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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마지막 계획 (3)

by 송아론

성문은 전력으로 기찬에게 달려갔다. 정확히 확인했다. 동공이 열린 채 아무런 감정이 없는 표정. 맨발. 히죽이는 입가. 민환의 아내가 죽기 전에 보였던 그 모습이었다.


“성문아 멈춰 봐!”


민환이 뒤에서 소리쳤다. 성문은 그제야 자신이 순간 이성을 잃었다는 걸 자각했다. 하마터면 윤수를 혼자 집에 둘 뻔했다. 성문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기찬이는 내가 잡을게! 윤수 좀 봐줘!”


성문은 말을 마치고 다시 달려갔다. 그 사이 기찬은 경사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성문은 전력을 다했다. 떨어진 낙엽과 잔가지를 밟으며 산을 올랐다. 하지만 금방 힘에 부쳤다. 넝쿨과 가시나무가 가로막았다. 양팔로 헤쳐도 가시가 얼굴을 긁었다.


“하아... 하아...”


성문은 무릎을 짚고 거친 숨을 쉬었다. 고개를 들자, 기찬은 어느새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때와 똑같다. 민환의 아내가 괴이한 속도와 체력으로 산을 오르던 날과.

멈추면 안 된다.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끝장 날 수도 있다.


성문은 한계를 넘어서 다시 산을 타고 올라갔다.


***


민환은 선 채로 성문과 기찬을 번갈아 쳐다봤다. 성인과 어린이인데도 두 사람의 속도는 현저히 차이 났다. 성문은 중간중간 장애물에 가로막혀 멈칫 거리는 데도, 기찬은 미친 사람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도저히 어린이의 체력이라고 볼 수 없었다. 꼭 괴물 한 마리가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기찬이 언덕으로 올라가 사라지고 나서야 성문도 언덕 위로 올라갔다.


민환은 성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선을 거뒀다. 터덜터덜 성문의 집으로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간 뒤 다락방을 올려다보자, 윤수가 등진 채 커튼을 보고 앉아 있었다.


‘저게 어제 내가 봤던 윤수라는 건가?’


민환은 성문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윤수에게 또 다른 인격이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3개 이상?


“오셨어요, 선생님?”


윤수가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민환은 윤수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 저 위에 있는 윤수는 어제 내가 봤던 그 아이다.’


“아버지는 어디 간 거예요?”


“기찬이 따라갔어.”


“기찬이를 따라가다니요?”


“기찬이가 갑자기 산속으로 올라갔어. 나도 모르겠구나.”


“멍청한 새끼. 또 홀렸나 보내.”


윤수가 이죽였다. 괴리감이 잔뜩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시려고요?”


“뭐가 말이냐?”


“선생님 임무가 저를 감시하는 거잖아요.”


“그래.”


민환은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속내를 다 들키는 느낌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아직 시간이 되려면 멀기도 했고.”


윤수는 다시 커튼을 바라봤다. 왜 저 자리에 저렇게 앉아 있는 건지 의아했다. 불안했다.


***


현재 시간 오후 4시 10분. 민환은 주방으로 걸어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성문이 기찬을 데려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불안이 더 커졌다.


민환은 윤수를 살펴보기 위해 거실로 나와 다락방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민환은 윤수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마치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시 식탁 의자에 앉으려 할 때였다.


쨍그랑!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환은 화들짝 놀라 거실 중앙으로 뛰어갔다. 다락방 위를 올려다보자, 윤수가 앉아 있던 자리에 창문이 깨져 있었다. 커튼이 양쪽으로 활짝 젖힌 채 바람에 나풀거렸다.


‘윤수가 보이지 않는다!’


민환은 빠르게 다락방 위로 올라갔다. 바닥에 깨진 유리조각들이 산재해 있었다. 민환은 조심히 발을 디딘 뒤 고개를 내밀어 창문 바깥을 내려다봤다.


4m. 어린애가 뛰어내릴 수 없는 높이였다. 하지만 윤수는 다락방에서 보이지 않고, 창문은 깨진 채다. 민환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 생각에 정신을 뺏겼을 때였다.


“잘 가세요 선생님.”


윤수가 볼록 솟은 커튼 사이로 나와 민환을 밀쳤다.


“으악!”


민환은 꼼짝없이 창밖으로 떨어졌다. 논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자, 윤수가 히죽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이제 기찬을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


오후 3시 30분.


