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찬아! 안 돼!”
민환은 기찬의 양다리를 잡고 위로 올렸다. 기찬은 눈물범벅인 채로 숨을 꼴딱거렸다.
“기찬아, 빨리 목 빼!”
“서... 선생님...”
“그래. 이제 괜찮으니까, 밧줄에서 목만 빼.”
“안 됩니다... 린이 또 죽이러 올 겁니다...”
“아냐. 선생님이 죽게 안 놔둬. 혼자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빨리...”
기찬은 결국 눈물을 삼키며 밧줄에 걸린 목을 뺐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이 벌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다른 데는 다친데 없어?”
민환이 기찬을 부축하며 물었다. 기찬은 고개만 끄덕였다. 민환은 기찬을 소파에 앉힌 뒤 진정을 위해 따뜻한 물을 건넸다. 기찬은 감정을 추스르며 천천히 물을 마셨다. 도중에 목구멍이 아린지 눈을 찡그렸다. 목에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일하러 가셨니?”
“네...”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야? 응?”
“린이... 린이 하루 종일 저를 감시하고 있어서...”
“감시를? 어떻게?”
“꿈에서도 나타나고예... 현실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죽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민환은 기찬이 겁을 먹어 헛것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하나만 물어볼게.”
“뭐예..?”
민환은 질문지에 적힌 대로 물었다.
“형석이 말이야, 어제 죽은 거 알지?”
“예...”
기찬은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이 차올랐다.
“형석이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니?”
“어제 오후에 봤습니다...”
“무슨 일로?”
“형석이 햄한테 윤수 괴롭힌 거 사과하자고 할라꼬요.”
“형석이가 뭐라고 했어?”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윤수한테 갔습니다.”
“그럼 어제 윤수를 본 거야?”
“네.. 선생님이 윤수네서 나가는 것도 봤지예...”
민환은 어제 이성을 잃고, 중구를 만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던 걸 떠올렸다. 그 타이밍에 둘이 만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과를 했니?”
“네.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다꼬...”
“윤수가 사과받아줬어?”
“네... 그런데 린한테도 사과를 하라고 해서...”
“린한테? 린은 실종 됐잖아?”
“윤수가 린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디로?”
“오늘 오후 5시에 학교 정문으로 오라꼬....”
그렇다는 건 실종된 린이 학교 어딘가에 있다는 뜻일까? 민환은 이 사실을 성문에게 알려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선생님... 저 거기 가지 싫어예...”
기찬이 두려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일단은 선생님 집으로 가자. 아버지 오실 때까지 같이 있자.”
민환은 기찬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의 어깨를 감싸고는 밖으로 나왔다. 먹구름이 껴서 그런지 바깥은 어둑어둑했다. 동시에 스산한 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기찬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며 연신 주변을 살폈다.
“왜 그래?”
민환이 묻자, 기찬이 대답했다.
“선생님. 누가 쳐다보고 있는 거 같지 않아예?”
“누가?”
“아닙니다... 보고 있어예...”
기찬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흠칫 놀랐다.
“선생님! 저 저기!”
기찬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손끝에는 윤수의 집이 있었다.
“저기가 왜?”
“윤수가 쳐다보고 있어예!”
“윤수가?”
민환은 영문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수가 어디 있다는 거야?”
“저기 창문 안 보입니꺼?!”
민환은 인상을 쓰며 집 상단에 있는 창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너무 멀어 창문도 겨우 보일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데.”
“윤수가 감시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예..!
기찬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환은 불안증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집에 가면 괜찮을 거야. 빨리 가자.”
민환은 기찬의 어깨를 잡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고개를 돌려 윤수의 집을 바라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
“선생님 문 잠갔지예?”
기찬이 민환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그래.”
거실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연결음이 얼마 가지 않아 곧 전화를 받는 성문이었다.
“성문아 기찬이 집에 데리고 왔어.”
-아무 일 없었지?
“그게... 일이 좀 있었어. 지금 너네 집 앞으로 갈게.”
-알았어.
민환은 전화를 끊은 뒤 거실에 서 있는 기찬을 보고 말했다.
“기찬아. 선생님 잠깐 나갔다 올게. 혼자 있어도 괜찮지?”
“언제 오시는데요.”
“금방 올 거야.”
“예...”
민환은 소파에 앉아 있는 기찬을 두고 바깥으로 나갔다. 윤수네 집 앞에 당도하자 성문이 미리 나와있었다.
“윤수 집에 있는 거지?”
민환이 묻자 성문이 대답했다.
“어, 왜?”
“아냐.”
민환은 조금 전 기찬이가 했던 말을 전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기찬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
성문이 묻자, 민환이 대답했다.
“기찬이가 화장실에서 목을 매달고 죽으려고 했어.”
