 벼락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불행은 늘 벼락처럼 다가온다. 그날, 바로 그 순간이 그랬다. 나는 아내의 발 잡아당기기를 포기한 뒤 운동화 끈을 풀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일었다. 보나 마나 열차는 우리를 덮쳐 깔아뭉개기만을 기대하며 성큼성큼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여름 태양은 여전히 기세등등했지만 등줄기에는 한기가 돌았다.


  “그냥 가.”


  아내는 단호했다.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주 생생하게. 이국의 공기, 타오르는 태양, 뜨거운 철로, 귀를 찢는 기적 소리, 그리고 단단하고 치밀하며 악의적으로까지 느껴지던 운동화의 매듭. 아내의 외침, 심장 뛰는 소리, 웅웅 울어대던 철로, 휘몰아치던 바람, 나도 모르게 흘렸던 눈물…….


  운동화 끈을 풀고 아내를 앉은 채 철로 밖으로 구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한 짝만 덩그러니 남은 아내의 운동화와 우리의 배낭을 갈가리 찢으며. 아내와 나는 서로를 끌어안은 상태로 한동안 쓰러져 있었다. 


  아내의 숨소리가 들렸고, 서로의 심장이 뛸 때마다 각자의 심장도 느리고 빠르게 반응했다. 자욱했던 먼지가 가라앉고 우리의 흥분이 사그라질 때쯤 아내와 나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 우리의 얼굴에 주름이 없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날 우리에게 남은 건 소니 워크맨뿐이었다. 못 돼 먹은 열차는 우리의 옷가지는 물론이고 얼마 없던 돈과 여권까지 죄다 끌고 가 버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거짓말처럼, 그 사건 이후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다시 숙소로 돌아갔는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긴 했는지 따위의 것들.


  다만 한 가지 어렴풋한 기억은 우리가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진 @ 손구용


  아내와 나는 쭉 함께 늙어갔다. 청춘은 우리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던 열차처럼 아차 하는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좋은 일도 있었고 그것과 비슷할 정도로 나쁜 일도 있었다. 몇 개 월 간 떨어져 살기도 했다. 그때는 서로를 정말로 미워했다. 


  그래도 나는 그 해 여름 먼 이국의 철로에서 있었던 일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계절은 바뀌고, 바람은 불고, 구름은 흐르고, 세월은 더께더께 쌓이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건 우리 둘 뿐이었다. 자식들은 저마다의 생활로 바빴다.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청춘은 늘 그런 법이니까. 그리고 청춘의 시기가 지나면 자신만의 인생이 시작되니까.


  아내가 쓰러졌다. 


  불행은 늘 벼락처럼 다가온다. 준비할 새도 없이, 또한 예고도 없이. 아내는 며칠 동안 두통을 호소하다가 내 어깨에 기대듯 비스듬히 쓰러졌다. 함께 일일 연속극을 보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는 아내를 돕지 못했다. 나는 속절없이 달려오는 열차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의 병에는 매듭이 없었다. 그저 꽉 다문 침묵의 덫만이 아내의 발을 단단히 쥔 채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릴 뿐이었다. 우리의 잊지 못할 그 여름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고칠 수 없는 병도 있다. 의사는 긴 투병이 예상된다고,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내 되시는 분은 지금 제일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간직한 채 꿈을 꾸고 있을 거예요.”


  차분한 표정의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려다가 문득 멈춰 서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나는 주름진 목을 끄덕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이었다. 아내는 분명 그 여름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을 테니.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아내의 운동화 끈을 풀고 구해줄 것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에도, 지금도.


  선잠에 빠질 때면 항상 악몽을 꾼다. 몇 달에 한 번씩 병원을 다녀가는 손자 녀석의 옷에 그려져 있던 좀비가 나오거나 전쟁의 포화 속이거나 핼쑥한 얼굴의 귀신이 등장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다만 늘 마지막은 그 여름의 철로 위였다. 


  태양이 속절없이 내리쬐고 열차가 달려오는 그 순간. 나는 종종 아내의 운동화 끈을 풀지 못하고 잠에서 깬다. 


  그런 날이면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세월의 흔적이 남긴 주름지고 갈라진 손을 잡고 있으면 내 머릿속에서는 그때의 노래가 가만히 재생된다.     


  Long in the day

  Moon on the rise 

  She sighs with a smile in her eyes.

  In the park, it's late after all,

  She sits and stares at the wall.

  And she recalls the day,

  when she left home.     


  그런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날들. 열차가 달려가듯 먼지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날들. 

  

  그 숱한 날들이 쌓이고 쌓여 낯설고 생경한 현재가 되었다. 좋았던 시절도, 나빴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인생이었다. 그 모든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아내와 나는 단단히 손을 잡고 있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이제는 늙어버린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그 여름날 철로 옆에 쓰러져 가쁜 호흡을 내쉬던 아내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난 당신이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어.”


  그 말을 떠올린 후에야 나는 비로소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서.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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