기찬은 민환이 나간 뒤에도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조심히 거실 창가 쪽으로 걸어가 몸을 숨기고는 커튼을 젖혔다. 윤수가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윤수의 집을 본 순간, 기찬은 움찔 거리며 얼굴을 숨겼다. 윤수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확신했다. 윤수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때,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기찬이 잘못 들었나 싶었을 때,


똑똑.


이번에는 현관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기찬이 얼어붙은 채로 있자,


“문 좀 열어줄래?”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기찬은 덜컥 겁을 먹었다. 또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이런 식이었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있으면, 창문이고 방문이고 똑똑 거렸다. 그리고 들리는 말은,


“아직 살아있구나?”


기찬은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덜덜 떨었다. 제발 나한테 말 걸지 말라고 속으로 소리쳤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가 가시처럼 귓가에 박혔다. 화장실에서 자살을 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안 죽었네?”


기찬은 제발 지금 죽을 테니까 조용히 해달라고 빌었다. 천장에 줄을 매달고 목을 맬 때까지도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목소리가 선생님 집까지 따라왔다.


“왜 안 죽은 거야? 응?”


“그만해 제발...!”


기찬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차라리 목소리가 나를 죽여줬으면 싶었다.


“문 안 열어 줄 거야?”


기찬은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았다.


'제발 그만해. 제발 그만해. 제발 그만해.'


하지만 공포감이 극에 달하자 분노로 바뀌었다. 기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에서 찬바람이 공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닫아도 돼.”


기찬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린이 등 뒤에 서 있었다. 기찬은 덜덜 떨리는 입으로 말했다.


“니... 정말 린이가? 죽은 거 아이가...?”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운 그녀의 눈이 자신에게 향했다.


“미안타...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도...”


기찬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도 겁먹은 채 떨기만 했지, 린에게 사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녀를 보니 사과를 하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잘못했다... 너 괴롭히고 때리고 욕하고 그런 거 다 사과할 게.... 한 번만 봐주라...”


기찬은 두 손을 빌며 호소했다. 그것도 모자라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자 뚝. 뚝.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찬이 시선을 들자 린의 옷자락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온몸이 흠뻑 젖은 채였다.


기찬은 그 모습을 보고 린이 절대로 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머리를 박고 못 본 척을 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어...?”


“따라와.”


린이 말을 마치더니 현관문을 통과하며 사라졌다. 기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린을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린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물자국이 보였다. 린의 옷자락에서 떨어진 물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 가는 기가!”


기찬이 소리쳤지만 린은 대답이 없었다. 먼발치에서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길이 나있는 곳도 아닌, 산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찬은 하는 수 없이 린을 따라갔다. 빠른 걸음으로 가다, 이래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뛰기 시작했다. 물이 떨어진 흔적을 따라 뛰어갔다. 잔가지와 가시나무가 얼굴과 손, 팔뚝에 생체기를 냈지만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신기한 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린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걸 직감했고, 그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빨리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어떻게 이동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막다른 곳에 도착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컴컴한 곳에 와 있었다. 린의 흔적도 끊겼다.


기찬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봤다. 오른편에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거울이었다. 거울 안에는 시커먼 모습으로 눈동자를 빛내는 내가 보였다. 왼편에는 남자 소변기가 여러 개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맨발과 함께 얼어붙은 타일 바닥이 보였다. 화장실이었다. 그것도 학교 화장실이었다.


기찬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오른편에 화변기가 있는 문을 열었다. 첫 번째 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문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문을 열자 파손된 화변기가 보였다. 네 번째 화변기 문에는 새카만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것도 긴 머리카락. 안에서 뚝. 뚝.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찬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공간이 열렸다. 뒤이어 새하얀 사람이 보였다. 정확히는 화변기에 끼어 있었다. 등과 엉덩이가 꽂힌 채로 양팔과 다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린...?”


기찬은 온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린은 괴상한 자세로 화변기에 꽂힌 채 목은 뒤로 젖혀 있었다.


“린아...!”


기찬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조심스레 린의 사지를 만졌다가 깜짝 놀랐다.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린을 화변기에서 빼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잘못하다가는 몸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사이.


뚜벅. 뚜벅.


걸음 소리가 났다. 기찬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나보다 먼저 왔네?”


윤수가 미소를 띠우며 기찬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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