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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Aug 05. 2015

지나간다, 우리의 세월이

전건우

  아내의 허리에 파스를 발라주다가 문득, 눈물이 났다. 아내는 병원에 다녀왔다. 부항과 사혈 자국이 가득했다. 


  “그러게 무거운 것 좀 들지 말라니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부렸다. 미간을 찡그리고 입을 앙다물고 코끝을 벌름거리지 않았다면, 주책없이 울어버렸을 것이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주르륵.


  “마트에서 장 좀 봐오느라 그랬어. 자고 있는 애도 업어야 하고.”


  아내는 어제 십일만 팔천칠백 원 치를 샀다. 휴대전화에 그렇게 찍혔다. 커다란 장바구니 두 개에 십일만 팔천칠백 원 치 생필품을 담아 들고는 아들까지 엎은 채로 집으로 왔으리라.


  “미련하기는…….”


  혀를 찼다. 손에다 파스를 듬뿍 묻혀 박박 문질렀다.


  “시원하다.”


  아내가 말했다. 잠이 오는지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무거운 건 차에 넣어놓고 나보고 가져오라면 되잖아.”


  “늦게 돌아오면 힘들 텐데 뭐 하러.”


  “내가 하는 게 뭐 있다고. 백수 작간데…….”


  “백수 작가는 무슨. 전업 작가님이잖아.”


  아내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데이트할 무렵에는 아내의 핸드백도 내 차지였다. 친구들은 못났다고 놀렸지만, 나는 왠지 그렇게라도 해야만 아내가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았다.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처럼. 


  “나, 살쪘지?”


  아내가 물었다.


  “안 쪘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천국에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살 쪘냐는 아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하나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이런 거짓말은.


  “정말? 다행이다.”


  아내는, 속아 넘어갔다. 


  “아직도 처녀 때 그대로다 야.”


  내친김에 조금 더 나갔다. 결혼한 지 햇수로 팔 년, 아내의 몸매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아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처녀 때와는 전혀 딴판이 되었다. 날카롭고 가팔랐던 가슴과 허리 라인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평야처럼 바뀌었다. 몸매의 굴곡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넉넉한 사이즈의 속옷이 메웠다. 


  아내는 나비 같은 여자였다. 봄날, 들판에 핀 꽃 위를 나긋나긋 날아다니는 흰나비. 그에 비하면 나는 개똥벌레나 갯강구, 혹은 쥐며느리 정도였다. 시커멓고 못생긴데다가 ‘장래성’이라고는 갯강구의 퇴화한 눈만큼이나 캄캄했다.


  언젠가 한 번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나와 결혼을 했느냐고. 나는 내심 잘 생겨서라거나,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서 따위의 농담을 기대했으나 아내는 쓸데없이 진지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고생은 하겠지만 마음은 행복할 것 같아서…….”


  그 말을 떠올릴 때면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미간이 뜨거워졌다. 나는 왜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세월은 십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와 나는 수련회 캠프에서 같은 팀원으로 만났다. 원래 알던 사이였으나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 캠프가 재미없었다. 따분했다. 아르마딜로처럼 몸을 돌돌 말고 내처 자고 싶었다. 할 게 없고,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 수다나 떨지 싶었다. 아내와 풀장 옆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건 그 때문이었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지리산이었고, 여름이었다.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별들이 우수수 빛났다. 우리의 이야기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인생에 딱 한 번, 누구에게나 기적의 순간이 주어진다. 내게는 2000년 8월, 어느 여름밤 지리산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그때가 기적의 순간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아마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허풍,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많은 꿈들에 대해 떠들었으리라.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날의 풍경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으로 웃었는지도.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낡은 리복 운동화가 내 발에서 벗겨져 나갔던 바로 그때,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두 살이었다, 우리는.     


  “앗!”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손가락은 벽 쪽을 가리킨 채로 굳어 있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시커먼 바퀴벌레가 암벽등반을 하는 중이었다. 맹세코,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바퀴벌레 중 가장 큰 놈이었다. 몸통은 엄지 두 개를 합쳐 놓은 정도로 컸고, 더듬이는 딱 그 세 배였다. 날개를 둘러싼 등딱지는 장갑차의 그것처럼 두껍고 단단했다. 무얼 먹었는지 배는 통통했고 전체적으로 귀티가 줄줄 흘렀다. 그놈이 우리를 힐끗 바라봤다.


  “괴, 괴물이다.”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저토록 거대한 바퀴벌레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그것 자체로 공포였다. 돌연변이인가?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능과 관련이 있는 건가? 외계의 생명체는 아닐까? 


  “빨리 잡아!”


  내가 헛된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새 벌떡 일어난 아내가 손에 신문지 한 장을 쥐어주었다.


  “이걸로?”


  “그럼 뭐?”


  “무기가 너무 약해.”


  “그런 걸 따질 때야?”


  그럼, 그런 걸 따질 때지. 


  신문지로 괴물을 때려잡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바퀴벌레는 우리를 비웃듯 유유히 벽을 누비고 있었다.


  “다른 건 없어? 파리채나 아니면 야구방망이라도.”


  아니면 칼이나 총, 바주카포나 미사일이라도. 


  “남자가 그게 뭐야.”


  “에이, 알았어.”


  나는 천천히 바퀴벌레에게 다가갔다. 신문지는 돌돌 말아 방망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파이팅. 아내가 조그만 소리로 응원을 보냈다. 뒤를 돌아봤다. 아내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승리의 여신처럼. 


  여신의 가호를 입은 나는 거리를 점점 좁혀나갔다. 바퀴벌레는 스윽, 스윽 소리를 내며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옮겨 다녔다.


  ‘승부는 일합(一合)에 갈린다.’


