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저는 부끄럽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수 없이 고민하다가 포기하는 것들이 많았죠. 그 수줍음은 태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이 컸습니다. 그것은 가난이었죠.
제 또래의 친구들처럼 옷도 사고 여행도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포기하였습니다. 그것이 열등감을 키우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죠. 지금의 제 모습과 달리 그 당시 얼굴에는 그늘이 있었습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답답함과 슬픔이 저를 그늘지게 만들었죠. 그래서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못난 제 환경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가면을 썼습니다. 슬픔을 감추기 위한 웃음의 가면을. 그렇게 20대의 저는 상처를 숨긴 채로 웃음이 많은 사람인척 살았습니다.
수능실패, 편입 실패, 취업실패의 사건이 홀로 방에 앉아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못난 제 자존심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인생이 공허했습니다.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괜찮은 척했지만, 진짜 내 마음을 터 놓고 슬퍼할 곳이 없었습니다. 진짜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 저를 더 힘들게 하였죠.
사람은 심장이 멈출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존재감을 잃어버릴 때,
자신감을 잃어버릴 때 죽음을 경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그때, 한 친구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론, 코이카에서 해외봉사자를 뽑는데, 한번 해봐"
"코이카가 뭔데?"
코이카가 무엇인지, 해외봉사활동에서 무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한국에서 겪고 있는 이 우울감을 벗어나고 싶어서 코이카를 지원했습니다.
살고 싶었고, 살고 싶어서 코이카 해외봉사활동을 선택했습니다. 2012년 2월 저는 비행기를 타고 엘살바도르를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죠.
행복은 돈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그들을 보며 배웠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죠 제가 언제나 가난하다는 프레임으로 저를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실제의 제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가난해진다는 사실을.
저의 가난한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이 오늘의 제 삶을 부정으로 이끈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엘살바도르에서 저는 아론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며 엘살바도르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론,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지금 너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
그 말이 저를 살렸습니다. 평생 열등감과 비교로 가득 찼던 저를 일으킨 말이었죠. 가장 아름다운 삶은,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친절을 베풀고, 먼저 감사하는 삶. 너무 평범해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건넨 한마디가, 평생 그 사람의 가슴에 남아 힘을 줍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합니다. 저에게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준 그 친구를 평생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누군가에게,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지구별을 여행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에게 나는 꽃이 되고, 나에게 너는 벌이 되어서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것일지도 모르죠.
우주가 수 없이 순환하듯, 우리도 중력처럼 어느 날 서로에게 끌려 상처를 위로해 주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확실한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에게 참 좋은 사람입니다. 나의 마음에 있는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며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덕분에 오늘이 행복합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