“뭐...?”
성문은 눈을 크게 떴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왜 그런 짓을 한 건데?”
“린이 자꾸 자기한테 죽으라는 신호를 보낸대.”
“린이?”
성문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환이 입을 뗐다.
“그리고 어제 기찬이가 윤수를 만났나 봐. 사과를 하러 찾아갔대.”
“오늘 오후 5시에 윤수랑 만나기로 했다지?”
“어떻게 안 거야?”
“윤수한테 들었어. 장소는 어디인지 알아?”
“학교 정문인데, 거기서 린에게 사과하기로 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학교에서?”
성문은 드디어 다혜가 미처 알려주지 못했던 장소를 알아냈다. 생각에 잠겨 있자, 민환이 이어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기찬이 계속 데리고 있어?”
“아니. 5시에 학교 정문으로 가라고 해.”
“무서워서 가기 싫어하던데...”
“네가 같이 가줘. 혼자서는 위험하니까.”
“윤수는?”
“똑같이 그 시간에 보낼 거야.”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도 같이 따라갈 거야. 그리고 확인해야지. 정말로 린이 거기에 있는지.”
민환은 왠지 불길했다. 하지만 실종된 린의 이야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성문아, 정말 린이 학교에 있을까? 있다면 왜 거기에 있지?”
“글쎄... 나도 아직 모르겠어.”
“만약 함정이라면? 윤수가 꾸민 짓이라면?”
민환은 어젯밤 윤수가 피범벅이 된 채로 서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조심해야지. 애들만 놓치지 말자.”
민환은 수긍한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환아.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성문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윤수가 다중인격자인 거 같아.”
“...뭐?”
민환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성문이 한숨을 쉬며 입을 뗐다.
“나도 윤수가 린에게 세뇌 같은 걸 당해서 애들을 죽였다고 믿고 싶어. 그런데 아까 너랑 헤어지고 나서 윤수 안에 있는 다른 인격들하고 대화를 했어.”
“다른 인격?”
“그래. 지금 윤수 안에 최소 3~4개 인격이 있는 거 같아. 윤수가 다니던 정신과 병원 박사에게 물어봤는데, 다중인격 증상이랑 흡사하다고 말하고...”
민환은 혼란스러웠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성문에게 처음 듣는 소리였다.
“윤수한테 무슨 인격이 있다는 건데?”
성문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살인을 저지른 괴물 윤수, 순수한 윤수, 린, 그리고 다혜라는 아이.”
“다혜?”
민환이 누구냐는 눈빛을 하자 성문이 대답했다.
“윤수 태어날 때 유산된 쌍둥이 여자야. 그 애 말로는 자기는 인격이 아니라는데... 아무튼 나도 혼란스러워.”
혼란스럽기는 민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뗐다.
“일단 괴물 윤수는 뭐야? 아이들을 죽인 자아라는 거야?”
성문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은? 린은 무슨 자아인데?”
“린은... 괴물 윤수랑 함께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는 자아야. 그러니까 윤수가 살인을 할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드는 자아랄까...”
“다혜는?”
“그 아이 말로는 자기는 독립된 객체래.”
“객체?”
민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문도 자신 없이 이야기했다.
“하나의 영혼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순수한 윤수가 살인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중이라고...”
“그럼 순수한 윤수가 본래 윤수라는 뜻이야?”
“맞아.”
“그런 게 가능해...?”
“모르겠어, 나도. 머리가 복잡해.”
성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민환이 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지금 이 안에 있는 윤수는 누구야? 어떤 인격이야?”
“괴물 윤수. 내가 마지막으로 대화한 아이야.”
그 순간 민환은 어제 일이 떠올랐다. 윤수랑 대화하던 그때, 윤수가 보인 행동, 언어, 모든 것들이 괴리감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그때...”
민환은 중얼거리며 이어 말했다.
“어제, 말이야. 집을 나가기 전 윤수랑 대화를 했는데 이상했거든. 그때 나도 원래 윤수가 아닌 다른 인격이랑 대화했던 거야. 그래서 이성을 잃고...”
민환은 윤수에게 아내가 박중구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 때문에 밖으로 나갔다가, 구형석이 살인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네 말을 듣고 나니까, 윤수의 행동이 이제 이해가... 나도 그때 당한 거야...”
민환은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
“알았어. 그럼 이따가 기찬이랑 나가기 전에 전화할게.”
민환이 말했다. 하지만 성문은 대화에 집중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민환이 성문에게 묻자,
“저거 기찬이 아냐?”
성문이 말했다. 민환은 성문이 시선을 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찬이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측으로 꺾어 길이 있지도 않은 산비탈을 올랐다. 맨발에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잡아야 해!”
성문이 달려갔다. 민환이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