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사람에게, 마음 한 톨도 쓰기 아깝다
몇달 전, 브런치에 <미워하는 마음은 연애와 한 끗 차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원래 누군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곰씹고, 나를 미워하는 것 같거나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볼 때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헤어나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위의 글 처럼 나의 감정이 나에게 좋으나 나쁘냐의 차이일 뿐, 그 사람을 하루종일 생각하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나에게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의 귀인들을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죠.
예전에 책에서 if~ then 이라는 마음 전략에 대해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혹은 이런 생각이 든다면 ~게 하자' 이런 식으로, 어떤 트리거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에 대한 것을 미리 생각해보고, 연습을 하는 것이죠. 저에게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효과에 깨닫게 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제가 힘들어했던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그는 미운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마음 가득한 짜증을 내뱉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죠.
"어라, 요새 그러고 보니 이 사람에 대해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었네."
짜증이 나는 일들도 모두, 나에게 직접적으로 위해가 가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잊고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타고난 천성이 바뀌는 것은 어렵지만, 생각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훈련으로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신경가소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새로운 학습에 의해 새로운 신경이 생성되고, 이가 반복되면 연결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떤 A라는 사건에 A-1이라고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B로 바꾸는 연습을 하게 되면, A라는 사건이 떠올랐을 때 B라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일수록
길의 폭이 넓어지고 선명해지며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자라
길은 서서히 흔적이 없어지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출처 : https://21erick.org/column/6088/>
붓다는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손에 뜨거운 석탄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내가 그 분노와 화의 감정에 휩싸이게 될 뿐이죠. 나의 머리만 아프고, 마음만 좋지 않고, 그로인해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신경쓰지 못하고 나의 소중한 일상들이 깨지게 됩니다.
저는 2가지로 생각 전환 트레이닝을 진행했습니다.
1. 미워하는 사람이 생각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2.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사람을 게임의 NPC 라고 생각하자.
미운 사람이 생각나면 다른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가면을 벗길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당한만큼 갚을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하지만 어쨌든 상처받는 것은 내 자신입니다. 생각하는 시간과 에너지들이 너무도 아깝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이나, 스쳐지나간 소중한 인연들, 감사한 사람들,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매일 아침 '내가 이상하다 생각해도 괜찮다, 못해도 괜찮다'라고 트레이닝을 했던 것 처럼요. (https://brunch.co.kr/@arooncokie/61)
두번째로는 그 사람을 NPC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NPC는 c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를 말합니다. 정해진 것만 말하고 정해진 대로 행동하죠.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어쩌면 내 인생의 게임에서 정해진 것만 말하고, 행동하는 역할만 맡고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내가 하려는 게임에서 그 사람은 그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지나가버리면, 내 인생의 스테이지가 바뀌면 하차할 캐릭터일 뿐입니다.
미운사람 생각하느라 마음 한 톨도 낭비하지 마세요. 그러기엔 인생은 너무 짧고, 나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