  마음을 다잡고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내리치려는 순간, 그놈이, 바퀴벌레가, 방사능 괴물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랐다. 


  “으아악!”


  아내와 나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공포 소설 따위 엿이나 바꿔 먹으라지. 칼 든 살인마보다도 피 칠갑의 귀신보다도 정체불명의 괴수보다도 지금 이 순간 제일 무서운 건 바퀴벌레였다. 놈은 붕붕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나는 마구잡이로 신문을 휘둘렀다. 바퀴벌레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꺼끌꺼끌한 다리의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낄낄낄. 


  바퀴벌레의 날갯짓이 웃음처럼 들렸다.


  “어떻게 좀 해 봐.”


  아내는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창문 열어, 빨리.”


  “도망가려고?”


  “사층인데 창문으로 어떻게 도망을 가?”


  아내는 공포에 질려 정신을 놓은 듯했다. 위험했다. 얼어붙은 아내 대신에 직접 창문을 열고 바퀴벌레를 몰기 시작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너무 지쳐서 숨쉬기 어려울 때가 되어서야, 놈은 천장을 뒤덮은 거대하고 찬란한 날개를 우아하게 펄럭이며 밤하늘로 날아갔다. 


  “살았다.”


  아내와 나는 창문으로 달려갔다. 바퀴벌레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밤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별들마다 누군가가 불을 환하게 켜 놓았다. 구름 몇 점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갔다.


사진 @ 손구용


  “별이 많다.”


  아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는 게 꽤 오랜만이었다. 코끝에 나무향이 가득했다. 별은 은빛 연어처럼 몸을 뒤척였고, 그때마다 반짝반짝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늘이 맑네.”


  내가 말했다.


  “꼭 우리 아들 눈 같다.”


  “그러게.”


  우리들의 아들은 자고 있었다. 한없이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그 존재는 아내와 나를 힘들게도, 행복하게도 만들었다.     


  나는 사랑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연애를 하면서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사랑의 ‘본질’을 거의 다 들여다봤다고 자신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손이었다. 손처럼 예민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사랑이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아내와 나는 수줍은 연인이었다. 사귀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서로의 어깨가 간신히 맞닿는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 다녔다. 가끔 서로의 손이 스치기라도 하면 예민한 안테나라도 된 것처럼, 그 손은 우리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중계했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펑 하고 터졌다. 폭죽이었던가, 아니면 밤꽃처럼 부풀어 오른 내 사랑이었던가. 나는 아내의 손이 좋았다. 미로처럼 얽인 손금이 좋았고, 날씬한 그 손가락이 좋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전에 내가 알던 사랑은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 사랑은 눈곱 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부스스한 머리칼로 인사를 하거나, 함께 꺼이꺼이 울거나, 머리를 맞대고 돈 걱정을 하거나, 아픈 아이를 위해 같이 기도를 하는 그 속에 있었다. 진짜 사랑은 손이 아니라 발이었다. 내가 상대방의 발이 되는 일. 그이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며 걸어가는 발. 더러운 것은 먼저 밟아주는 발. 하루의 피로를 감당해 내는 발. 당신을 달리게 하는 발. 때로는 멈춰 서서 당신의 뒤를 돌아보게 하는 발. 나는 당신의 발이 되겠소, 나는 아내와 결혼한 후 그렇게 다짐했다.


  “이상하네. 갑자기 놀라서 그런지 허리가 안 아파.”


  아내가 말했다. 에어로빅 선수처럼 허리를 휘휘 돌렸다. 여전히 날씬하다고 말해 줄 수밖에 없는 예쁜 허리를. 하지만 난…….


  “그런데 내가 허리가 아파.”


  “엥?”


  “아까 바퀴벌레 잡다가 삐끗했나 봐.”


  정말로 허리가 꼭꼭 쑤셨다. 나는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저절로 끙, 하는 신음이 나왔다.


  “뭐야? 바퀴벌레 한 마리 때문에 사람 잡겠네. 엎드려 봐.”


  아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파스를 짜서 허리에 발라주기 시작했다.


  “차가워.”


  “좀 참아.”


  “근데 시원하다.”


  “변덕도 심해요.”


  “늙어서도 우리 이렇게 해 주자. 나랑 당신이랑 서로 파스도 발라주고.”


  “일 없어요. 돈이나 많이 벌어 오셔.”


  “사랑해.”


  “느끼하게 갑자기 왜 이래? 파스 바르다 고백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일 거야.”


  아내는 푸르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젤리처럼 변한 것 같았다. 내가 아내에게 말했던가. 결혼을 하고 당신이 더 좋아졌다고, 당신 때문에 살아간다고.


  “어, 우는 거야?”


  “아니야. 파스가 독해서 그래. 멘톨인가 뭔가가 코를 찌르네.”


  아내는 “끝” 하고 외치며 내 허리를 짝 때렸다. 그러고는 일어났다.


  “손 씻고 올게.”


  “혹시 받고 싶은 선물 없어?”


  내가 물었다.


  “선물?”


  “모레가 부부의 날이잖아. 이 기회에 명품 가방 하나 지르자. 장바구니로 써도 좋으니까 어디 들고 다닐지는 걱정하지 말고.”


  “됐어요. 선물은 무슨……. 그냥 글이나 한편 써 줘. 만날 남 이야기나 하지 말고.”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거실로 나갔다.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웠다. 허리가 후끈 달아올랐다가 서서히 시원해졌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어디에서부터 불어오는지, 그리고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바람의 종착역은 어디인지, 그리고 사랑의 종착역은 어디인지. 


  바람 끝이 묵직했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여덟 번째 맞는 여름이 서서히 다가온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세월이. 


  나는 소설을 한 번 써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내와 내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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