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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Dec 11. 2021

[내담자 치료 일기] 4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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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현정동장애(조현병+조울증) 진단을 받은 내담자가 직접쓴 글입니다.


1화부터 보셔야 내담자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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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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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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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두 번째 상담이 끝나고 집에 있는 동안 저는 원장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제가 잘못되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인간으로서 덜 되었지?" 

"내 인생은 왜 항상 이런 식이지?"

 "내 주변 사람은 다 왜 이러지?" 

"내게 미래는 있는 건지?" 


이렇게 꼬리를 무는 고민 끝에 결국에는 항상, "나는 모자란 사람이다. 내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싫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되곤 하였습니다.


제 딴에는 해답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다."라는 전제 위에서 던진 질문이라, 나 자신이 형편없는 이유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점차 굳어져 나는 진짜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고 자신감은 사그라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원장님 말씀으로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왜 이렇게 형편이 없는지"를 고민해보는 시간도 굉장히 줄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뿌리 없는 질문이나 망상, 불안과 분노 속에서 헤매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덕분에 걷잡을 수 없었던 망상과 의문들, 감정으로 인해 겪었던 지독한 혼란도 다소 안정되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가(원장님)이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고, 나를 괴롭혔던 것들을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자 저는 정서적으로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지독하게 원망하고 따갑게 대했던 부모님에게도 좀 더 편안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는 여전히 괴로웠고, 부모님이 미웠습니다. 또 과거에 저를 괴롭힌 애들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원장님과의 상담이 점점 진행되어가면서 저는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예전에 저는 사람을 싫어하는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친한 척하고 속으로는 항상 경계했습니다. 사람 관계는 서로 속고 속이는 두뇌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이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무시하고 비웃어주는 게 당연했습니다. 

저는 너그럽고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절 먼저 비웃었으니 저는 잘못이 없었고 오히려 피해자였습니다. 전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해줘도 자기가 불편하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을 싫어했지만 여기서 더 사람을 싫어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했습니다.


우울증은 제가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걸 뜻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우울증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 그것을 전혀 창피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왜냐면 이 세상은 언제나 우울하고 고통만 있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우울하고. 그걸 알고 있는 전 현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울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걸로 보였습니다. 우울하지 않다면 저 사람은 세상모르는 철부지로서 사기를 당하거나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은 아주 아주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반드시 갖춰야 할 무기다.


그런데 제가 우울증이 있다고 하면 그걸 낯설게 생각하거나 약간 놀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저와는 달리 기분 나 빠보 일 때가 없었고 항상 씩씩했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모르는 철부지이고 제 우울증을 모르는 것만으로도 무례한 사람일 게 뻔했습니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만 보면 거부반응이 일어나 피했습니다.

이렇게 우울증은 당연히 가져야만 하고 그것만으로도 제가 똑똑하거나 소신이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도 원장님은 무안한 공감과 이해를 해주셨습니다. 항상 절 지지해주셨습니다.

저에게도 제 마음을 진심으로 정확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그 사람에겐 어떤 걸 털어놓아도 다 이해받을 수 있고 제가 도저히 모르겠는 의문에 대해서도 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정확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저는 점점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자신감이 생기는 게 아주 낯설기도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제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갔습니다.

제가 말을 했을 때 "어? 내가 언제 이런 용감한 말을?"하고 살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우울증에 잔뜩 빠져 있었습니다. 사람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하고, 날 속이고 비웃는 사람이 많은 거 같이 느꼈지만, 저는 이제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예전이었으면 저 사람이 날 싫어하거나, 비웃으려고 저런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걸 아주 막연하게나마 생각해 보려 했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저는 머리가 가벼워지고 마음도 훨씬 편해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게 좀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약간 줄어들었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약간은 지나친 생각 같았습니다. 저는 조금씩 변화를 느꼈고 무엇보다도 제 편이 생긴 거 같아 든든하고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제일 뿌리 깊었고 심각한 문제였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때로는 갑자기 지독하게 치달아올라서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제가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뭔가 좋아지고 있는 건 느껴졌지만,

애당초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절 괴롭혔고 괴롭힘 당한 저는 이렇게 상담소에 다니며 고생하고 부모님은 저보다 평온하고 즐거워 보이는 게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전 부모님을 무시했고 말을 걸어도 귀찮으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거는 건 드물었고 돈이 필요할 때만 말을 걸었습니다. 부모님한테 온 카톡도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한번 시작하면 그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학교 생활에 실패했다는 패배감, 

직장을 구한 내 또래들에 대한 열등감, 

앞으로 가야 할 학교에 대한 두려움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부모님이 저에게 과거에 했던 말들, 

그때의 부모님의 모습, 

부모님이 소리 지른 것, 

부모님의 행동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억울하고 분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세 번째 상담 때 원장님은 부모님을 상담소로 부르셨습니다. "환경치료"라는 걸 진행하셨습니다.



