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마시자고 말해야 카페에 가서 그냥 앉아있기가 미안해서 마시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스페인에 가게 되면서 다양한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5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것의 유일한 휴식이 되어 버린 셈.
특히나, 비가 쏟아지는 날은 더욱더 커피 한잔이 그리웠다. 멋진 가우디의 건축 앞에서 자료집을 펼치며 투사같이 열정적으로 투어를 하는 날은 더욱 그러했다.
투어를 마치고, 비 맞은 생쥐처럼 카페 한편에 앉아 달달 떨며 호로록 커피를 마셨다. 싸늘하게 식은 손과 발은 커피의 온기를 타고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손님들에게는 유일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 카페 한 곳이 있었다. 허름하고 화려하지 않아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곳, 그래서 나는 그곳을 유독 자주 찾았다.
나만의 아지트 같아서, 나만의 피난처 같아서.
현지인들이 신문을 보는 모습과, 바리스타의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모습은 그 자체로 심장을 뜨겁게 하였다.
단 20분의 시간이지만, 휴일의 2시간 보다 더 큰 힐링이 되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르셀로나의 한 카페가 떠오른다. 비는 내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가 되어, 그날, 그때의 시간 속에 마주한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행복의 감정이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에도 스며오게 한다.
비와 카페, 그리고 커피 누군가에게 평범한 그것들이 나에게는 스페인으로 향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그리고 30대의 열정적이었던 가이드 아론을 소환시킨다. 나만 그런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 평범한 그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매일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여행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