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홀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삶 속에 비친 저의 모습을 찾습니다.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책을 날마다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찾았습니다.
"그 여자와 나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녀도 나처럼 행복하기 원하고
작은 기적들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받기를 원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아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류시화
2017년 스페인에서 가이드를 할 때입니다.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을 맞으며 미팅 장소를 향하니 이마부터 등까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10명의 프라이빗 손님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 로비로 들어가서 다른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와 여기가 제일 쾌적하네.
에어컨 바람맞으며 투어 하고 싶다."
혼자 에어컨 바람에 취해 있을 때 50대 신사분이 제 곁에 다가왔습니다.
"혹시 가이드이신가요?"
주름 하나 없는 화이트 셔츠에 그린 색 재킷이 180은 훌쩍 넘어 보이는 체형과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50대 신사분을 향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론입니다."
그날 제가 만난 손님들은 부부동반 여행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손님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가이드님 이것도 가우디가 만든 건가요?"
"바르셀로나는 살아있는 건축물 같아요."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탄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가이드라는 사실을 잊고 아이처럼 즐겁게 투어를 하였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투어 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제가 사랑하는 바르셀로나를 따뜻하고 의미 있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이 도시에 흠뻑 빠졌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한 제 마음을 물개 박수로 화답하는 손님들 덕분에 일 같지 않고 놀이처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손님들의 바르셀로나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반응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투어를 마치고 처음 미팅을 가졌던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그때 저를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중년 여성은 옆에 있는 남성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그 남성은 미리 준비한듯한 봉투 하나를 제 주머니에 넣어주며 말을 하였습니다.
"가이드님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안내를 해주셔서 아내가 행복했습니다.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봉투를 돌려드리려고 했지만 그분들은 마음을 거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숙소로 들어가셨습니다.
호텔 로비를 나와 봉투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봉투에는 500유로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 일당보다 몇 배나 더 큰돈을 받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봉투에 돈을 다시 넣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하늘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보였죠.
몸이 둥실둥실 떠오를 것 같은 흥분감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그 순간의 행복을 간직하고 싶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늘을 보며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이러니 스페인 1타 가이드지."
"손님들도 날 알아보잖아."
거금의 팁을 받은 것이 마치 제가 잘나서 받은 거라 착각했던 33살의 아론이었습니다.
아침에 책을 읽다 서른세 살의 아론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제가 투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투어를 들은 분들이 공감 능력이 좋은 분들이었다는 사실을.
자식뻘 되는 가이드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투어 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주셨던 거죠.
네팔에서 김혜자 씨가 노점 여인에게 300달러를 선물한 것처럼 스페인에서 중년 남성은 아론에게
500유로를 선물했습니다.
횡재 같은 하루
기적 같은 하루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일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한 가지는 공감입니다.
네팔 여인과 아론 모두 기적 같은 하루, 횡재 같은 하루를 경험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공감 덕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공감일지 모릅니다.
그러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똑똑한 말로 나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보다,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끄덕여주는 사람을 찾기 위해 지구별을 여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지구별 여행은,
따뜻한 공감과 친절이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