환경치료란, 원인을 제공한 부모님에게 저의 심각한 상태를 확실히 설명하고 부모님이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이 저에게 어떻게 나쁜 영향을 주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제 문제가 자신들이 책임이 있다는 걸 알린 다음, 제가 치료가 잘 진행되려면 부모님이 집에서 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고 그렇게 해주길 요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극단적이고 지독했고 그것이 계속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라 부모님의 협조는 반드시 필요했고 그것에 따라 제 심리치료 성공 여부가 결정될 정도였습니다.


원장님은 상담소로 오신 부모님께 아주 심각하고 격렬한 어조로 저의 문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원장님이 부모님께 설명하는 저의 문제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상초월이었습니다.



원장님 

여기 서울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지

네. JY(제 이름) 상태가 어떤가요?



원장님

이제 그걸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어요. JY가 정신과에서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받았죠? 맞나요?



아버지

네.



원장님

JY 말을 들어보니 정신과 약을 매일 3알씩 9년 동안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원장님은 제가 상담을 받으며 작성했던 도구를 부모님께 보여주시며 말했습니다.

*도구란, 내담자가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받은 것을 말함.



원장님 

여기 보이시죠? 이게 JY가 쓴 건데 이건 지금 굉장히 힘든 상태예요. 여기 보시면... JY가 어떻게 상처 받았는지 알 수 있는데, 어머니가 문제집을 많이 틀린 것 때문에 울부짖은 적 있으시죠?

JY는 어머니가 굉장히 두렵고 숨이 막혔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집에 가야 하는데 사촌동생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놀이터에 가있으니까 어머니가 욕을 하면서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



원장님 

그리고 또 JY 말 듣기로는 어머니는 아들이 시험을 볼 때마다 항상 잘 봤나, 못 봤나를 묻고 못 보면 엄청 우울해하셨다는데 JY가 그것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어머니 눈치를 엄청 보고 집에만 가면 항상 불안하고 기죽었대요.



어머니

 ......


원장님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JY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으려면 일단 집안이 편안하고 가족들이 전반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JY가 말하기로는 어머니는 항상 우울해서 이불속에서 누워계시면서 아들한테만 공부해. 학원가.라고 하셨다는데 그렇게 해서 아들이 공부를 하고 싶겠어요?



어머니 

.......


원장님은 어머니가 저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그것이 얼마나 아들에게 잘못된 것인지 말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조목조목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주셨습니다.


원장님은 제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체 어떻게 했길래 JY가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모르게 됐느냐며 제가 원장님 아들이라면 이 아이가 너무 걱정스럽고 가여웠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얼굴이 숙연해 보이셔서 저한테 미안하고 저를 걱정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한테 많이 미안해하는 거 같아 괜히 내가 너무 지나치게 엄마를 원망했나 하고 저도 약간 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했습니다.



원장님 

그리고 아버님.



아버지

 네.



원장님

JY말로는 아버지가 엘리트주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노숙자를 무시하는 말을 하셨다는데, 여기 있는 JY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아버지

네. 저도 그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원장님 

JY가 학교폭력 때문에 엄청 시달렸고 그것 때문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런데 JY가 학교폭력을 당한 이유가 따로 있어요. 



괴롭힌 당하는 애들은 주로 친구들한테 잘 맞서지 못하고 쉽게 주눅 드는 애들이 그래요. 친구들이 장난을 쳐도 기죽지 않고 똑같이 맞서거나 당당한 아이는 괴롭힘을 안 당한다는 말이에요.  집이 어둡고 우울한 아이들이 당해요.


집이 어둡고 우울하니까,  학교에서도 우울하고 기죽어 있어서 아이들이 장난치면 괜히 졸고 겁을 먹는 거예요. 아이가 이런 학교 폭력에 노출된 것도 일정 부분은 부모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돈 많으면 뭐합니까? 제가 아는 어떤 가족분들은 가난해서 10평짜리 집에서 넷이서 사는데 항상 행복해요. 집이 부자고 가난하고 떠나서 일단 행복해야죠. 그리고 행복해야지 생각을 할 수 있고요. 또 행복해야 꿈을 꿀 수 있지 않겠어요?


원장님은 저의 심각한 모습이 부모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시면서 부모님을 크게 혼을 내셨고 저는 부모님이 혼나는 걸 보며 엄청 속이 시원하고 고소했습니다. 예상외로 부모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반성하시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에 대한 분노도 좀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저는 셋이서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평소처럼 부드럽게 대하시는 거 보고 저는 좀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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