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속옷과 술

by 송아론


“내리자.”


이윽고 시온이 도착했다며 말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건물을 보고 기절을 할 뻔했다. 시온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세계적인 명품이 모두 모여 있는 ‘新 명품관’이었다.


밤낮으로 알바를 세 달이나 하고, 고민을 수백 번 한 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구매를 할 수 있는 곳. 빈 털털이가 되어도 나에겐 이 ‘백이’ 있다며 좋아라 하다가, 일주일이 지나면 후회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곳.


나 같은 사람은 들어가는 것조차도 떨려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시온이 들어가자며 내 손을 잡았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서야 얼어붙은 다리가 움직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명품들 보다도 영롱하고 빛나는 점원이 보였다. 무려 스킨헤드에 기다란 콧수염을 하고 있는 남자.


“어머나! 편집장님!”


“오랜만이야 미스터 봉.”


“옆에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누구?”


“프란다 패션쇼 메인 모델.”


“에엑? 진짜루요? 이 분이 그 소문의 주인공?”


미스터 봉은 신기하다며 나를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유채린이라고 해요.”


“와우- 프란다 톱 모델이 저희 숍에 다 와주시고 영광이에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반갑다며 손을 쓰다듬는 미스터 봉이었다. 민머리도 그렇지만, 남들이라면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핫팬츠에 장화. 게다가 뾰족한 빨간 안경. 한눈에 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하이패션을 그는 아주 이상하면서도 간단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래. 어떤 옷 보러 오셨나요? 보니까 피부가 새 하얘셔서 이런 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미스터 봉은 나를 본 지 30초도 되지 않아서 블랙 코트를 하나 가져왔다.


“엔 가바나 신상인데 시크한 도시적인 느낌이에요. 괜찮죠?”


“아... 네 그러네요.”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미스터 봉은 신이 난 듯 다른 옷들도 고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블라우스 한 장 걸치시고 매쉬 소재 롱부츠 신어주면 아주 끝장난 다니깐요. 한번 입어 보실래요?”


이번엔 1분도 되지 않아 스타일링을 마친 미스터 봉이었다. 나는 왠지 거절하면 안 될 거 같아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오호호! 역시 모델이라 그런지 옷이 모델 빨을 받네 받아!”


정말 외형에 변화가 있어서 그런지 내가 봐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어때? 마음에 들어?”


시온이 묻자,


“네. 나쁘지 않아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거 하고 나머지 옷들은 내가 코디해 줄 테니까 잠시 기다리고 있어.”


“어머 편집장님이 직접 코디해 주시는 거예요? 세상에나 난 또 이런 광경은 처음 보네. 혹시 마음에 있으신 거? 호호호-”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옷이나 보여줘.”


“그건 그렇고 저 언니 진짜로 길거리 캐스팅된 거예요? 정말 대단하네. 엘 카란다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근데 제가 봐도 보통 아우라가 아니에요. 정말 대성할 거 같아요.”


“그래. 알았으니까 옷부터 보여달라고.”


“급하시긴. 호호호-”


시온을 2층으로 안내하며 시종일관 쉼 없이 말하는 미스터 봉이었다.


‘정말 특이한 캐릭터다.’


나는 의자에 앉아 시온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나저나 이 옷들은 다 얼마나 하는 걸까? 그냥 봐도 기본은 수백 이상 하는 거 같았다.


그때,


“헤이.”


고개를 돌리자 웬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내 옆에 앉아 말을 걸어왔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너 모델이야?”


“네?”


“정말 프란다 메인 모델이냐고?”


“그런데요. 누구시죠?”


“누구?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겉보기엔 연예인 같이 보이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누군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남자가 거만한 목소리를 내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거참, 벗어야 알아보나.”


“에...?”


나는 선글라스를 벗은 남자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한민국 여대생들의 로망, 데이트하고 싶은 스타 1위 배우 강혁이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나? 옷 보러 왔다가 네가 눈에 띄길래.”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강혁이 말하는 걸 보기만 했다. 신이 조각을 하면 정말 이런 얼굴이 되는 거구나.


“그래서 그런데, 전화번호 좀 알려 줄 수 있어? 네가 마음에 드는데.”


번호를 찍어달라며 내게 휴대폰을 건네는 강혁이었다.


‘어쩌지? 이런 일은 처음인데 더군다나 강혁이라니!’


어쩔 줄 몰라할 때였다.


