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습니다.
#1
요즘의 나는 회사에서 꽤 잘 지낸다. 요즘처럼 마음이 이렇게 편안하고 고요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일도 바쁘고 사람들에게 상처도 받고 걱정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그것이 나를 갉아먹게 놓아두지 않는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다짐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다 잘 해낼 수 없다. 못해도 괜찮다.
무엇이 되었든 내 마음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가 나를 미워해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도,
내가 못해내도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의식적으로 출근길마다 다짐하는 것들이 작지만 일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에 너무 큰 초점을 맞추며 살아온 것 같다. 나의 평판과 인정에 목마른채 살아왔다.
인정과 칭찬, 성취는 정말 달콤하고 중독된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정말 짧고 또다시 그 달콤함을 얻기까지 괴로운 시간들을 지낸다. 그 괴로운 시간들이 인생에 어느 정도까지의 발전과 성과를 안겨줄 수는 있으나, 그 마음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내 자신을 괴롭히는 덫이 되어버리고 만다.
최근에 회사의 사람들을 보니, 그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못알아주는 것을 속상해하고, 내가 하는 것이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그에 대한 상처들이 가득하다. 나라고 그런 것에 통달하고 신선처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다시 한 번, 저 세 가지 생각을 의식적으로 다짐을 해본다.
#2
누군가 나의 노력과 실력을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시기와 나의 상황, 운과 여러가지 것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알 수 없고, 나의 노력만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애쓰지 않아도 나와 결이 맞고 편안한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마음을 다 주고 노력해도 나를 싫어하거나 관심없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노력은 하되, 그것이 꼭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 주어진 것을 내가 못해낼 수도 있다.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서일 수도 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떳떳할만큼 했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주어진 것을 당연히 해내야만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는 해낼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3
최근에는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생 2회차, 회사생활 만랩으로 보였던 사람들과 꽤 친해져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속마음을 듣고 놀랐다. 누구보다도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워보이는 그 사람들의 실제 속마음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상처받고,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그 겉모습과 같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반대로, 나는 회사에서 늘 무시당하고, 잘하는 것 하나 없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부서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에게 "여유로워 보여요" 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나의 실제 마음 상태와 관계없이 바깥으로 비쳐지는 모습으로 사람들은 판단하고, 나역시도 그래왔다는 사실.
#4
BTS의 Anser:Lovemyself 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남김없이 빠짐없이 모두 다 나
이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저 가사에 마음이 울컥했다. 나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나. 그 역시도 나. 못난 날도, 슬프고 아픈 날도, 빛나고 좋았던 날들도 모두 다 나. 이상했던 나도 괜찮았던 나도 모두다 나.
회사에서의 내가 어떻든 그것은 나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회사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내 자신으로서의 나. 모두 다 나다. 전체가 항상 좋은 순간만 있을 수도 없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5
명상 선생님이 명상할 때 마음 속으로 따라서 되뇌이라고 하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괜찮습니다.
그래 나는 괜찮다. 누군가 나를 미워해도, 내가 못해내도 나는 괜찮다. 나의 모든 것은 괜찮을 것이다.
언제 또 다시 한번 무너질 지 모르겠지만, 모처럼 괜찮은 습관을 가지게 된 김에 글로 기록해본다.