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여자

by 아론의책


“아니, 무슨 남자가 커피 한잔 하자는 말에 정신을 못 차려요.”


El Fornet의 내부에 샹젤리제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녀의 머리 위에 있었다. 샹젤리제 보다 더 눈부신 그녀가 내 앞에 있는데, 나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이봐요!”


그녀의 낮은 저음이 날카로운 쇠가 부딪히는것처럼 높아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듣고 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낯설어서요.”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사정을 이야기했다. 스페인에 온지 3일밖에 안 되었고, 아직 이곳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라, 지금의 상황 역시 당황스러웠던 거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그녀 앞에 털어 놓았다. 물론 내 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3일 밖에 안 되었다고요?”


그녀는 3일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토끼 눈처럼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던 그녀가 갑자기 내 옆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왜 바르셀로나에 왔어요?”


갑자기 식은 땀이 등줄기에 흐르는 것 같은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스페인에 왜 왔는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감추고 싶은 비밀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처음 본 그녀에게. 감히 내가 곁에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꿈이 화가에요.”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기 위해, 찻잔에 놓인 라떼를 마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스케치북을 건넸다.


“화가요?”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스케치북을 넘기며 무언가를 보고 화사하게 웃었다. 그 해사한 미소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닮아 있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 바르셀로나에 온거네요?”

“그런셈이죠.”

“저는 수아에요.”

“저는 제이입니다.”


수아는 처음보는 나를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다. 마치 어제도 나를 보았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것 처럼 보였다. ‘스페인에서 태어나서 그런 것일까?’하고 생각에 잠기었을 때, 그녀가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스페인 사람,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에요. 저는 바르셀로에서 태어났고, 사실상 스페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인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 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녀의 또랑또랑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멈추고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을 때, 식탁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그녀의 눈이 아닌, 그녀의 턱을 향해 시선을 둔채 말을 이었다.


“저는 수아씨를 처음 보았을 때, 한국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어요. 특히, 파란눈 때문에요. 그 짙은 파란색의 눈은 한국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녀는 내 말을 듣다가 거울을 꺼내 자신의 파란눈을 바라보고, 이내 환하게 웃었다. 오늘 그녀가 보여준 웃음중에 가장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착각이 El Fornet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지해 버린 것 같은 착각속에 그녀와 나와의 대화만이 그 공간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그녀에게 향하고 있었다. 뉴턴을 향해 돌진하던 사과처럼. 어느새 나는 수아를 향해 중력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신기해요. 진짜 신기해. 마음이 조급하지 않고 괴롭지 않아요. 말이 없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거북 하지 않아요. 이렇게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래 전 부터 제이를 알았던 것 같아요.”


평온한 햇살이 카페 창가에 내리 앉아 우리가 머문 자리를 비추었다. 어색하게 시작했던 우리의 시선은, 어느새 다정한 눈으로 서로를 향해 있었다.


“전화 번호 물어봐도 돼요?”

“수아 당신처럼 예쁜사람이…”


말을 더듬거리며 잇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답답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내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조금 더 대화를 하면 좋겠지만, 약속이 있어서요.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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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도 가자 스페인> 저자. 작가 아론의책입니다. 여행 에세이와 따뜻한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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