“왜 여기까지 와서 여자한테 치근덕거리는 거야?”


고개를 들자 어느새 시온이 굳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 호감을 표시하는 건 남자들의 본능 아냐?”


“남자들의 본능? 본능도 본능 나름이지 너 같은 애는 발정 난 동물이라고 하는 거야.”


“뭐라고? 이 자식이!”


“어머머 강혁 씨 참으세요!”


강혁이 시온의 멱살을 잡자, 그를 말리는 미스터 봉이었다. 시온이 강혁을 쳐다보며 입을 떼었다.


“유채린. 너는 잘 모를 텐데, 이 자식 연예계에서 난봉꾼으로 소문난 애야. 괜히 엮여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조심해.”


“허? 그러셔? 그래서 너는 지금 모델한테 스폰이라도 해주려고 그렇게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거냐?”


“뭐? 스폰?”


“왜? 정곡을 찔러서 당황스럽냐?”


퍽!


시온이 순식간에 강혁에게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강혁도 지지 않겠다는 듯 시온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억!


“어머머!! 두 분 다 왜 이러신대, 좀 말려주세요 채린 씨!”


미스터 봉은 나보다도 더 놀란 암탉처럼 푸드덕거렸다. 두 사람이 서로 다시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시온이 입을 뗐다.


“유채린 네가 결정해. 이 자식한테 전화번호 줄 거야?”


나는 시온에게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번호가 중요해요? 왜 이런 일로 싸우는 거예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강혁을 보고 말했다.


“강혁 씨도 그 손 놓으세요. 미안하지만 전화번호는 힘들 거 같아요.”


“쳇.”


강혁이 손을 놓자 시온도 그의 멱살을 놓았다. 강혁이 입술에 묻은 피를 닫으며 입을 뗐다.


“나 참. 전화번호 한번 물어봤다가 처맞기는 처음이네. 어쨌든. 유채린이라고 했지? 네가 연예계에 온다면 나중에 또 만날 일이 있겠지. 그때 보자고.”


그 말과 함께 명품관을 박차고 나가는 강혁이었다.


“시온... 입에 피가...”


시온의 입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티슈를 가져와 그의 입술을 닦아 주었다.


“...제길 못 볼 꼴을 보였네.”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별것도 아니었는데.”


“별 것도 아니라니? 내 모델에게 이상한 놈이 직접 거리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어? 강혁 저 녀석 톱스타 일진 몰라도, 연예계에서는 여자 문제로 알아주는 놈이니까 조심 해.”


“아…네.”


시온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언젠간 다시 꼭 강혁을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시온과 나는 명품관에서 옷을 한 보따리를 산 뒤 트렁크에 넣었다. 나는 이것들을 다 받아도 되는지 고민이 됐다. 조수석 옆에 앉은 뒤 입을 뗐다.


“정말 이렇게 사줘도 되는 거예요?”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프란다의 메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믿기지가 않다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조금 전 계산을 할 때에 미스터 봉 입에서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천 천구백이십만 원입니다~ 호호홍!”


미스터 봉은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도 잊은 채, 기분이 좋아 연신 뾰족한 콧수염을 실룩거렸다.


***


집 앞에 당도하자, 어느새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여기야?”


“네, 고마워요.”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 할 때였다.


“잠깐만.”


“네?”


시온이 내 팔목을 붙잡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느닷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서서히 내게 가까이 오더니...


“저기, 저 사람들 기자 아냐?”


“네?”


앞을 바라보자 정말로 기자들이 집 앞에 모여 있었다.


“정말 직업 정신 하나는 알아줘야 해.”


시온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쩌죠?”


시온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뗐다.


“좀 잠잠해질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어때?”


“네에?”


나는 동거를 하자는 말에 놀란 토끼눈을 했다.


“그렇게 놀라지 마. 방도 여러 개 있고 샤워실도 따로 있으니까 불편한 건 없을 거야. 근데, 속옷이 문제네.”


“속옷…?”


“그래, 사이즈가 어떻게 돼? 가는 길에 들려서 사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시뻘게졌다.


“속옷을 어떻게 같이 사요!”


“그런가? 나는 이런 거에 워낙 익숙해서. 뭐 부담된다면 알아서 하고.”


“정말...”


나는 부끄러움에 티셔츠 속으로 얼굴을 푹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고, 시온과 한집에서 살다니.


어플을 얻은 후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


이윽고 시온의 집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집. 전용 주차장이 있는 3층짜리 전원주택이었다.


“이런 곳에 혼자 사는 거예요...? 외롭지 않으세요?”


“이젠 괜찮을 거 같은데? 너랑 같이 사니까.”


“네...?”


내가 당황해하자,


“들어가자고.”


시온이 식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고 집으로 안내했다. 그의 단단한 가슴 근육이 느껴졌다.


“어때? 여기면 괜찮지?”


시온은 거실에 있는 커다란 방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맞은편 방에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샤워부터 할래?”


“네, 그럴게요.”


“그러면 여기 속옷.”


그러더니 자기 속옷, 정확히 사각팬티를 내게 건네는 시온이었다.


“..정말 제가 입어도 돼요?”


나는 민망한 얼굴로 물었다. 실은 도중에 속옷가게가 보이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온 상태였다.


“물론. 그리고 깨끗한 거니까 의심하지 말라고? 나도 두세 번 밖에 안 입었어.”


“횟수까지 말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런가? 아무튼 씻고 봐.”


손 인사를 하고 매너 있게 방문을 닫아주는 시온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시온이 준 팬티를 바라봤다.


“정말 입어도 되는 거야...? 너무 크진 않을까?”


나는 침을 삼킨 채 한동안 시온의 속옷을 바라봤다. 결국 모르겠다며 시온의 속옷을 가지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샤워를 마치고 긴장한 얼굴로 시온의 속옷을 입자,


“뭐야... 엄청 편하네...”


생각보다 너무 편했다. 반바지를 입은 느낌이랄까. 속옷에서 은은한 향기도 느껴졌다. 그 향까지 느끼고 있자, 순간 변태 같은 느낌을 받아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거실에 있는 시온을 불렀다.


“저기요, 혹시 입을 거라도 없어요?”


명품관에서 산 옷들은 밖에서만 입을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저기요, 시온, 씻어요?”


그러자 맞은편 방문이 열리더니 시온이 나왔다.


“아, 잠옷을 안 줬구나.”


우락부락한 가슴 근육. 힘줄이 솟은 팔뚝. 나는 상의 탈의를 한 채 머리를 수건으로 터는 시온을 보며 그 자리에서 굳었다.


“뭐해? 고개만 배꼼 내밀고서는.”


시온은 상의를 탈의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월드 스타는 마인드가 달라도 다르구나. 아니면 패션 매겨진 편집장이라 탈의에 대해서는 정말로 둔감한 편인 걸까.


“팬티만 입고 있어서 못 나가요. 입을 것 좀 주세요.”


겨우 입을 떼자, 시온이 알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을 닫고 침대 위에 철퍼덕 누웠다. 시온의 가슴이 떠오르자 괜히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똑. 똑.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문 열어도 돼? 잠옷 가져왔어.”


“아뇨 아뇨, 열지 마세요!”


나는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시온의 잠옷을 받았다. 면으로 된 티셔츠였다.


“바지는 따로 필요 없지? 그거 입으면 되니까.”


“아... 네...”


나는 시온이 준 티셔츠를 입었다. 입고 보니 팬티가 가려져 영락없는 하의탈의 느낌이 났다. 조심스레 거실로 나가자, 그는 가운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차라리 가운을 줄걸 그랬나? 이거 하나뿐이라.”


“아뇨. 괜찮아요. 이것도 좋아요.”


거실 소파에 앉자, 시온이 일어나 와인을 땄다. 그는 능숙하게 잔에 레드와인을 따른 뒤 와인 잔을 나에게 건넸다.


“마셔봐. 자기 전에 먹으면 기분 좋은 꿈을 꿀 거야.”


잔을 건네는 시온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리고 달콤한 레드와인.


“조금만 마실게요.”


나는 시온이 준 잔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로 조금만 먹었을 뿐인데. 나는 와인을 몇 모금 먹고도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지만 시온의 말대로 나쁘지 않았다.


“저기... 시온.. 저 너무 졸려요.”


“뭐야? 술 못해?”


“네... 완전요...”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시온을 바라봤다.


“저 좀. 재워줄래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온전한 정신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을 나는 잘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온은,


“좋아, 안아줄게.”


그가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양팔로 번쩍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운데?”


“침대로 가요, 빨리...”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그의 팔뚝을 잡자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알았어. 신데렐라님. 침대로 가자고.”


시온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고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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